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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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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802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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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52[죄인(죄악))과 병자(질병)]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7-05-07 (일) 14:29 조회 : 1848
*52[죄인(죄악)과 병자(질병)]


* 다음 이야기들은 조금 쯤 신경을 써야 들리는 내용이다.
  즉, <죄인>이라는 개념과 <병자>라는 개념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성질의 문제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미숙한 표현이겠지만 <죄>는 능동적인 인간의 책임 문제라 할 수 있고, <병>은 인간의 책임 문제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어쨌든, 죄와 병은 성질이 아주 다른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수가) 그 후에 나가사, 레위(나중에 예수의 제자가 됨)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예수)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 5;27~32)


위 예수의 말을 다시 요약해 보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 일당에게 비방하여 말했다고 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라고.
예수 일당이 죄인들과 어울려 히히덕거림을 비방하는 말이다. 예수 당시에는 사람들이 세리를 죄인 취급을 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을 들어 보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얼른 듣기에는 비유법을 인용하여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의원(의사)은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자에게 필요하다."는 경우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칭으로 "예수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구하러 왔다."는 예수의 말은 어폐가 있다. 왜냐 하면, <병자>와 <죄인>은 비교될 수 없는 성질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병자(질병)는 누가 용서를 해주고 안 해주고 할 그런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죄인(죄)이라는 것은 거기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든지 또는 용서를 하든지 해야 되는 사회 질서이기 때문이다.

위암과 심장병은 질병이란는 공통점이 있고, 강도와 살인은 죄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질병>과 <죄질>은 아예 다른 성질의 것이어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병자(질병)와 죄인(죄질)을 대비시켜서 자기의 할 일을 설명하는 예수의 말은 궤변일 뿐이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궤변이다.
(궤변; 형식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논증을 이용해서 거짓 주장을 참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논법.) 

대단히 중대한 문제가 있다.
즉, 예수(또는 여호와) 입장에서 인간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다. 예수교 교리(바이블)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자 마자 무조건 모두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중 죄인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내(예수)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가 성립되는 말일까?
100%가 죄인 뿐인 세상에다 대고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있을 수 없는 궤변이다.

의원(의사)은 건강한 사람은 빼고 병자만 골라 치료하겠지만, 인간 중에 예수가 불러 모아 구원해야 될 대상에서 제외될 사람(의인)은 없는 것이다.
예수(또는 여호와)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중에 의인은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차 강조해 두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의인을 들먹이며,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사람들과 예수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한다. (어차피 엉터리 얘기지만)

질문; "너(예수)는 왜 죄인들과 어울려 히히덕거리느냐?"
대답; "나(예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그런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니까.)

그런데, 근본적으로 더 큰 문제가 있다.
예수(또는 여호와) 입장에서 보면, 시비(비방)걸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야 말로 죄인(?) 중의 죄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따라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야 말로 우선적으로 예수가 구해야 될 죄인들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구원할 생각을 않고, 엉뚱하게도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빼 놓고 세리들만을 가리키며 구원시켜야 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저러나 세리가 왜 죄인일까? 예수는 세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놓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나(예수)는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려 왔다."
그렇다면, 죄인 중의 죄인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야 말로 예수가 가장 먼저 손길을 주어야 될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구원은커녕 철저한 예수의 저주 대상이다. 
예수는 악담과 저주를 섞어서 말했다. "화(禍)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여!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마태 23;13~33)

어쨌든, 인류를 구원하러 왔다는 신으로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따위는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자기(예수)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 주는 사람(바보)만을 추켜 세워 뭔가를 착취하려는 얄팍한 술수(속임수)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바보들의 왕초였던 것이다. 허구와 궤변으로 뭉쳐진 속에서도 영생 복락을 나누어 주겠다는 꾐수에 넘어가는 무뇌아들의 총수가 예수였던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던 간악한 자들이어서 좋게 보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수의 허황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세리들도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는 짓은 마찬 가지였으나 예수 일당에게 적당히 나누어 줬던가? 그래서, 예수의 아부가 있었던 게야! 헐!

예수의 말에 넘어가는 사람이야 말로 바보에다 욕심을 겹쳐 놓은 구제 불능의 쓰레기들이다.
바보에게는 약이 없고, 욕심에 눈이 멀면 이것도 약이 없다.


* 종교쟁이(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눈에 세리가 왜 죄인이었을까?
  지금도 예수쟁이들은 정치인, 기업인 등등을 향해서 갖은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대기를 즐기지 않던가?
  자기들이 갖가지 감언이설(혹세무민)로 재물을 긁어 모으는 짓은 생각하지 못하고, 각종 기득권자들의 이전투구식 재물 탈취 모습은 악의 대상으로 취급하기에 열을 올리듯... 




[궤짝 신의 행패]

(1)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궤작>이었다. 옛날부터 여호와 신은 궤짝에 담겨서 사람들이 메고 다녔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말씀인데 이것이 궤짝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히브리 족속은 전쟁(노략질)을 할 때, 이 궤짝을 맨 앞에 메고 출전해야만 됐다.

(2)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엣 조상) 족속들은 이 궤짝에다 수시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이 궤짝에다 제사를 지낼 때 쓰려고 쇠고기국을 끓일 때,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녀석들이 제사가 시작 되기도 전에 커다란 고기 덩이를 슬쩍 먹어 치우곤 했다고 한다.
(참고; 여호와는 육식 동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인의 곡식 제사는 거절하고, 아벨의 고기 및 기름 제사만 받아 먹다가 마침내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자초하게 된다. 헐!) 

(3) 자기가 먹을 고기를 빼앗긴 여호와는 화가 상투 끝까지 뻗친 나머지 그 보복으로 대량 살상을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마침내, <엘리> 집안은 멸망되고, 애매한 히브리 족속 30,000명도 덩달아 도륙됐다고 한다. 헐!
이 전쟁에서 그 궤짝(여호와=예수교의 신)을 적(블레셋)에게 빼앗긴다. 이것도 헐!

제사장의 두 아들이 저지른 죄(여호와의 고기를 훔쳐 먹은 죄) 때문에 엉뚱한 30,000명이 죽임을 당하고, 그 유가족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 셈이다.
궤짝 신(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세상 다스리는 법이 항상 이런 식이다. 저런!

(4) 블레셋은 빼앗은 궤짝(여호와)을 자기네 신전의 다곤(블레셋 신) 옆에다 모셔 두었다고 한다. (과연 그렇게 했을까?) 
그런데, 다음 날 보았더니 궤짝 신이 다곤 상을 쓰러뜨려 팔 다리 목을 부러뜨렸더란다. (궤짝이 그랬는지 그걸 어떻게 알지?)
(이 근처를 읽어 보면 모두가 허구요 모순이지만 재미 없어 생략한다.)

(5) 이 궤짝(예수교의 신 여호와)은 큰 환난을 그 나라(적국=블레셋)에다 상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독종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저런! 
그래서, 블레셋은 이 궤짝을 히브리로 다시 돌려 보냈다고 한다.

(6) 돌아온 궤짝(여호와)이 반가와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 궤짝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궤짝은 히브리 백성을 쳐서 50,070명을 살육시켜 버린다. 세상에나!

궤짝(여호와)이 적진으로부터 돌아왔다 하여, 반가워서 백성들이 여호와의 낯짝(?)을 보려고 한 것 뿐인데, 그게 왜 죄가 되는가?
그렇다고 50,070명 씩이나 죽여? 미친 녀석 아니야? 여호와 녀석은.
그 죽은 사람의 유가족은 그 몇 배일 텐데, 그 고통과 슬픔은 어찌되는 것인가?

잡놈(여호와+예수)들의 행패는 막을 방법이 없다.


* 이상은 사무엘 상 4, 5, 6 장에 있는 내용이다. 
궤짝 신이 다곤 신을 쓰러뜨렸는 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 궤짝(여호와)이 병을 일으켰는 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궤짝에 빠져 조국까지 팔아 먹으려는 현상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다음은 위에 설명한 내용이 담긴 바이블 내용이다.

[...불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30,000 이었으며,
여호와의 궤(짝)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사무엘 상 4;10~11)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짝) 앞에서 엎드러져...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있더라.] 

(사무엘 상 5;1~4)


[그것(궤짝)을 옮겨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毒腫)이 나게 하신지라.] 

(사무엘 상 5;9)

[벧세메스 사람들(히브리)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50,070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사무엘 상 6;19)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7-05-17 (수) 05:16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저 가슴 속에는 능구렁이가 몇 마리나 들어 있을까?" 또는, "저 가슴 속에 좀 들어 가 봤으면 좋겠다." 
믿어 지지 않는 남자(남편)들을 향해서 한탄하는 여자들의 말이다. 그렇다. 사람의 마음 속을 알아 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전지전능한 신이란 작자도 사람의 속을 알 수가 없기는 인간과 마찬 가지인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교의 근본 교리(바이블)는 <인간의 속 마음을 알아 보기 위해서 지랄발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강요하고 또 강요하고,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서 공갈 협박으로 어르고 치기도 하고, 저주와 악담으로 악을 쓰며 얽어 매고, 코를 뚫어서 끌고 다니면서도 그 인간을 믿지 못해서 지랄발광하는 여호와(예수)의 행패는 안타깝기까지 하다. 
제 녀석은 상대를 믿지 못하면서, 상대(사람)에게는 제 놈을 믿어달라고 지랄발광하는 꼴이라니! 

자, 그러면, 바이블을 보기로 하자. 

[(여호와가 가라사대)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그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신(神)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신(神)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與否)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신명기 13;1~3)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꾀더라도 따라가지 말라.)"] 

누군가가 나타나서 <기적>과 <기이(奇異)한 일>을 보여 주며 꾀더라도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 중에 속임수가 아니라면, <기적>과 <기이(奇異)한 일>를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을 들먹이며 떠들어 대는 말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황해를 갈라 한반도에서 중국까지 걸어서 건너 갈 수 있는 <기적>을 시행하면서, "사람들아! 여호와(예수)를 버리고 <갑돌이신>을 믿고 받들라. 아니면, 지옥으로 보내겠다."고 외치고 있다고 하자. 
이럴 때, 이 기적을 보여 주며 위협하는 말에 반기를 들며 저항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무엇을 어쩌라고?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꾀어도 좇아가지 말라."고? 
실제로, 이적과 기사를 시행하는 신이 있다면, 여기에 굴복되지 않을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예수교(예수와 여호와)도 이적과 기사를 보여 주면서 사람을 꾀기도 하고 재물을 후려 내는 집단이 아니던가? 
아니,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보여 준 적 없이 말로만 떠들어지고 있는 이적과 기사가 예수교의 속임수이다. 

모세는 10여 가지 기적질을 보여 주었다고 말로만 떠들면서 여호와라는 신을 인류 사회에 끌어 들였으며, 예수는 물 위를 걷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질을 보여 주었다고 말로만 떠들면서 자신을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적과 기사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적과 기사를 들먹이며 떠들어 대는 위의 바이블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虛構=거짓)일 뿐이며, 또, 이적과 기사를 보여 줬다고 떠들어 대는 여호와(예수)의 행적도 없었던 궤변과 모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본래부터 알고 있던 신(여호와)만 믿고 받들어야 하고, 새로이 알게 된 다른 신을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 쪽에서 <본래>부터 알던 신이란 것이 있는가? 아니, 본래부터 알거나 새롭게 알게 된 신이란 것이 있는가? 
여호와도 모세가 처음으로 소개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던 녀석이며, 예수도 2,000여 년 전에는 아무도 모르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어쩌라고? '네가 본래부터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꾀어도 따라가지 말라' 고? 

어쨌든, 잘 된 일이다. 여호와 건 예수 건 간에 두 녀석 모두 우리 한국 사람이 본래부터 알 던 신이 아니다. 
그리고, 본래부터 알지 못하던 신을 따라거서는 안 된다는 게 여호와의 명이다. 
어떤가? 한국 사람은 여호와(예수)를 따라야 될까, 배척해야 될까? 
존재할 수 없는 현상(기적과 기사)을 들먹이며 떠들어 대는 짓도 어처구니 없는 짓이며, 여호와나 예수를 본래부터 알던 신으로 결정해 놓고서 짖어 대는 짓도 성립될 수 없는 모순임을 증명해 줄 뿐이다. 


(3) 다시 한 번 더 보자.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그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적(기적)과 기사(기이한 일)라는 현상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하며 떠들어지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궤변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실제로 기적을 일으킨다면, 여기에 굴복되지 않을 간덩이 부은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 속에는 예수(여호와)가 일으키는 수 없이 많은 이적과 기사를 볼 수 있다. 이적과 기사 때문에 사람들이 여호와(예수)에게 굴복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여호와(예수)에게 굴복되었던 인간들이 즉시 즉시 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바이블 속에서 보여 주는 이적과 기사는 없었던 것이다. 또, 여호와(예수)에게 굴복된 사람도 없었던 일이란 것을 증명해 준다. 
말로만 <믿었다> <믿지 않았다> <굴복했다> <배반했다>를 거듭해서 반복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단 한 가지도 있어 본 적이 없는 거짓말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4) ["이는 너희 신(神)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신(神)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與否)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이는>? 누군가가 이적과 기사를 시행하면서 꾀더라도, 본래부터 알던 신만 받들고, 새로이 알게 된 신에 대해서는 배척해야 되는데, 이렇게 해야 되는 이유는, <사람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받들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 보려고 시험해 보시는 것이란다>. 
전지전능하다는 녀석도 <한 길 사람 속을 몰라>서 미치고 팔짝 뛸 일이렷다? 
바이블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속을 알 수가 없어서 여호와(예수) 쪽에서 안달 복달 지랄발광하는 광란이다. 

그러나, 신(여호와=예수)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결국은 종교로 밥을 먹고 살아 가는 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더러운 모습이 바로 바이블의 내용이다. 


참고; 이적과 기사를 보여 주면서 홀려 보기도 하고, 이런 신 저런 신을 보여 주면서 꾀어 보는 짓이 인간의 정성을 가늠해 보는 방법이라니 기가 막힐 일이다. 
마치, <배 아플 때, 빨간 약 바르기> 식으로, 저능아(IQ 45 미만?)들 끼리 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마누라의 간통죄를 밝혀 내어 처벌하는 방법]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마누라가 외간 남자와 간통하는 낌새가 보이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에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가 제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1) 우선, 여호와에게 적당한 예물을 바친 후, (이래 저래 돈은 뜯어 내고 본다.)

(2) 커다란 그릇에다 물을 담아 놓는다. 

(3) 예배당 바닥의 쓰레기를 빗자루로 쓸어 모아, 준비해 놓은 물에다 넣는다.
 
(4) 그리고 또, 종이나 가죽에다 저주의 내용(말)을 써서 이것도 물에다 넣는다.
   (저주의 내용이 씌어진 두루마리를 저주해 놓은 물에다 빨아야 함. 저주가 물에 철저히 녹아들도록)-헐!

(5) 저주와 악담이 2중 3중으로 녹은 쓰레기 물을 간통 혐의가 있는 마누라에게 마시게 한다. 저런! 

(6) 저주와 악담이 섞인 더러운 물을 마셨는데도 아무 탈이 없으면, 간통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면 되고, 
그것(성기)이 썩어 문드러지면, 

(7) 그 여인(마누라)은 간통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는 것이다. 대박! 역시, 대단혀! 


참고; 여성의 성기를 한국 바이블에서는 <넓적다리>라고 한다.


 
아래는 아내의 간통죄 여부를 밝해 내는 여호와의 가르침(방식)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아내가 실행(失行)하여 남편에게 범죄하여 타인과 정교(情交)를 하였으나, 
그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그 더러워짐을 인하여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든지, 
또는, 아내가 더렵혀지지 아니하였어도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거든,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를....예물로 드리되....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여호와 앞에 세우고, ..... 
성막(聖幕=예배당) 바닥의 티끌(쓰레기)을 취하여 
물에 넣고....제사장은 저주(詛呪)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여인에게 맹세시켜.... 

제사장이 저주(詛呪)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그 여인으로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물을 마시운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렵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詛呪)가 되게 하는 물이 그(녀)의 속에 들어가서....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여성의 성기)가 떨어지리니, .....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害)를 받지 않고 잉태하리라...."] 

(민수기 5;11~31) 


** 역시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재미있으셔!
   이 신(神)에 미쳐 돌아가는 예수쟁이들은 더욱 더 재미있다니깐! 웬 일이니!




[여호와(예수)를 제집 종놈 부리듯하는 예수쟁이들]

종(노비)은 주인이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예수쟁이들은 여호와(또는 예수)를 제집 종놈(년) 부려먹듯한다. 제가 원하는 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일이 주워섬겨 가면서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며 떼를 쓴다.
여호와(또는 예수)가 제집 종놈(년)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떼를 쓰기도하고 부려먹을 수가 있겠는가?

여호와(또는 예수)는 예수쟁이들의 신이 아니라 손발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종년놈(노비)이 분명하다. 그래 안 그래?
(각설하고)

동양 열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혁명으로 권력이 바뀌면, 승자는 "천명이 나에게 임했다."고 선포하게 마련이었다.
단순히 권력욕으로 임금을 거역하여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천명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로 돌려 민심의 화살을 피했던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그것을 "여호와(예수)의 뜻이 나에게로 옮겨졌다."로 변명하며 합리화시켰다.

천명을 아는 사람도 없고, 신의 뜻을 아는 사람도 없지만,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승자 쪽에서 선수치며 천명(또는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포해 놓으면, 힘 없고 무지한 일반 백성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게 마련이다.

고려 왕조를 쓰러뜨리고 조선 왕조를 세운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용비어천가>에도 천명을 빙자한 변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예수교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도 예외 없이 승자(사실은 악마 같은 철면피)들에 의하여 변명하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바이블의 <시편>은 주로 승자(악마)인 다윗왕 또는 솔로몬왕의 노래로 채워져 있다. (상대를 죽이고 능멸하면서 축배를 든다고나 할까? 헐!)
역시, 바이블의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를 보아도 여호와는 인간 세상의 승자 즉, 악마들을 변호해주는 주구(종) 노릇을 해주느라 정신을 못차린다.
바이블 내용과 인류 역사 속에서 여호와(예수)가 해 놓은 일이란 악마들의 언행을 정당화시켜 주는 주구 노릇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대박! ㅎㅎ...아멩 할렐루야!

심지어,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조상)의 지도자들은 아후라마즈다신의 대리자로서 강력한 신권(神權) 정치를 펴며 군림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들에게까지 "여호와의 뜻이 임했다."고 추켜 주고서 여호와를 제집 종놈처럼 부려먹기도 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조상) 지도자들은 페르시아 대제국에 빌붙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던 비겁하기 짝이 없던 매혼노들이 었음은 물론이다.
이 매혼노들이 제집 종년놈 부려먹듯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예수교의 신이라는 여호와(또는 예수)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대박!

우리 나라의 예수교에서도, 일제 시대는 물론 박정희, 전두환 등등,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수쟁이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주기 위하여 여호와(예수)는 그들의 앞잡이(종놈) 노릇을 충실히 이행했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승자(악마), 기득권자들의 종년놈(앞잡이) 구실을 빠짐 없이 해냈던 것이다. 
로마 교황청의 교황들은 물론, 유럽의 역대 왕조들도 "여호와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내세우며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악마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여 일단 승자의 자리를 챙취한 후, "여호와(예수)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선포하면 모든 것은 완성되는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나 천명(天命)을 아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팔아 먹어도 고갈될 염려가 없는 명품 중의 명품이 바로 <여호와(예수)의 뜻>과 <천명>이다. 대박!
그렇지만, 이 <물건>을 약자, 실패자 또는 선량한 사람이 멋모르고 입에 올렸다가는 목숨을 잃어야 된다. 이것이 이단이다. 그러나, 승자 또는 악마가 떠들었을 때는 <신의 진리> 또는 <천명>이 된다. 
<여호와(예수)의 뜻>과 <천명>은 악마들의 전용품 노릇을 하는 명품이다. 어쨌든, 여호와(또는 예수)는 예수쟁이들의 앞잡이 노릇은 물론 종년놈 노릇까지 충실히 이행하는 멋진 신이다. 헐!

결국, 예수교의 역사는 누가 어떻게 여호와(예수)를 종놈처럼 자유자재로 잘 부려 먹었느냐를 판가름하는 승자(사실은 악마)의 역사이다.
대형 교회, 중형 교회 또는 소형 교회란 목사 이하 그 지도자들이 예수와 여호와라는 종놈을 어떻게 부려 먹느냐로 판가름 나는 모습이다. 종놈을 어떻게 잘 부려먹느냐가 성공 실패의 관건이란 말이다. 헐!

자신들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감지할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어떤 예수쟁이라도 여호와(또는 예수)를 제집 종놈(년)처럼 부려먹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예수와 여호와는 예수쟁이들의 잘 훈련된 종놈(년)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날로 예수쟁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예수쟁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헐!

예수쟁이들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이다.
"기도" 후에, 응답을 받았느니, 은혜를 입었느니, 마음이 편해졌느니, 등등의 모든 현상은 예수쟁이(인간)의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결과는 신의 뜻과는 아무 상관 없이 예수쟁이 개개인의 뜻에 따라 "여호와(예수)가 주인(예수쟁이)의 심기에 맞도록 충복의 구실을 다 하게 된다.
결국, "기도"란 주인(예수쟁이)이 종놈(여호와)을 불러 놓고서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면, 종년놈이 적당히 알아서 기는 모양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원래, 주인(상전)이 종년놈에게 하는 말들 중에는 억지 투정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종연놈 쪽에서는 그것을 지적하며 상전에게 항의할 수 있는 법은 없다. 종놈은 무조건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예수교의 <기도>는 주인의 말도 안 되는 투정(심술)과  여기에 조금도 이의를 달 수 없는 종놈의 굽실대는 모양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주종 관계이다. 대박!
예수쟁이가 주인(상전)이요, 여호와(예수)는 종놈(년)이다. 역시, 대박!

예수쟁이들이 떠드는 억지 기도에 찍 소리 못하고 조용히 듣기만 하는 종놈 여호와(예수)!
여호와(예수)는 참으로 길이 잘든 예수쟁이들의 충복이다. 예수쟁이들 마음대로 요리해도 아무 말 없이 순종만으로 외 길을 걷는 충복 종놈이 여호와(예수)이다.

존재할 수 없는 허구(虛構)로 태어나서, 인류 사회에다 못할 짓 많이 해낸 여호와(예수). 속죄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만행질을 쏟아 놓은 여호와(예수). 이를 누가 있어 무엇으로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무지와 욕심과 어리석음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여호와(예수). 이에 부화뇌동되어 정신 못차리는 예수쟁이들. 그 무서운 죄악들을 무엇으로 갚음을 하게 되려나?

정확하게 한 번 진단해 본다면, 신(神)의 두려움을 모르고, 믿지도 않는 무리들이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한 무지막지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예수가 뱉어 놓은 말이지만)
신도 속이고, 사람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고, 눈과 귀까지 막고 살아가는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주어진 지능과 이성조차 포기하고, 사람되기를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쉽게 살아가려는 무책임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세상에 맙소사!
제삼자 2017-05-22 (월) 07:38
[신이 저지른 말썽 인간이 수습하기]


(1) 남녀 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잘못이 있을 수 있다. 

40대의 중년 부부에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딸이 있다고 하자.
이런 가정에서, 자식이 저지른 말썽을 부모가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되는가? 
아니면, 부모가 저지른 말썽을 자식이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될까?

부모와 어린 자식 사이에 어떤 모습이 형성되어야 제대로 된 가정일까?


(2) 공무원을 비롯한 대통령을 공복(公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라(국민)에는 복잡한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이럴 때, 국민들이 저지르는 말썽을 공무원(대통령 포함)이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되는가? 
아니면, 공무원(대통령 포함)이 저지른 말썽을 국민들이 참고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되는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제대로 된 국가일까?


(3) 종교 특히, 예수교(神)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예수교의 신(여호와=예수)은 전지전능하고, 사랑도 많다고 한다.
이 경우, 일반 대중들이 저지르는 말썽을 종교(교회)가 품어 안고 수습을 해야 될까?
아니면, 교회(목사나 신부가 포함된 예수쟁이들)가 저질러 놓은 말썽을 일반 대중들이 책임을 지고 수습을 해야 될까?

다른 말로 해서, 인간(자연인)이 저지른 잘못을 신(여호와=예수))이 책임을 지고 수습을 해야 될까?
아니면, 신(神)이란 작자가 저질러 놓은 잘못을 인간(자연인)이 책임도 지고 그것을 수습해야 될까?

신(종교)과 인간 사이에 어떤 관계가 맺어져 있어야 제대로 된 모습일까?


(4)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예수교! 
썩어 문드러진 예수교와 그 신(神)의 행패를 사람들이 참고 기다려 주어야 될까? 왜?
여호와(예수)는 사람의 잘못(무엇이 잘못일까?)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진멸 또는 지옥으로 보내겠다고 위협하는 신이다. 

그렇다면, 교회와 여호와(예수)의 시궁창 모습은 어떻게 처벌해야 되는 것일까?

인간의 잘못을 신(神=예수교) 쪽에서 참고 기다리면서 수습해야 될까?
아니면, 신(神=예수교)의 사기성과 썩은 모습 그리고 잔인한 행패를 인간 쪽에서 참고 기다리며 용서하고 또 수습까지 해야 되는 것일까?
이거 욱(?)기는 거시기 아니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주객이 전도됐다."고 하던가?


(5) 웃기는 세상이야. 종교(신)의 말썽을 일반의 자연인(사람)들이 참고 수습해야 되다니...

왜 종교가 있어야 하고 신(神)이 왜 있어야 되는 걸까?
종교가 인간을 위하여 있는 걸까? 아니면, 인간이 종교를 위하여 있는 걸까?
낯짝에다 철판을 깔지 않고서는 존재시킬 수 없는 현상이 종교(예수교)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게 웃기는 세상이 아니고 뭐야? ㅎㅎ...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처음으로 만들어지던 날]-헐! 


 (1)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예수교의 신)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전능(全能)의 신(神)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출애굽기 6;2~3) 


여호와는 모세 이전까지는 자기 이름 <여호와>를 세상에 알리지 않고, 단순히 <전능한 신>이라고만 알렸었다고 한다. 
따라서,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은 물론 대홍수 때에도 살아 남은 노아 그리고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 및 이삭과 야곱까지도 자기들이 받드는 신의 이름을 몰랐다고 한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7대 손자인 모세 때에 처음으로 알려졌다(사실은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이름이 없는 신, 알려지지 않은 신, 이런 신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신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모세 때에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그리고 세상에 그 이름이 알려졌던 것이다. 


 (2) [셋(첫 인간이었던 아담의 아들)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아담의 손자)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4;26) 


아담의 손자 에노스는 <여호와>라는 신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살았던 자이다. 또, 세상에는 셋(아담의 손자) 외에 아담, 하와, 가인, 이렇게 사람이라고는 단지 4사람 뿐이었다. 
이들 4사람들은 모두 <여호와>의 이름을 모르던 자들이다. 아직 여호와라는 신이 만들어지기 전의 시대에 살았던 인간(?)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할 수 있을까? 바이블을 조작해 낸 종교 사기꾼들이 실수하는 장면을 말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헐!


 (3) [여호와께서 아브람(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중언부언 말이 많다)..........." 
그(아브라함)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세기 12;7~8) 


아브라함은 분명히 <여호와>의 이름을 모르던 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되어 있다.
역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꾸며내던 종교 사기꾼들이 실수하는 장면일 뿐이다. 


 (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청세기 22;14) 


<여호와>의 이름을 모르던 아브라함이 <여호와이레>라는 지명(地名)을 짓고 있다. 
이 후,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또 그 아들 야곱은 수시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도 지내고, 요구 조건을 내세우며 기도라는 것도 했다고 한다.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이름을 아직 알지 못하던 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지사를 지내기도 하고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대박!

이상, 바이블(예수교의 신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종교 사기꾼들에 의하여 어설프게 조작되는 장면을 몇 가지를 언급해 봤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모순, 궤변을 엮어서 만들어 놓은 허구(거짓)임을 밝혀 둔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7-08-02 (수) 20:27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5병 2어


[....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5 개와 물고기 2 마리 뿐이니이다."
 
(예수)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12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000 명이나 되었더라.]

(마태 14;13~21)


이것이 소위 예수가 시행했다는 저 유명한 5병 2어(五餠二魚)의 기적이다.
떡 5덩이와 생선 2마리로 여자와 아이는 계산하지 않고, 장정 5,000명을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았다고 한다.


1) 기적 현상이 예수의 앞에서 벌어졌을까, 예수의 손에서 벌어졌을까? 
    아니면, 배식(配食)을 하고 있던 예수의 제자들의 손안에서 벌어졌을까?

    한 사람에게 배식을 하고 나면, 연속적으로 또 한 사람 분의 떡(생선)이 생겨났을까? 
    아니면, 한꺼번에 많은 양의 떡(생선)이 쌓인 것을 한 사람 분 씩 떼어다가 배식을 했을까?

어떤 경우일지라도, 배식하는 사람이나 배식을 받는 사람이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 현상에 놀라워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먹는 일이 바쁠까, 아니면 그 기적 현상에 놀라 정신이 없었을까?

배식하는 사람의 손에서, 한 사람 분이 주어지고 나면, 또 한 사람 분이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의 눈과 입에서는 "저런저런 또 생겨나네. 저것 봐, 저걸 보라구. 또 생기네."
등등의 수라장적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다.

또, "먹고 남은 것이 12바구니가 남았다."는 따위를 기록으로 남길 여지는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기적이 사실이라면 그 부수적 장면은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리 만큼 쏟아져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불리 먹었다."는 말도 쓸 자리가 없다. 먹는 일은 다들 잊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두들 정신이 빠져서 먹는 일을 잊어 버리고 있었다."고 기록됐어야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기적질 내용이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처럼 심심하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5병 2어> 기적질은 없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바이블 기자 정도의 두뇌가 골방에 앉아서 상상으로 꾸미다 보니 이런 엉터리 구상이 나온 것이리라.
소문만 풍성한 그 소문만으로도 지금의 교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비교해 보라.
저렇게 엄청난 기적질이 벌어졌었다면 어떠했을까를.


2) 모여 있는 장정이 5,000명이라 했다. 
   그렇다면,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적어도 10,000명은 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필자는 <수수께끼> 문제를 하나 내겠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군중 집회를 가지려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독자들은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정답은 <화장실>이다. 
여기의 기적질 장소는 <빈 들>이라고 했다. 
사막과 돌짝밭으로 이루어진 중동 지방이므로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자. 이제 배불리 먹기까지 했다. 
10,000명 정도가 그런 곳에서 작은 일, 큰 일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상상이 되는가?
바이블 기자는 커다란 집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그 세계에 대한 경험도 계획도 짤 수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5병 2어> 기적질은 없었던 것이란 말이다.


3) 바이블 기자는 예수 이름으로 종교가 성공하려면, 모세와 엘리야를 등에 업어야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여호와쟁이들의 나라이므로 당연하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기적질은 꽤나 많다.
    따라서, 예수도 여기에 준하는 기적질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아니,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가 그들보다 더욱 멋지고 큼직한 기적질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고, 엘리야가 강을 갈랐다니까 예수는 아예 바다(호수) 물 위를 걸어가는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그러나, 당시 바이블 기자들의 아이디어들은 그만그만해서,
모두가 비슷비슷할 뿐, 파격적으로 '꽝'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 없다. 

기적질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 기자들의 머리에는 새롭고도 뛰어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엘리사)가 조금의 음식으로 100명을 먹이는 기적질을 시행했다니까,
예수 쪽에서는 어린 아이와 여자를 빼고도 5,000명을 먹였다고 뻥을 좀 크게 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새롭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가 시행했다는 <5병 2어> 기적은 없었다.
없었기 때문에 내용 기록이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실시된 기적이라면,
그 5,000명(아니, 10,000명)의 난리 법석으로 세상이 떠나가고,
그 상황에 대한 기록은 상상을 불허하는 다른 모양을 하게 됐을 것이다.




[X=1, Y=1이면, X=Y이다]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도 성경의 모든 예언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 20~21)

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은 성령에 이끌려 그 감동을 받은 사람(선지자=예언자)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一點一劃)도 하자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 같다.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예수=성령)으로부터 감동 감화를 받은 사람이 그 지시에 따라 기록(바이블)을 남겼다면, 그 기록 내용보다 더 정확하고 훌륭한 보물(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예수교의 경전(바이블)에는 조금도 잘못이 있을 수 없는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예수=성령)의 가르침과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한다. 아멩!
각설하고...

초대 예수교 시절에 서로 상대방을 죽이면서까지 옥신각신 자기 파의 신앙을 지키려고 별별 짓을 다 하던 이단 논쟁이 하나 있었다.
"가짜 교부(예수교의 지도자)가 베푸는 세례는 효력이 있다고 해야 하느냐? 또는, 없다고 해야 하느냐?"하는 문제로 대가리가 터지도록 싸웠다고 한다.
여호와(예수 또는 성령)가 결정해야 할 문제가 분명해 뵈는데도 예수쟁이(인간)들이 주제 넘게 왈가왈부 아우성이다.
어쨌든, 가짜가 나타나서 신(여호와=예수=성령)의 이름을 들먹이며 설교 같은 것도 떠들어대고, 세례라는 것도 베푼다면, 그 효력(결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누가 나타나서 "나는 진짜 지도자급 예수쟁이다."라고 선포했을 때, 이것이 진짜인지 또는 가짜인지 그것을 판가름(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세례를 베풀고 있다면, 그 세례를 베푸는 자가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구별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가짜이다."라고 떠들어댈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나는 진짜이다."라고 선포했다 하여 그 사람이 진짜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서로 잡아 죽이면서까지 이단 논쟁을 벌이게 됐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가짜와 진짜가 가려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또 다시, "가짜가 세례를 베풀면, 효력이 있는 것일까? 또는 없는 것일까?"
"진짜가 세례를 베풀어야 효력은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진짜는 어느 누구이고, 그 진짜를 누가 어떻게 판가름(증명)할 것인가?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달아야 좋겠지만, 누가 그 방울을 달 수가 있느냐 말이다. 진짜가 세례를 베풀어야 효력이 있다고 해야 좋겠지만, 어느 누구를 진짜라고 해야 된다는 말이냐?  

마침내, "가짜가 세례를 베풀어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하자."고 합의를 보게 된다. "과부의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고 한다. 같은 의미에서 사기꾼의 사정은 역시 사기꾼만이 아는 것이다.
서로가 자기만이 진짜이고 상대를 가짜라고 몰아 붙이다 보면, 공멸(共滅) 밖에 자기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어차피, 어느 놈이 진짜 신의 앞잡이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마침내 "가짜가 세례를 베풀어도 그 효력이 있는 것으로 하자." 고 합의를 도출해 내게 되는 것이다. 가짜들끼리 자중지란으로 공멸하는 짓을 미연에 방지하여 공존(共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설득력도 있고, 보여주기도 그럴싸한 이유로서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감동으로) 베푸는 것이지, 사람의 이름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었다.
예수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중 어느 한가지 이상의 이름이 들어간 말이나 사건이면 절대의 진리가 된다. 따라서, 가짜가 세례를 베풀더라도 일단 신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것이기 때문에 세례의 효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똑같은 이유에서, 바이블 내용도 성령(여호와=예수)의 감동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아멩!

여기까지 짧지 않은 복잡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전개하게 된 이유가 있다. 이상의 예수교의 <썰(說)>에 입각하여 유추해 낼 수 있는 대단히 중대한 결론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세례라는 것은 인간이 <거듭날 수>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거듭난 사람이라야 천당에도 갈 수가 있다고 한다. 예수의 가르침이다.
예수교에서 세례는 이렇게 중대한 것이며 또, 가짜가 세례를 베풀더라도 신의 이름으로 행하여졌기 때문에 그 효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진 상태이다.

이제, 결론을 말할 차례가 된 것 같다.

(1) 바이블 내용(예수와 여호와의 가르침)은 일점이획도 하자가 없다고 한다. 바이블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서 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교 사회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중 어느 한 가지 이상이 들어가면 절대적 진리가 되는 것이다. 하모!

(2) 목사, 장로는 물론 입교인(정식 예수쟁이)이 되려면, 안수와 함께 세례라는 것을 받아야 된다. 이 때의 안수와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진다. 
한 개만 들어가도 절대적 진리가 되는데,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3 개가 다 들어간 안수와 세례이니까, 목사와 장로는 물론, 일반 예수쟁이들의 인격이 하늘 같이 높고 깨끗할 것은 두 말 필요가 없다. 이것도 물론 하모!

(3) 교회와 예수쟁이 입에서는 매일 매일 끊임 없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쏟아져나온다. 그래서, 예수교와 예수쟁이 개개인의 언행은 항상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겸해서, 예수쟁이들의 삶은 언제나 축복 속에서 마냥 행복한 인생을 구가하게 되어 있다. 예수쟁이들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되어 있다.  예수쟁이들 신났어. 이것도 역시 하모!



어떤가? 결론 부분 (1) (2) (3)이 자꾸 옆길로 새는 것 같지 않은가?
성부(여호와), 성자(예수), 성령(성신)의 이름으로 세례와 안수를 받았더라도 예수쟁이(목사와 장로도 포함해서)들도 시궁창 이상으로 썩어 있는 모습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바이블은 성령의 감동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다."고 미련스럽게 고집을 피울 수가 있는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와 안수를 받은 예수쟁이(목사, 신부 포함해서)들도 썩어문드러진 모습을 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감동을 받고서 써 놓았다는 바이블 내용도 더러움과 악독한 모습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잡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세례(또는 안수)를 받은 자가 엉터리라면, 성령을 받고 바이블을 쓴 녀석도 엉터리일 가능성은 100 %가 아닐까? 안다스뗑? 


* 당연한 귀결(또는 이치)
수 천 년 동안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4 철의 변화가 있었다면, 내년에도 4 철의 변화가 있을 것은 뻔한 자연의 이치이다.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3 개의 이름으로 세례(또는 안수)를 받은 예수쟁이들이 더러운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은, 성령(또는 예수와 여호와)의 감동과 지시를 받고서 써 놓은 바이블도 더러울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또는 모순과 궤변)인 내용으로 채워졌을 것은 뻔한 귀결이다.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은 모순과 궤변을 뭉쳐 놓은 허구이다. 거기에다 악독하기까지 하다.
제삼자 2017-08-05 (토) 20:46
[여호와(예수) 비판 및 규탄 대회]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교가 썩었다." 고.
 
좀 더 장황한 말도 많다.
"교회가 돈을 너무 밝히고, 목사와 예수쟁이들이 도덕적으로 너무 타락해 있다." 고 한탄하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예수교가 궤도를 벗어나서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그것이 바로 여호와(예수)에 대하여 정면으로 거역하는 규탄 대회란 것을 모르고 있다.
 
왜냐 하면,
지금은 물론 예수교 역사상 예수교가 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 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교의
더러운 모습,
잔인한 모습,
타락한 모습 등등,
예수교가 쏟아내고 있는 모습 중에서 예수교의 진짜 모습이 아닌 것은 없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은 하나도 빠짐 없이 바이블 속에 들어 있는데,
예수교가 나타내고 있는 모습 중에서 바이블 내용과 일치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심지어,
목사와 신부는 물론 예수쟁이들이
돈을 밝히는 모습,
계집을 밝히는 모습,
뻔뻔한 모습,
사기 행각,
등등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예수)의 가르침과 몸소 보여 준 시범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의 예수교의 모습 중에서 예수교의 본래 모습이 아닌 것은 없었다.
 
그런데,
"예수교는 썩었다. 그러니 제 모습으로 돌아가자."
고 떠드는 짓 자체가 벌써 여호와(예수)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짓이 된다.
 
예수교의 잘못을 고치겠다는 생각이야 말로 여호와(예수)에 대한 가장 커다란 배반 행위일 뿐이다.
예수교의 비리와 악행 중에 여호와(예수)의 뜻 아닌 것이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바이블 내용(여호와 및 예수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예수교에 대해서 떠드는 모습보다 더 웃기는 nonsense는 없으리라.






[예수교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1]

 

입을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 또는

입을 다물고 있으면 면무식(免無識)은 할 수 있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말이 있다.

 

사실상무식한 사람이 말을 많이 하다 보면자신의 모자람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의미에서바이블(예수교의 기초)은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느라자신이 허구(虛構), 궤변(詭辯), 모순(矛盾)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자세히 증명해 주고 있다.

 

심지어여호와(예수)의 악독성(惡毒性), 잔인성(殘忍性), 사기성(詐欺性), 배타성(排他性따위를 적나라(赤裸裸)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입을 다물고 있거나 말 수가 적으면 자신의 약점이 감추어 질 수도 있으련만쓸데 없는 말을 너무도 많이 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치부를 만천하에 알리게 된 바이블(예수교)!

 

예수교의 경전이라 불리는 <바이블>은 예수교가 <>임을 증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거짓>임을 철저하게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는 바이블(여호와=예수)이 입을 다물고 있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아는 체를 하며 떠들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마침내바이블 내용은 스스로 신의 말이 아니라고대 미개 시대의 미개인들이 떠들어 놓은 헛소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게 되는 것이다.

 

          [2]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이다.>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여호와(예수>는 인간을 사랑한다.>

<모세엘리야베드로바울 등은 실존하던 선지자이다.>    등등,

 

바이블에는 위의 말들만 아무 설명 없이 간단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했다.

그래야그 진부(眞否)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기가 그럴싸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런 말이 세상에 굴러다니면이 말을 믿는 예수쟁이들도 있을 수 있고이 말을 믿지 않는 비 예수교인도 있게 될 것이다.

 

이 경우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그 증거를 제시하기가 어렵다.

따라서목소리가 크고고집 불통으로 박박 우기는 쪽이 이길 가능성이 많다(?)

바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바이블(여호와)은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 하니라.> 이 말만 간단히 써 놓는 것으로는 견디지를 못한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창조 과정을 쭉 떠들어 대게 된다.

 

마침내그 창조 과정 설명이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비 과학 비 논리로 점철되고 있어서, <창조설자체가 송두리 째 허구라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증거해 주고 있게 되는 것이다.

 

<모세엘리야베드로바울 등은 실존하던 선지자이다.>라고 간단하게 씌어 있지를 못하고이들 역시 그 활동 내역이 너무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활동 내역이 모두 신의 것이 아니라미개 시대의 미개인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과 행동임을 훤히 보여 주고 있다.

모세엘리야베드로바울 등은 선지자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기에 앞서서 아예 실존 인물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모두 바이블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지를 못하고 줄기차게 입을 열어 떠들고 있어서 벌어지는 결과이다.

 

바이블의 말 많음은 결국바이블 내용이 스스로 신의 말이 아니라고대 미개 시대의 미개인이 떠들어 놓은 헛소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이다.>,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여호와(예수>는 인간을 사랑한다.>

등등의 내용도 말을 아껴서 입을 다물고 있지를 못하고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대느라 모두가 헛소리임을 밝혀 주고 있다.

 

바이블은 스스로 예수와 여호와가 허구(虛構)임을 너무도 자세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3]

 

자연질서과학논리 등등은 천지 창조와 동시에 우주 속에 내재(內在) 법칙(法則)일 것이다.

천지(우주?)가 없다면자연질서과학논리 등은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예수교의 주장대로천지가 여호와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라면자연질서 등등도 여호와가 창조하여 천지(우주속에다 집어 넣은 법칙일 것이다.

 

그런데바이블의 내용 중에서 자연질서과학논리 등에 대입했을 때모순과 궤변에 귀착되지 않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호와는 스스로 철저하게 어긋나게 하기 위하여 자연질서와 과학과논리를 창조했다는 말인가?

스스로 단 한 가지도 지키지 않고 파괴할 자연질서와 과학과 논리를 왜 창조했을까?

 

          [결론]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지를 못하는 바이블!

그래서중간도 할 수가 없고면무식(免無識)도 할 수 없는 여호와(예수)!

 

자기가 창조했다는 법칙(자연질서과학논리)에 단 한 가지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 없는 예수교(바이블여호와예수)!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교의 모든 것(바이블여호예수모든 선지자)은 허구(虛構), 모순(矛盾), 궤변(詭辯)임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거기에다예수교(바이블)는 독선악독저주악담위선 등등으로 철옹성을 쌓고 있는 혹세무민 집단이다.

제삼자 2017-08-21 (월) 09:32
[여호와의 신성한? 계집 대여 사업]


* 여호와(신)가 벌이는 일은 모두가 신성한? 것이니까....여호와가 벌이는 전쟁도 성전(聖戰)이고....대박!

(1) 히브리 족속의 조상이요, 예수교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부름을 받고, 장장 1,600km(4,000리)가 넘는 여행 끝에 가나안 지방으로 이주한다. 
B.C.1500년 즉,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사막 벌판의 여행이고 보면 대단히 먼 여정이다.


(2) 고향 우르 지방(이라크의 메소포타미아 평야 남단)에는 10명의 아브라함의 직계 조상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명에 따라 자기 고향을 떠날 때에 그 아비 데라만 데리고 떠났으므로, 할아버지 위로 9명은 버려 둔 채로 훌쩍 도망친 셈이다.


(3) 아브라함의 9대조 할아버지인 셈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33년을 더 살았을 것며, 다른 할아버지들도 모두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 생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나이 139세 때 죽은 자도 있고, 135세 때 죽은 자도 있으며, 어쨌든 아브라함의 나이 48세 때 죽은 자가 가장 일찍 죽은 할아버지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직계 조상을 유기(遺棄)한 패륜아라고 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기사, 자기 부모 형제를 모두 버려야 천당인지 뭔지에 갈 수 있다니까(예수의 가르침이다.), 역시, 아부라함은 <믿음의 조상 다운 짓>을 해 낸 뛰어난 인물임에 틀림 없다고 하겠다. 대박!


필자의 해설; 바이블 기자는 아브라함보다 위의 조상들의 나이를 크게 늘여 놓고는 그것을 잊었거나, 바이블을 기록하는 중에 그것을 적당히 배치, 수습할 능력이 없어서 그대로 방치된 것일 게다. 
어쨌든, 바이블이 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종교 사기꾼이 꾸면 낸 허구임을 증명하는 한 장면이다. 


(4) 바이블(여호와의 썰?)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지방에 들어왔을 때의 나이가 75세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계산으로는 적어도 165세 이상이어야 맞는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숫자 계산은 귀찮고 손대기 싫은 분야인가 보다. 특히, 종교 사기꾼 정도의 사기꾼에게는.


바이블 기자는 아브라함 시대 사람들의 나이를 수 백 살대로 늘여 놓고는 그 사실을 잊고 현실로 돌아와 실수하는 장면들이다. (3) 번과 같은 의미이다.


(5) 여호와가 지정해준 땅, 가나안에 아브라함이 자리를 잡았지만 그 지방에 기근(흉년)이 든다. 
아브라함 가족은 또 다시 여호와의 명에 따라 애굽(이집트)으로 이주하게 된다. 


애굽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바이블로 보자.

[...그(아브라함)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사라)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 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아브라함)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전하겠노라" 하니라.] 

(창세기 12;10~13)


(6)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아브라함이다. 그런데도 안전이 걱정되어 속임수를 쓰고 있다. 
이렇게 나약한 믿음을 가진 자가 직계 조상을 내팽개치고 4,000리나 되는 먼 여행을 했을까? 
무엇을 기준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게 되었을까?

이 때, 사라(아브라함의 처)의 나이는 적어도 65세보다 몇 살 더 먹었을 때의 일이다(바이블의 기록이 맞는다면). 
그러나, 필자의 계산으로는 155세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그녀를 심히 아리따워서 누구에게 빼앗길 것을 걱정하고 있다. 누가 할머니를 빼앗아다가 무엇을 어쩌겠는가? 헐!

그 때는 200세 가까이 살던 시대이므로 70세 때에도 아리따운 아가씨 같을 수도 있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으나, 
<사라의 나이 89세 때에 늙었음을 한탄하는 장면>이 바이블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70세의 사라는 아리땁기는커녕 사막 기후에 찌들은 할망구였을 것이다. 

어쨌든, 사라는 아브라함의 누이 행세를 했다고 한다.



(7) [아브람(아브라합)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사라)의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애굽 왕)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왕)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宮)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창세기 12;14~16)


결국, 아브라함은 마누라를 애굽 왕에게 대여해주고 재산을 모은 셈이다. 
마누라 장사는 이번 뿐 만이 아니다. 또, 그 아들 이삭도 아비처럼 계집 장사로 재산을 모은다. 
고대 중동 지방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힘이 어느 정도 강해야만 계집을 빌려주고 재산을 모을 수도 있지만, 힘이 없으면 재산이 아니라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은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가 돌봐주고 있어서 여편네 대여 사업을 할 때 목숨을 잃지 않고 재산을 모아 거부가 된다. 대박!



(8)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사라)의 연고로, 바로(왕)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아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누이라고 속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그의 사람(신하)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세기 12;17~20)


속임수를 쓴 자는 아브라함인데 여호와가 내리는 벌(재앙)은 바로왕과 그 가족이 받았다고 한다. 
늙은 마누라를 빌려주고서도 많은 재산을 벌게 된 것은 여호와의 재주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침내, 아브라함 일가가 애굽에서 나올 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란다(창 13;1). 대박! and 헐!



(9) 또, 사라의 나이 거의 90살이 다 되었을 때에도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누이라고 속여 대여하고서 양과 소와 노비와 은 1,000개와 살아갈 땅까지 얻는다. 
속임수를 쓴 자는 아브라함인데, 여호와는 아비멜렉왕가의 모든 태(胎)를 닫아버려 후손을 끊어 놓는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기도해서 다시 열어주었다고 한다(창 20;1~18).

더 긴 얘기가 필요 없겠지? 여호와의 계집 대여 사업에 대해서. 웬 일이니!





[열복사(熱輻射)와 예수복사(耶輻射)]

예수가 살아서 활동하고 있을 당시에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0여 년이 지난 지금, 예수를 알아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그마치 한국에 만도 1,000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처음이나 중간에는 아무도 모르던 예수를 수 백 년 또는 수 천 년이 진난 뒤에는 그 예수를 알게 된 사람이 엄청 많아졌다는 말이 된다. ㅎㅎ...

물리학 용어이던가? 열(熱=heat)이란 것이 있다. 
열이란 물체의 온도 차이에 의해서 한쪽 물체에서 다른 쪽 물체로 이동하는 에너지를 이름이다.
열이 이동하려면, <전도> <대류> <복사> 이렇게 3가지 방법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한다.

<전도> <대류> <복사> 이 3가지 방법 중에 재미있는 놈은 역시 <열복사(熱輻射)>가 아닌가 싶다.

"태양열은 어떤 방법으로 지구까지 이동되어 올까?" 우주 공간의 온도는 3K(켈빈) 즉, 섭씨 -273도라고 한다. 또, 우주 공간은 진공 상태여서 <열전도>나 <열대류>가 발생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1억 5,000만 km나 멀리 떨어져 있는 태양의 뜨거운 열 에너지가 어떻게 지구까지 이동되어 올 수가 있을까?  
이럴 때, 열이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열복사>이다. 열복사에는 이를 전달할 매질이 필요하지 않다. 

쉽게(?) 말하자면, 태양의 뜨거운 열이 중간의 어떤 것도 거치지 않고 직통으로 지구까지 껑충 뛰어서 건너오는 방식이 바로 <열복사> 이동 방식이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처음(태초?)에도 몰랐고, 중간(2,000년 전?)에도 몰랐던 예수를 오늘(맨 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복사(輻射) 현상이 아니고 뭘까?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섭씨 -273도라는 극한(極寒)과 진공 상태의 빈 공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태양열은 <열복사> 작용에 의하여 그 뜨거운 열이 지구까지 껑충 뛰어 날아 올 수가 있는 것이다.
마찬 가지로, 신(神)과 인간 사이에는 수 천 년이라는 시간과 아무도 모르는 그 무엇(?)이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부터 예수(여호와)가 유일신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태양열 복사>         태양열----->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지구
<예수존재 복사>    허무맹랑---->거지 발싸개 or 개 뼉따귀--->예수(여호와)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격언(?)이 있다. 
처음도 없고, 중간도 없는데 언제부터인가 예수(여호와)란 것이 인간들 속에 껑충 뛰어 들어와 있다. 이것이야 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 뭘까?
어쨌든, 태양열은 <열복사>에 의하여 지구로 건너 올 수가 있고, 예수(여호와)귀신은 <예수복사>에 의하여 인간 세상에 퍼진 것이 분명하다. ㅎㅎ... 

  
(1) [(예수가)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마태 8;23~27) 


커다란 바다(사실은 호수)의 거센 바람과 파도가 예수의 꾸짖는 소리에 굴복되어 찍소리 한 마디 못해 보고 잠잠해 졌다고 한다. 
이 엄청난 기적질을 목격하게 된 예수의 제자들이 기이하게 여기며 말한다.
"이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라고.

** 2012년 8월에 한반도에 불어 닥쳤던 태풍 볼라벤! 그 피해는 엄청나다.
    한국의 예수쟁이들은 나쁜 놈들었던 것 같다.
    예수에게 부탁만 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있는데도 아무 짓도 안 했다니...
    어쨌든, 각설하고,

"이 어떤 사람이기에..."라는 반응은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여기 뿐만 아니라, 바이블의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제자)들에 의하여 예수교(종교)가 태어난다. 모르는 자들에 의하여 신(神)의 전지전능과 진리와 절대가 태어난 셈이다. 

40년 전쯤의 일이다. 필자는 그 해 어린이날, 아이들 셋을 데리고 어린이 대공원을 찾았다. 
공원 안은 인산 인해를 이루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다. 여기 저기 줄을 서고 있었다. 놀이터로 가는 길도 끝이 보이지 않는 줄서기요, 화장실로 가는 길도 줄이 길었다. 
우리 가족 일행은 놀이터로 들어가는 줄 끝에 대어 섰다. 

새치기하는 사람을 막으려고, 새끼줄도 치고, 경찰과 자원 봉사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시간 이상이 흘렀어도 줄서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가족을 그 자리에 세워 두고, 필자는 줄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좇아 가 보았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고? 그 줄은 중간에서 끊어져 있어,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었다. 
제 자리에 돌아와 보니, 경찰과 봉사자들은 여전히 새치기를 막으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부지런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칭은 멋지게도 봉사 활동이었지만 누구를 위한 무슨 봉사 활동일까?

예수교 역시 어린이 대공원의 줄서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예수교의 신(神) 역시 도깨비 방망이 두드림 같이 "神나와 뚝딱"하며 얼렁 뚱땅 생겨나서 어디에도 연결된 근거는 없이, 시간(세월)이 흐를 수록 질기고 또 굵은 줄서기를 하는 괴상한 활동이 예수교이다.
그러면서도 예수교의 활동은 대단하다.

천문학 숫자의 재물 갈취하기,
거대한 신당 짓기, (신의 집이 꺼적떼기 움막처럼 초라한 것도 많다.)  
무수한 사람 능멸하고 죽이기,
이름하여 봉사 활동과 희생 정신 키우기, (음흉한 발톱을 숨기고 벌이는 사기극이지만)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예수쟁이가 가장 우쭐대는 무기?) 
굳센 신앙심 다지기 등등, 그 활동(?)은 가히 천지를 뒤흔든다. 

3년 동안 침식을 함께 했던 제자들도 모르던 예수(여호와)!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제자들에 의하여 신(神)이란 것이 만들어진다. 원래 신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야만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은 <예수복사> 현상을 일으켜 마침내 한반도에도 1,000만이 넘는 예수쟁이가 생겨나게 된다. ㅎㅎ... 


(2)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生水)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聖靈)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或)은 "이(예수)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하며,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爭論)이 되니, .....] 

(요한 7;37~43)


여기서도 예수가 큰 소리로 외치며 가르쳤지만, 그것을 듣는 무리 중에 예수에 대하여 짐작되는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도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의 예수쟁이들 중에는 예수(여호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현상 역시 <예수복사>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귀신이 곡할 노릇일 뿐이다.

바이블 기자들은 예수(여호와)를 숨겨 놓고서, 두리 뭉실 적당히 초점(焦點)을 흐려 놓아, 종잡을 수 없도록 꾸며 놓는 것이 예수(여호와)를 무한대로 자라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예상은 적중하여 마침내, 신학자(神學者)들과 선지자, 목사, 신부들의 바이블 해설에 의하여 예수(여호와)는 무한대로 자라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호와(예수)는 더욱 커다랗게 자라고 있다. 마침내, 여호와(예수)는 무한대는 물론 전지전능한 것에까지 자라나게 되었다. 

예수(여호와)보다 더 크고, 더 쎈 존재가 있거든 나와 보라구! 예수쟁이들만 살판났어! 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7-09-11 (월) 13:46
[왜들 죽기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예수쟁이들이 꽤나 즐겨 부르는 찬송가라는 것이다.
한 번 음미해 보기로 하자.

1.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이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2. 광야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 넘어 눈보라 세차게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3.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불교에서는 "인생은 고(苦)"라고 말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교에서도 "괴로운 인생 길" 또는 "찬 바람과 눈보라치는 인생 길"로 파악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서 빨리 고생스러운 이 세상을 떠나 행복만 있는 하늘 나라(천당?)에 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밤낮으로 저렇게 노래를 불러대고 있을까?

그러나, 노래만 저렇게 불러대고 있을 뿐, 실제로는 하루라도 더 이 세상에서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는 예수쟁이를 못 본 것 같다.
왜일까? 죽으면 당장에 그 좋은 천당으로 직행일 텐데 왜 그렇게 죽기를 싫어할까?

그러고 보니, 예수쟁이들이 겉과 속이 다르게 주둥이로만 떠들어 대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주여!"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사랑!, 희생!, 봉사!" 등등,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말장난 아닌 것이 없다.

조금도 틀림 없이 정확하게 말해서, (1) 신도 속이고 (2) 사람(남)도 속이고 (3) 자기도 속이는 인간이 바로 예수쟁이 생활이다.  
명실공히(名實共-), 미꾸라지 새끼들보다 더 미끌대는 사기꾼들이로고!



[엄마, 밥이 뭐야?]

 

 5살 먹은 아들 녀석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밥이 뭐야? 하고.

 

그래서, 엄마가 설명해 주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영양소들을 공급해 주어야 되는데, 한국 사람들은 주로 주식과 부식으로 그 영양소를 해결하고 있단다.

이 때, 그 주식과 부식 중 전자인 주식을 다른 어휘로 <밥>이라고 칭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들아, 이제 밥이 무엇인지 알았지?

 

어떤가?

5살 먹도록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보 아들에게 위와 같이 설명해 주면 되겠는가?

 

5살 먹도록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보에게 밥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방법은 2가지뿐이다.

하나는, 식사 시간에, 그릇에 담겨 있는 실물(밥)을 가리키며 이것이 밥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실물(밥)이 없이 이론으로만 설명해야 될 경우, 밥은 밥이란다.

밥의 뜻을 설명해 줄 때, 밥은 밥이다. 이상으로 훌륭한 답변은 있을 수가 없다.

밥보다 더 쉬운 낱말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밥은 밥이다.는 밥을 해설하는 가장 훌륭한 답변이다.

 

각설하고………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의 전철역 광장에는 요즈음 거의 매일 2 사람이 광고지를 나누어 주며 선전(광고)을 하고 있다.

하나는, 신문 좀 구독해 달라고 선전하는 보급소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좀 믿어 달라고 떼쓰는 예수쟁이다.

 

조금 전, 전철 광장을 지나 귀가하는 길에도 어김 없이 예수님을 믿어 보세요. 하며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만 생각을 정리해 보자.

 

예수님을 믿어 보세요.

다시 말해서, 인간의 결심(작정) 여하에 따라서 신(神)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일까?

 

믿어 보려고 마음을 정하면 예수가 믿어지고, 믿으려고 하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는 존재가 예수교의 신(예수)인가?

 

OO 신문 좀 구독해 보시죠? 하는 권유를 받았을 때는 사람이 그 가부를 결정할 수 있다.

시문을 구독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읽지 않기로 작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이란 것은 인간이 믿으려고 작정한다고 해서 믿어지기도 하고, 믿지 않으려고 결심한다고 해서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신의 세계는 인간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경지일 뿐이다.

 

예수교의 바보 모습을 여기까지 설명해 주어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5살 먹도록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밥을 설명해 주는 일보다 훨씬 더 불가능한 일이다.




[50년이면 족한 것을 2,000년 씩이나]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悔改)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마태 4;17) 

회개(悔改)-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국어 사전에서) 
그렇다면, 
회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사실은 無) 또는 태어나지 않을 사람(이것도 無)에게는 무관한 것임이 분명하다. 


"회개하라"는 가르침은 현재 태어난 사람이 살다가 죽을 때까지면 족한 것이다. 
예수 당시, 장수(長壽)하는 사람의 수명은 고작해야 40세 전후였다고 한다, 
40세에 죽을 사람(甲)이 20세 때, 사람이 해서는 안될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고 하자. 
이 때, 예수가 나타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깝다."고 가르쳤다고 하자.
 
 甲은 예수의 가르침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甲을 사랑하여 참고 기다렸다. 
 마침내, 19년의 세월이 흘러 甲의 나이 39세 되던 해에, 甲은 회개하여 예수쟁이가 되었다. 
 마침내, 예수가 참고 기다려 준 보람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1년을 기다려서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5년을 기다려서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40년을 기다려서 회개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50년을 기다리면, 예수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죽어서 없어진다. 
 
더 기다려서는 안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의 죄를 회개시키려는 짓은 폭력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깝다."고 떠들 때,
예수(여호와)는 모든 여자들이 아이를 더 낳을 수 없도록 태(胎)를 막아 놓고, 50년 정도만 기다리고 있으면 족했다. 
여자의 태를 막지도 않고 2,000년이 넘도록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무지 막지한 폭력이다. 
왜냐 하면,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는 속에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 회개하고 천국에 갈 사람이 늘어날지는 모르겠으나, 회개하지 않고 지옥으로 갈 사람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수(여호와)가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神)이라 하여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아 죄(잘못)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사실은 無)까지 기다렸다가 천국 지옥을 논할 권한은 없을 것이다. 
태어난 사람을 모두 천국으로 보내 준다면 모를까, <회개>를 전제로 하는 천국이요 지옥이라면, 계속 사람이 새로 태어나게 하면서 마냥 세월을 기다린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만행질이다. 

예수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반드시 50년 시한부였어야 했다. 
그것도 모든 여자의 태를 막아, 더는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행할 일이었다. 
 (여호와는 수시로 여자의 태를 막아 임신을 못하게 하기도 했다.) 

 여호와(예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1,000년을 하루 같이 참고 기다리는 악마이다. 
 지난 수 천년 동안, 천국 갈 사람 몇 명을 확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옥 갈 사람은 수 백억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사랑이 많아 오래 참고 기다린다는 것인가? 아서라. 악마들아.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 계속 예수쟁이질이나 하랄 수밖에.
제삼자 2017-09-11 (월) 13:48
[고정 관념과 계급 배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 같다. 아니,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미 자기 것으로 길들여진 버릇이나 생각을 고치기란 거의 불가능한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어쩌면, 한 인생에 있어서 굳어진 고정관념은 그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고집불통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수 천 년 동안 반역(역적)은 나쁜 것이고, 충성(충신)은 좋은 것이라고 누누이 길들여져 왔다.
수 천 년 동안 각종 왕조의 통치자와 기득권자들이 그렇게 세뇌시켜 왔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난 자 중에 저렇게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 결과, 고려 말의 정몽주는 충신이라 하여 후세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반면에, 이성계 일당(정도전, 조준, 하륜 등)은 나라를 빼앗은 역적이라 하여 실제로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도 욕을 먹거나 별로 인기가 없다.

이성계 일당은 성공한 반역자들이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업적(속임수일지라도)도 쌓고, 역사 기록도 자기네 쪽에 유리하도록 적당히 얼버무려 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그것이 수 백 년 전에 벌어졌던 일인데도 지금까지도 호감이 가지 않는다. 한 번 길들여진 고정관념(충성은 좋은 것이고, 역적은 나쁜 것이라는)은 수 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좀처럼 씻어 내거나 고치기가 어렵다.

충성심의 가장 멋진 형태는 개(犬)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다. 강아지가 주인(사람)을 잘 따라 주는 현상을 보면서 여기에다 터무니 없는 충성 모습까지 섞어 격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주인을 무는(반역 행위) 개는 살려 둘 수 없다."는 격언이 생겨날 정도로 개의 충성심은 무조건적이요 극찬의 대상이다. '개'하면 '충성', '충성'하면 '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어쨌든, 개=충성심이다.

고려는 건국된 지 수 백 년이 지나자, 모든 분야가 썩을대로 썩어 문드러져 있어서 그 상태로는 어떤 것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라 전체가 썩었다는 것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서 신음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정도전, 조준 등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토지 개혁을 시작으로 마침내 역성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역성 혁명에 의한 새 나라의 건설은 고려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기득권(썩은 기존 세력)의 붕괴를 의미한다. 반면에, 반역(역성 혁명)은 신진 사대부 세력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말해 준다.

역성 혁명은 신진 사대부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새롭게 여러 가지로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몽주에게는 충신이라 하여 칭송을 보내고, 이성계 일당에게는 나라를 빼앗은 도둑놈이라 하여 미워하거나 인기가 없다.
꼭대기 층의 충성질이 성공하여 썩어 문드러진 왕조가 좀 더 길게 유지되면, 이로 인하여 더욱 형편이 어렵게 된 하층민(천민과 노예 등)까지도 그 충신(?)들에 대해서는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해지는 충성질이란 완전히 썩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왕실을 멸망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말한다.

이상의 현상 즉, 어처구니 없는 충성질을 향해서 박수를 쳐주는 어리석음을 가리켜 <계급 배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날에도 자기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도 모르면서 좌충우돌 횡설수설, 이미 자신의 속에서 굳을대로 굳어 버린 고정관념으로 자신을 쓰레기통에 쳐 박아 놓고서 휘져어대며 계급배반을 하는 사람이 많다.
계급 배반의 가장 커다란 형태의 하나가 바로 이미 길들여져서 고치기 대단히 어렵도록 굳어진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인 조조, 손권, 유비 등도 썩을 대로 썩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한제국 황실을 지켜낸 충신들이다.
조조, 손권, 유비등의 충성질(?) 활동이 성공하여 마침내 한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그 수명을 연장하게 되고, 대신에 고통스러움에서 벗어나 보려는 백성들의 꿈틀거림인 <황건적>은 일망타진되고 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황건적>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심지어는 삼국지 연의를 쓴 저자도 그렇고, 그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도 그렇고, <황건적>은 나라를 망치는 도둑놈들의 떼거리라며 무조건 배척해야 될 악으로 몰아 세우는 사람이 거의 모두일 것이다.

그러나, <황건적>이야 말로 썩은 황실을 지키려고 수고하는 충신(조조, 손권, 유비 등등)들에 의하여 희생된 억울한 백성들의 꿈틀거림이요, 바로 우리 자신에 해당하는 실체이다.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한제국이 멸망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으로 안타까워 사람, 조조, 손권, 유비 등의 충성질이 훌륭해 보이는 사람, <황건적>이 문자 그대로 도둑놈들로 느껴져서 그들이 일망타진된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고정관념에 몸과 마음이 푹 절어 있어서 자신의 계급 배반 행위를 감지하지 못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분명하다.

계급 배반의 형태는 삼국지연의를 저술한 저자도, 그 삼국지연의를 옛날에 읽은 독자도, 수 백 년이 지난 오늘날의 독자들도 그 고정관념은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
어느 누구도 황건적이 누구인지 그것을 곰곰히 생각조차 해 보려는 사람은 없다. 덮어 놓고 충신질은 좋은 것이고 역적질은 나쁜 것이란 고정관념의 잣대에 절어 있어서 황건적은 나쁜 놈들이고, 그 황건적을 토멸시킨 조조, 손권, 유비 등은 충신이요 훌륭한 영웅일 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위로 한다. "나는 악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용기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선과 악 또는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줄은 안다." 고.

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가당착(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됨)이요, 고집불통적 길들여진 고정관념인가! 재삼 언급하지만, 황건적이란 중국 한제국 말기의 배고프고 불쌍한 대다수 백성들이요 나 자신이란 사실이다.
나라가 세워지고 400 여 년이 지난 한제국 황실과 그를 둘러싼 기득권층은 썩을대로 썩어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져 낼 아무런 의욕도 힘도 없는 상태였다. 이에, 스스로 자신들의 고통을 벗어나 보려고 일어선 백성의 무리가 바로 황건적이다.
한 번 살아 보려고 버둥거려 본 목숨을 건 투쟁이었지만, 실패로 끝난 백성의 움직임은 황건적이란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되고, 역적 도당으로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백성(저자, 독자 등, 나까지 모두를 포함해서)들이 자신들 스스로를 향해서 황건적으로 매도(또는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길들여진 고정관념은 그 고정관념이 자신을 얽어 매는 올무가 되는데도 거기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두 꺼풀 세 꺼풀 연거푸 뒤집어 쓰기를 자처한다.
그런데, 가장 무섭고도 질긴 고정관념은 뭐니뭐니 해도 늙은이들의 막무가내식 고집불통과 종교인들의 무데뽀(無鐵砲=신중함이나 대책 없이 함부로 덤비는 사람이나 그러한 태도)식 믿음 행위가 아닌가 싶다. 
사실상,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종교의 근본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꼭대기층 전문가 몇 사람 정도일 것이다. 그런 다음, 밑으로 99.99 % 이상은 "종교"의 '종'자도 모르는 얼치기들이 엉터리 교리를 수박 겉 핥기식으로 무장하고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길들여진 고정관념을 믿음으로 착각하며 우왕좌왕하는 무리가 바로 종교인들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꼭대기층보다 설익은 엉터리 종교 이론으로 무장한 하빠리(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별 볼 일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종교 얼치기들의 종교심이 훨씬 강력하기도 하고, 실제로 세상적 힘도 강하다.
여기에서 그 실례를 모두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신학 대학교 교수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론을 내 놓았다가, 일반 하빠리 신도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그 교수가 파면된 경우는 그 좋은 본보기에 해당한다.

신학대 교수는 어느 정도 종교의 내막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먹고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이었을 테고, 하빠리 얼치기들은 순전히 길들여진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얼빠진 전형적 종교인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비겁하게도 밥 먹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직업으로 선택한 교수 입장도 떳떳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종교 집단의 사기꾼 행각과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어떻게 막돼 먹은 막무가내식의 고집불통적 일반 신도들의 밀어 붙이는 신앙 활동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늙은이들도 종교쟁이들처럼 그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에 묶여 있으면서 쏟아내는 어처구니 없는 행패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개의 경우, 늙은이(부모)에게는 젊은이(자식)가 아직 갖지 못한 기득권이 쥐어져 있고, 거기에다 젊은이는 늙은이에게 예의 또는 효도를 해야 된다는 굴레가 씌어져 있다. 젊은이들에게 씌어진 대단히 참기 어려운 굴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똥이 무섭다기보다는 더러워서 피하듯,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의 긴 시간으로 길들여진 고정관념으로 무장된 추책바가지 추태를 못 본 척하고 외면해 주는 것으로 감내하게 된다.

어쨌든, 가장 무섭고도 질긴 고정관념은 뭐니뭐니 해도 늙은이의 막무가내식 고집불통과 종교인의 무데뽀식 믿음 행위라고 결론을 내려야 될 것 같다.


유의 사항; 

위에서 거론된 내용 속에 모든 늙은이와 모든 종교쟁이가 포함된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모든 늙은이와 모든 종교쟁이들이 고정관념에 묶여서 어리석은 짓(계급배반)을 할 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을 해 놔야 혹시라도 필자의 썰(說)에 동의할 수 없어서 또는 억울해서 저항이 하고 싶은 사람의 입막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지, 이렇게 말을 해 놓으면, 오히려 불난 집을 향해서 선풍기를 틀어 놓듯 더 열불나게 하는 걸까? 예라, 모르겠다. ㅎㅎ...





[위대한 신앙심의 최후 보루?]


[내가 복음(福音=바이블)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救援)을 주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됨이라...]----바울/예수교 최고 최대의 사도/사실상의 예수교 창설자

(로마서 1;16)

1) 누가 뭐랬나?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더니...저 깊은 마음 속에서는 부끄러웠던 모양이지?
혼자 이불을 쓰고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믿어지지 않던가 보다. 
허구(虛構), 궤변(詭辯), 모순(矛盾)을 억지로 합리화시키며 믿어 보려 하다 보니, 배운 자로서 부끄럽던가?

아니, 그보다도, 예수교(즉 허구)의 이름으로 아녀자들의 코 묻은 재물을 후려서 먹고 사는 일보다 더 부끄러운 짓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속일 수는 없었겠지?


2)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양복을 쭉 빼입고, 바이블을 옆구리에 끼고서, 대로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소(失笑)를 금할 수가 없다.
그 바이블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 본 자라면, 돈을 주면서 시켜도 못할 것이다.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요일 날이면, 바이블과 찬송가라는 것을 소지하고 멋을 부리며 걸어다니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단 한 사람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된 것 같다.

무차별 잔인한 살인 만행질, 노략질, 포르노 이야기, 허구와 모순과 궤변을 뒤범벅시킨 내용으로 가득 채워진 책을 어떻게 옆구에 끼고서 그렇게 의젓할 수가 없게 된 것 같다.
정말로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아니, 분명히 많이 달라졌다. ㅎㅎ...

"무식(無識=바보?)이 태평(太平)"이란 말이 있다. 아주 제격으로 들어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교회에 드나드는 짓, 바이블을 들고 다니는 짓을 멋(교양있는 척?)으로 여기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고 여겨진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이제 정신 병자들의 발광이 된 지 오래 됐다.


3) 부끄럽지 않기로 따지자면, 불교인도 불경이 부끄러울 리 없고, 모슬렘은 코오란이 뿌끄럽지 않을 것이며, 유교인도 4 서 5 경이 부끄러울 턱이 없다. 
물론, 학자에게 있어서는 연구 서적이 부끄럽지 않을 것은 당연지사이고...

바울은 무슨 연유로 복음(바이블)이 부끄럽지 않다느니 뭐니 했을까? 
스스로 바이블(신약)의 거의 절반을 써서 삽입시켜 놓고는, 당사자로서 그 바이블이 부끄럽지 않다고 떠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인류 역사상, 바울보다 더 많은 전쟁과 살인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있을까? 
지금도 부끄럽지 않은가? 아니, 후회되지 않는가?


4)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살인일까? 도둑질일까? 폭력일까? 
아니다. 가장 무서운 짓은 다름 아닌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먼 훗날, 그 가르침에 세뇌되고, 마침내 습(習)으로 굳어진 사람들에 의하여 별별 만행질이 횡행하게 되어 있다. 

특히, 그것이 정신 세계를 훔쳐 내는 종교 특히, 예수교의 가르침(믿음)에 이르러서는 수습되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현상을 쏟아 놓게 되었다.
종교적으로 가장 옳다고 우기는 사람의 최종적 결단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순교 정신이 아닐까?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신앙심으로 무장하고서 자살 테러와 함께 전쟁을 감행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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