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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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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602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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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51[예수 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7-03-17 (금) 05:37 조회 : 2914
*51[예수 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임을 자처하는 예수가 한 말이라 한다.
그러면, 이 때의 <십자가> 또는 <자기 십자가>란 무엇을 의미할까?
두 말 필요 없이 <희생 정신>과 그 <실천적 삶>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예수교(바이블 내용)에 의하면,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여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 스스로는 아무 잘못(죄)이 없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죄)을 대신 갚아 주기 위하여 희생당했다고 한다.
이 <십자가 의미>야 말로 예수교의 으뜸되는 교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앉은뱅이 뭣 자랑하듯" 예수교가 가장 크게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를 대신 갚아 주기 위해서 희생된 예수의 억울한 죽음은 이것이 여호와의 사랑이며 예수의 은혜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여호와의 <사랑>과 예수의 <은혜>를 믿고서 따르기만 하면, 장차 천당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릴 수가 있다. 이보다 더 큰 공짜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이 <사랑>과 <은혜>가 예수교의 으뜸 교리라는 말이다. 대박!

그런데 말이다. 
예수가 사람의 죄를 갚아 주기 위해서 억울하게 죽여진 사실 즉, 예수교의 희생 정신은 예수가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뒤에 나타난 말이어야 된다. 
다실 말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뒤에,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말이어야 될 것이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라"는 말을 죽기 전의 예수가 자신의 입으로 떠들어대고 있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우선 바이블을 보기로 하자. 

1)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태 10;38)--예수가 직접 떠들고 있다.

2)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 14;27)--역시, 예수가 직접 떠들고 있다.

3)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 16;24)--이것도 예수 자신이 떠든다.

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가 8;34)--여기도 예수의 입으로 떠든 말이다.

5)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가 9;23)--여기도 예수가 직접 떠들고 있다.


(1) 이상, 5개의 바이블 구절 모두를 예수가 직접 떠들어댔으며,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희생 정신이 담긴 의미이기도 하다.

(2) 원래, 십자가는 흉악범(중 범죄자)을 처형하는 로마 시대의 사형 집행 도구였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로 처형을 당한 이후에는 그 십자가를 남의 죄 또는 남의 고통을 대신하여 짊어지는 <희생 정신>으로 해석하게 된다.
따라서, 위의 5개의 바이블 구절은 예수가 죽은 뒤에나 생겨나는 의미(내용)여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 안 그래?

(3) 예수 가라사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라."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기의 잘못(죄)은 없으면서도 남의 잘못(죄)을 대신 걸머지고 갚아나가는 희생 정신 또는 실천 정신을 가지고 예수를 따르라는 말이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 걸머지고 십자가에 달려 억울하게(?) 죽은 것처럼, 예수쟁이들도 그런 정신으로 예수의 뒤를 따라야 된다는 말이 되겠다. 대단한 사랑이요 대단한 은혜로다, 헐!

(4) 예수가 과연 인류의 죄를 대신 걸머지고 희생되었는지 어땠는지 그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또, 예수쟁이들이 과연 희생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달려 죽는 짓이 어떻게 해서 다른 사람의 잘못(죄)을 대신 갚아주는 일이 된다는 건지? 딴 별 나라의 이야기인가? 헐!
어쨌든, 예수가 죽은 뒤에나 생겨나는 의미의 말을 살아 있는 예수가 직접 그 입으로 떠들어대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위의 바이블 구절이 씌어질 싯점에는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에 대하여 일언반구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5) 예수는 3차례에 걸쳐서, 자기가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잡혀 고난을 받다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그러나, 그 3차례 어디에도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동시에, 그 십자가에 <희생 정신>을 의미하는 내용이 담겨 있을 턱도 없다.

(6) 그런데, 살아 생전에 예수는 말하고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예수
"누구든지 나(예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예수
알리바이(alibi-현장 부재 증명)가 성립될 수 없는 구절이다. 십자가는 예수가 죽은 뒤에 생겨난 말이어야 되는데 저 말을 예수가 직접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7)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라."는 말은 마태 10장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아직, 예수가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 전의 싯점이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 예수가 수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희생 정신?)이라는 예언은 3번에 걸쳐서 말해지는데, 그 첫 번째는 마태 16장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번 더. 예수가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 한 곳은 16장인데, 십자가 희생 정신에 대해서 떠든 곳은 10장이다.

(8)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가르침이 정말로 예수가 떠든 말이라면, 그 뜻은 다음과 같은 해석이 될 것이다.
"예수쟁이들아, 너희들은 어서 흉악한 중죄를 짓거라. 그런 다음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거라. 그래야 나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 마침내 천당도 얻을 수가 있느니라." 대박!
예수가 죽기 전의 십자가는 중죄인을 처형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태 16;21) 

결국, 위에 열거된 바이블 내용은 어떤 사기꾼이 삽입 편집한 모순(矛盾), 궤변(詭辯), 허구(虛構)이다.
물론 모순, 궤변, 허구 속에도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값진 것이 있을 수는 있다. 소설, 영화, 연극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바이블은 그렇지를 못하다. 바이블은 신(神)의 가르침(말)도 아니다.

누군가가 38 만 km에 이르는 전선(구리선)을 깔았다고 하자. 다시 말하자면, 지구에서 달나라까지 전선을 설치한 셈이다. 
그런데, 그 전선의 어느 부분에서 1 km 쯤 단절된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여기에 전류가 흐를까?
38만 km에 비하여 1km는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것이어서 아무 문제없이 전류는 흐르게 되는가?
반대로, 그 전선 38만 km 중에서 37만 km가 끊어져 있고, 다만 1만 km만 연결되어 있다면 이 전선에 전류가 흐르게 할 수 있을까? 헐!

바이블(예수교) 속에 신(神)의 가르침이 들어 있을까? 
저 두꺼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속에 그럴싸한 말 몇 가지 쯤 섞여 있다고 해서 그것이 참일 수 있을까? 헐! 웬 일이니?

**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라."는 예수교 입장에서는 너무도 중대한 가르침이라, 지나칠 정도로 중복 또 중복, 반복 또 반복된 글이 됐다. 괜찮지? 헐! 그렇지만 대박! ㅎㅎ...아멩 할렐루야! 





[앞뒤 순서가 뒤바뀐 여호와(예수)의 가르침]
 
(1) [(예수 가라사대)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태 19;29)

(2) [예수게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福音)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린 자는 금세(今世)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100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來世)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 10;29~30)

3) [(예수 가라사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의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能)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 (누가 14;26)

위 3가지 예수(예수쟁이의 신 또는 형?)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 사업 계획을 세우고, 여러 가지로 시장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거의 확실하게 드러났을 경우, 그 사람은 총력을 기울여 그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자본이 없어서 은행에 대출 수속을 밟는다면, 은행측에서도 그 사업 계획을 조사한 결과 '확실한 성공'이 보장된 것이라면, 앞 다투어 융자를 해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순서가 제대로 척척 맞아 떨어질 때, 일은 저절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업 계획서도 없고, 시장 조사도 없이 덮어 놓고 사업을 벌인다면, (더 얘기해야 된나?) 이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벌인 사업에다 융자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은행은 있을까?

예수(또는 여호와)의 존재와 그 능력을 확실하게 아는 자라면, 앞다투어 여호와(예수)에게 충성하느라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위에 나열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 따위들은 있을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구태여, 이래라 저래라 하고 가르치지 않더라도 인간들의 과잉 충성에 여호와(예수)의 영광은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예수)의 존재와 그 능력을 모르는 자라면, 위의 가르침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쟁이들 중에 자기의 부모, 형제, 처자식을 버리는 자가 있던가?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다. 예수쟁이들 중에도 여호와(에수)의 존재와 그 능력을 아는 자가 없다는 뜻이다.
여호와(예수)의 존재와 능력을 아는(또는 믿는) 자라면, 무엇인들 버리는데 주저하겠는가?

바이블은 인간을 가르침에 있어서 그 순서가 모두 틀렸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존재와 능력 여부를 분명하게 알려 주고, 그 다음에 바이블에 씌어 있는 잡다한 것들을 가르쳤어야 옳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그 능력을 분명하게 알게만 해 준다면, 잡다한 가르침(바이블)이 전혀 없더라도, 인간은 스스로 알아서 한 가지도 차질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움직여 줄 것이다.

순서가 틀려 먹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정신병자들에게 혹시 통할 수 있을까? 전혀 올바른 가르침이 못된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또는 예수)와 존재와 그 능력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바이블이 횡설수설 두꺼워지기만 했을 뿐, 어느 누구도 그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예수교의 역사가 피로 점철되고, 예수쟁이들의 언행이 한결 같이 입으로만 떠들어대며 비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도, 예수교(바이블)의 가르치는 앞뒤 순서가 모두 뒤바뀌여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확실하게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은 무조건 신(神)의 존재와 그 능력 여부이다. 그런 다음 여타 잡다한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아니다. 우선적으로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그 능력을 알(믿을) 수 있도록 확인시켜(가르쳐) 주기만 하며, 다른 것들을 중언부언하며 가르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이미 너무 똑똑하다 못해 아부 떠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그 능력을 확실히 알게만 해 준다면, 인간의 과잉 충성과 아부 때문에 여호와(또는 예수)는 지금 쯤 그 영광이 추체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고 있을 껄? 그래 안 그래?

예수쟁이들이 가지고 있다는 그 믿음 이란 것은 오랜 시간이 만들어 낸 습(習)을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정도의 신관(神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교의 신관(神觀=종파)은 현재 30,000가지가 넘으며 또, 각 종파에서도 예수쟁이 개개인에 따른 신(神)도 다르다.
우리 나라에 예수쟁이가 1,000만이라면, 예수(여호와)의 모양(내용)도 1,000만 가지일 수밖에 없다.

가장 더럽게 썩은 모습을 하고서 자기도 속이고, 이웃도 속이고, 신(神)도 속이는 예수교!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비겁한 사람들의 집합체 예수교!
이 모두가 바이블(예수교)의 가르침에 있어 그 앞뒤 순서가 모두 틀려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예수교)은 가장 먼저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그 능력부터 인간이 터득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1,000(실제로는 2,000)만 생명체의 대 탈출]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發行)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幼兒) 외에 보행하는 장정(壯丁)이 60만 가량이요, 중다(衆多)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출애굽기 12;37~38)

애굽(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조상) 족속이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탈출(출애굽)할 때,
첫날은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이란 곳까지 행군을 했다고 한다.

출애굽에 동참한 사람은 유아와 여자 및 잡족을 제외하고,
장정만 헤아려도 60만 가량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정이란 노략질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군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출애굽 때의 히브리 족속은 줄잡아도 300만 이상은 됐을 것이다.
젊은 장정에게는 부모가 있었을 것이고, 늙은 장정에게는 자식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각종 가축까지 포함하면 생명체가 적어도 1,000만 이상은 됐을 것이다. (서울특별시 인구 전체를 상상하면 된다.)
출애굽은 히브리 족속의 생활 자체였으므로,
거기에는 가재 도구를 비롯한 생활 필수품 일체가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라암셋>과 <숙곳>의 거리는 약 40km(100리) 쯤 된다. 이것을 m로 환산하면 40,000m가 된다.
행군할 때의 앞 뒤 사람(생명체)의 거리를 1m로 가정하면, 60만 명 항오(行伍)의 길이는 600km가 되며,
300만 명 항오의 길이는 3,000km가 된다.
가축까지 포함된 생명체가 1,000만이라면, 그 항오의 길이는 자그마치 10,000km가 된다. 서울과 부산을 15번 왕복하는 길이가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간단히 계산하기 위하여 생명체 숫자를 60만이나 1,000만은 빼고, 가장 그럴싸한 300만에 대한 항오 길이 만을 생각하기로 하자.
다시 말해서, 출애굽 때의 히브리 족속 300만의 항오 행렬의 길이가 3,000km라는 말이다. 함께 하고 있는 가축과 가재 도구의 길이는 생략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300만 명의 항오의 길이가 <라암셋>과 <숙곳> 사이(40km)에 75 열 종대로 늘어서야 된다.

이렇게 75열 종대로 서고도, 맨 앞사람이 <숙곳>에 이르렀을 때, 맨 뒤의 사람은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예; 군대)이 행군할 때, 가장 이상적인 모양은 1열 또는 2열 종대가 가장 좋은 것이다.
이것은 훈련이 잘된 군인(젊은이의 집단)의 경우이다.

그런데, 옛날(출애굽이 있을 법했던 시절)에는 애굽과 팔레스틴 지방 사이에 좁은 길 하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출애굽은 남녀노소, 병자, 임산부, 가축 및 가재도구 등 일체가 포함된 잡다한 오합지졸이다.
이런 집단의 이동은 가족 단위로 둥글스럼한 무더기(아주 심한 타원형꼴)들의 일렬 종대 이동이 될 수밖에 없다.
(밀어주고 당겨주고 보살펴야 되니까.)

이렇게 되면, 앞 뒤 사람의 평균 거리가 1m보다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사람과 가축과 가재 도구 등 일체를 계산에 넣으면, 적어도 2,000만 인구(생명체)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2,000만을 애굽의 <라암셋>에서 <예루살렘>까지 늘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애굽의 <라암셋>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400km 쯤 된다. 따라서, 여기에다 300만 명을 늘어 세워도 7~8열의 종대가 된다.
그리고, 2,000만 명(사람, 가축, 가재 도구 등 총체적 합산)을 늘어 세우면 50열의 종대가 될 것이다.
 
출애굽에 동참한 사람이 300만(장정 60만),
잡족과 가축을 합치면 1,000만,
사람과 가축과 가재 도구까지 합치면 2,000만,
이 2,000만을 애굽의 <라암셋>에서 <예루살렘>까지 늘어 세우면! 헐!
다시 말해서, 2,000만을 400km 사이에다 늘어 세우면 50열 종대가 된다. 저런!
 
출애굽 때, 항오의 맨 앞 열 50명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하자.
그래도, 맨 뒷열 50 명은 아직도 애굽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게 된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런데, 아주 이상한 현상이 남게 된다.
이런 괴상한 행렬의 집단이  좁은 시나이 반도 내에서 40년 동안을 배회한 것으로 되어 있다.
어떤가? 설명이 더 필요한가? 아직도 바이블이 허구가 아니라고 변명을 할 텐가?
 
<출애굽기>를 기록하고, <여호와>라는 신을 처음으로 세상에 만들어 낸 사람이 <모세>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출애굽>이 허구로 판명이 되면, <모세>는 어떻게 되는 것이고, <여호와>는 어떻게 돼야 할까?
또, <여호와>의 아들을 자처하는 <예수>는 무엇일까?
 
모세는 허구일지라도,
모세가 만들어 놓은 여호와는 전지전능한 참신이고, 예수도 참신이 되어 예수교는 훌륭한 종교가 되는가? 대박!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7-03-20 (월) 23:34

[그런 시합에 응할 사람이 있을까?]-헐!



   <시합 1>

  甲이 乙에게 시합을 하자고 한다판돈 1억 원을 걸어 놓고서, "서울의 남산을 한 시간 이내에 인천 앞 바다로 옮기는 사람이 그 돈을 갖기로 하자."그러면乙이 시합에 응할까?

 

<시합 2>

왕실까지도 불교 신자인 불교국가에서 어느 예수교 목사 한 사람이 스님 450명을 상대로 시합을 하자고 한다. "불 없이 기도만으로 제물(송아지)을 불사르는 쪽을 참 종교로 하자."이럴 경우, 450명의 스님들 중에 목사의 시합 제의에 응하는 사람이 있을까??

 

<시합 3>

왕실은 물론전국민이 <바알>신을 받들고 있는 나라에서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가 <바알선지자 450명을 상대로 시합을 하자고 했단다. "불 없이 기도만으로 제물(송아지)을 불사르는 쪽의 신을 참신으로 하자."고.

마침내, <바알선지자 450명이 이 시합에 응했다가 자기네 신이 가짜임이 밝혀져서 엘리야가 휘두르는 칼날에 의하여 모가지가 잘려 모두 도륙되었다고 한다. 대박!


다음의 바이블 이야기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가장 유명한 선지자 엘리야의 업적에 해당하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다.

엘리야는 모세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여호와의 최고 최대 앞잡이(선지자)이다. 따라서, 엘리야의 행적이 허구(거짓)로 밝혀지면 예수교 역시 통째로 허구(가짜)로 판명되는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저희(바알신의 제사장들 450)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바알신)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찌라도아무 소리도 없고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열왕기 상 18; 26 ~ 29) 



위의 바이블 구절은 <바알>신의 선지자 450명이 여호와(예수교)의 선지자 1명(엘리야)과의 시합에서 패배하는 장면이다. 바알신의 선지자 450명이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기도를 했으나아무 소리도 없고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아무 돌보는 자도 없더란다.

그런데, 예수교 쪽 선지자 1명(엘리야)은 땔감에다 물을 12동이나 퍼다가 붓고 기도를 했는데도여호와의 불이 내려와서 그 물 12동이까지 싹싹 핥아 먹고제물(송아지)은 물론 주위의 흙까지 새까맣게 태워버렸다고 한다.


바알신과 여호와가 시합을 벌인 끝에 마침내 여호와가 승리를 하고, 동시에 여호와가 전지전능한 참신으로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럴 테지. 예수교의 여호와 말고 "기도에 응답하는 신이 어디 또 있겠는가?" 여호와만이 유일 신이요 참신이고 말고! 헐! and 대박! 예수쟁이들 입 째지겠다.)


 

당시, 저 나라에는 3년 반 동안의 가믐으로 온 백성은 물론 왕까지도 물을 구하러 전국을 헤매던 때이다그런데산 중턱에서 갑자기 웬 물 12동이라니!

그러나, 엘리야 1명과 바알 선지자 450명의 시합은 없었다왜냐 하면기도만으로 제물(송아지)을 불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이런 엉터리 시합에 응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어느 교회 어느 목사치고 위의 엘리야 시합 이야기로 수 십 번씩 설교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없던 사실(허구=가짓)을 있었던 사실로 설정해 놓고서 이것이 "참이라고 떠들어대는 짓이것이 바이블이요 예수교의 실상이다.


이런 허구 속에서도 예수교의 악질적인 모습은 들어 있다. <바알>신의 선지자 450명이 기도하고 있을 때엘리야가 그 옆에서 하고 있는 짓(행패)을 보자.

"<큰 소리로 불러 봐라>,

<너희 신이 묵상하고 있는지>,

<너희 신이 잠깐 밖으로 나갔는지>,

<너희 신이 혹시 밖에서 산책하고 있는지>,

<아니면너희 신이 낮잠을 자고 있는지>...."

줄임표(....)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엘리야의 타 종교에 대한 만행질은 한참 더 계속됐음을 알 수 있다.


예수쟁이들이 병원에 떼거리로 병문안을 가서 기도질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그럴 때어느 누가 옆에서 다음과 같이 조롱을 했다고 하자.

<"더 큰 소리로 불러 봐라여호와가 묵상 중이거나 낮잠 중이면 못들을 수도 있지 않느냐혹시여호와가 외출했거나 산책 중일지도 모르잖느냐그러니더 큰 소리로 계속 더 불러 보거라>

어떤가이렇게 조롱을 하면 예수쟁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필자 주>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만들어 냈거나 증명한 가장 유명한 선지자를 뽑으라면 모세와 엘리야를 꼽을 수밖에 없다따라서모세와 엘리야가 허구로 판명된다면예수교의 존립 기반이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위의 글은 바로 엘리야의 모든 것이 허구임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엘리야 자체가 통째로 가짜인데도 예수교가 허구(거짓)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ㅎㅎ...아멩 할렐루야! 


재차 삼차 강조해 둔다. 

바이블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선지자 1명(엘리야)과 바알신 선지자 450명의 시합은 없었다. 성냥(또는 라이터)도 없이, 땔감도 없이 기도만으로 제물(송아지)을 불살라보겠다는 그런 엉터리 시합에 응할 사람(바보)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정신을 가다듬고 정독을 해보면 단 1가지도 제대로 된 내용이 없는 허구(거짓)가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이다. 헐! 





[양자 택일(兩者擇一) 하라]-대박!


예수교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읽어봐도, 
예수교의 과거(역사)를 훑어봐도,
예수교의 현재 모습을 살펴봐도,
예수교의 다른 어떤 구석을 둘러봐도,
예수교를 좋게 보아 줄만한 것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예수교를 좋게 보아 주려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이 공명정대하든지,
예수교의 과거(역사)가 아름답든지,
예수교의 현재의 모습이 아름답든지,
이상의 3가지 중 적어도 1가지라도 그럴싸한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공명정대해야 함은 두 말이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블이 어느 정도 엉터리일지라도 예수교의 과거(역사)와 현재의 모습이 아름답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예수교를 크게 나무라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교 속에는 악질(惡質=못되고 나쁜 성질)적이지 않은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예수교에 썩어 문드러지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예수교의 신이라는 여호와(또는 예수)는 이제 양자 중 택일을 하여 확실한 태도를 취해야 될 때가 된 것 같다.

참고로 말해 주는 것이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한국에서는 
"퇴진하라."
"하야하라."
"파면하라."
"인용하라."
"기각하라."
"각하하라."
등등의 외침으로 세상이 떠나가도록 요란했었다.

그래서, 비슷한 의미로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에게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양자 택일하라."
다시, 말한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양자 택일하라."----"택일하라."-헐!

1. 여호와(또는 예수)는 바이블과 예수교 역사 속에서 해오던 대로 계속해서 무능한(또는 못돼 먹은) 신 노릇을 계속할 텐가? 
2. 아니면, 여호와(또는 예수)는 존재해 본 적도 없으면서 억울하게도 악신(惡神)이라는 누명을 쓰고서 예수쟁이들에게 억지로 끌려다닌 허구(거짓)였음을 밝힐 텐가?

여호와(또는 예수)가 정말로 존재하는 신이라면, 그는 무능한(또는 못돼 쳐먹은) 악신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또는 예수)는 존재해 본 적이 없는 허구(가짜)임이 밝혀진다면, 악신(또는 잡놈)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다시 묻겠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잡놈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존재하는 신 노릇을 계속 하겠는가? 아니면, 존재해 본 적이 없는 허구(가짜)임을 밝혀 억울한 누명을 벗어 보려는가?
이 양자 택일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 2,000년이 넘도록 아직도 더럽고도 악질적인(실제로는 허구) 자신을 숨기고 있다니, 참으로 어리석고 못됐도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다시 한 번 더 묻겠다.
여호와(예수)는 못돼 먹은 악신(惡神) 노릇을 계속 더 하겠는가?
아니면, 여호와(예수)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임을 밝혀 악신이라는 누명을 벗겠는가?
전자를 택할 것인가? 후자를 택할 것인가? "양자택일하라." ㅎㅎ...아멩 할렐루야!


** 참고; 여호와(또는 예수)야, 양자 택일(兩者擇一)이 뭔 말인지 모르겠거든 국어사전을 찾아보든지 유식한 예수쟁이에게 물어보든지 하여 답을 하기 바랄께. 알았지?



[더럽고 치사한 잡놈]


천지를 창조해 놓고서 이것을 임의로 다스리느라 밤잠도 자지 못하고 설친다는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
나는 그 신 여호와(또는 예수)를 더럽고 치사한 잡놈 중의 잡놈이라고 단정한다. 

인간으로 하여금 1,000년, 10,000년을 살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겨우 100살도 허락하지 못하는 알량한 성품도 치사하고, 
인간이 원해서 주어진 삶이 아니라 제 녀석(여호와 또는 예수)이 제 멋대로 동원시켜 놓은 인생인데, 그 짧은 삶 중에도 필설로는 그려낼 수 없는 고통(비극)을 안겨주는가 하면, 
늙어서 우굴쭈굴 보기 흉측한 모습으로 병을 앓다가 초라하고도 비굴한 모습으로 죽어가도록 세상을 이끌어 가는 여호와(또는 예수)의 그 악질적(惡質的) 심술을 어떻게 좋게 보아줄 수가 있겠는가?

짧은 인생일망정 젊고 아름답게 품위를 유지하며 살다가 죽게 하면 무엇이 덧나기라도 하는가? 헐!
아니, 살아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비명횡사하게 되는 이유는 왜인가?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전지전능해서 못하는 게 없다는 녀석인데도 세상을 이따위로 이끌어 가는 행패를 보노라면 좋게 보아줄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인간(모든 생명체를 포함해서)과 무슨 원수진 게 있기에 인간을 그렇게 잔인하게 이끌어가고 있을까?
인간(모든 생명체를 포함해서)이 언제 태어나고 싶다고 소원했었던가?
도대체, 무슨 심보짝으로 생명체들을 억지로 동원시켜 놓고서, 이게 무엇을 하는 짓일까?

그리고, 무엇을 어쩐다고?
제 놈을 믿지도 않고 받들지도 않는 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으로 보내어, 그 고통으로 영원토록 이를 갈게 하겠다고라? 대박!
이렇게  못돼먹은 녀석을 가리켜 겨우 "더럽고 치사한 잡놈"이라고 명명한대서야 제대로 된 표현일까? 

더 긴 설명을 하지 않겠다.
입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고, 공연히 흥분되어 마음을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또는 예수)는 더럽고 치사한 잡놈이다."처럼 간단 명료한 말로 대신하려고 한다.

달리 적당한 어휘와 문장을 만들어낼 재주가 내게는 없으니..........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도 있지만, 더럽고 치사한 잡놈(여호와 또는 예수)을 사랑의 신(神)이라며 감싸고도는 예수쟁이들에 대해서는 더욱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헐!

"바보 + 악질 + 뺀들뺀들" 이런 종합적인 의미를 가진 어휘는 없는 것인지?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모습] 


(1) 부모가 어린 자식들의 잘못을 선도하고 사랑으로 양육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모 쪽에서 말썽을 저질러 놓으면 그에 대한 불행과 고통을 자식들이 책임지고 감내하는 모습. 

(2) 정부 또는 국가가 국민의 뜻과 어려움을 헤아려서 그 일을 처리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부와 국가가 일을 크게 저질러 놓으면 그것으로 인한 불안과 고통을 국민이 참고 뒷수습해야 되는 모습. 

(3) 말 그대로 종교가 인생의 모범을 보여 주어 불쌍하고 연약한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게 아니라, 
세상의 어느 쓰레기통보다도 더 썩어 있어서, 오히려 비 종교인들이 참고 기다려 주는 모습. 

(4)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하면서도 이상한 모습이 있으니, 이 반기련 게시판을 자세히 드려다보면, 
비 예수교인들은 <바이블의 내용>과 <예수교의 교리>와 <예수교의 역사>에 대하여 열심히 정성을 다 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반면, 
예수쟁이들은 한결 같이 <바이블>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궤변으로, <예수교 교리>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잡설로, <예수교의 역사>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공허한 말로 정성 없이 대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가? 
어느 쪽에서 <바이블 내용>으로, <예수교 교리>로, <예수교 역사>로 말을 해야 사리에 맞는 모습이라고 생각되는가? 
비 예수교인 쪽에서는 바이블(교리, 역사) 내용에 준해서 열심히 정성을 다 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예수쟁이 쪽에서는 바이블(교리, 역사) 내용과는 거리가 먼 잡설을 전혀 정성도 없이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듯 내뱉는 모습을 예수쟁이들은 무엇이라 변명하겠는가? 

한 가지 더. 
예수교(바이블) 주장으로 천지는 여호와가 창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천지 내부에 존재하는 자연 질서(과학 및 논리) 또한 여호와가 창조한 것일 게다. 
아니, <천지>와 <자연 질서>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해야 맞는 말일 게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쟁이> 쪽에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말을 구사해야 정당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비 예수교인들은 모두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논설을 전개하는데 반해서, 예수쟁이들은 한결 같이 <비 과학적>이고 <비 논리적>인 궤변 외에는 다른 방법의 말을 할 줄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비 과학 또는 비 논리를 주장할지라도, 예수교만은 죽음을 무릅쓰고 과학과 논리를 고수해야 될 입장이다. 
왜냐 하면, 과학과 논리도 여호와가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예수쟁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거꾸로 <바이블 내용>과 <예수쟁이들>만이 세상을 비 과학적, 비 논리적 방법으로 미련을 부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시 말한다. 
어느 쪽에서 가장 과학적,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해야 된다고 생각되는가? 
예수쟁이 쪽인가, 아니면 비 예수교 쪽리라고 생각되는가? 
예수쟁이들이여!!!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자. 
제삼자 2017-03-23 (목) 16:07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라고 했던가?]


[내(바울=예수의 최고 최대 앞잡이)가 복음(福音=예수 또는 여호와의 가르침)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救援)을 주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1) 누가 뭐랬나?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더니....저 깊은 마음 속에서는 부끄러웠던 모양이지? 헐!

혼자 이불을 쓰고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바이블 내용 중에 믿어지는 것도 없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도 없고, 말이 성립될 만한 구절도 찾을 수가 없었던가 보다. 
허구(虛構), 궤변(詭辯), 모순(矛盾)을 억지로 합리화시키며 믿어 보려고 하다 보니, 배운 자로서 바울은 속으로는 꽤나 부끄러웠던가 보다. 웬 일이니? 헐!

아니다.
그보다도, 예수교(즉 허구 및 공갈 협박)로 아녀자들의 코 묻은 재물을 후려서 먹고 사는 일보다 더 부끄러운 짓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속일 수는 없었겠지?
바이블을 가지고 혹세무민으로 사기를 쳐서 먹고 살자니 저 깊은 속에서는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을 테고, 겨우 한다는 변명이 "내가 바이블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어쩌고 저쩌고... 그래 안 그래? 대박!

(2)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양복을 쭈욱 빼입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옆구리에 끼고서, 대로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소(失笑)를 금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요즈음은 사실상 바이블을 보이게 지참하고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왜지?
그 바이블이란 것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라면 돈을 주면서 시켜도 못할 일이 그 짓(바이블을 옆구리에 끼고 대로를 활보하기)일 게다.

무차별 잔인한 살인 만행질, 노략질, 포르노 이야기, 공갈과 협박 그리고 허구와 모순, 또 그리고 악담과 저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을 어떻게 옆구에 끼고서 저리도 의젓할 수가 있을까? 
"모르는 게 약" "무식(無識)이 태평(太平)" ".........................." ㅎㅎ...아멩 할렐루야!

(3) 부끄럽지 않기로 따지자면, 불교인도 불경이 부끄러울 리 없고, 모슬렘은 코오란이 뿌끄럽지 않을 것이며, 유교인도 4서 5경이 부끄러울 턱이 없다. 
학자에게 연구 서적이 부끄럽지 않을 테고.....

바울(예수의 최고 최대 앞잡이)은 무슨 연유로 새삼스레 복음(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부끄럽지 않다느니 뭐니 했을까? 
스스로 바이블(신약)의 거의 절반을 써서 삽입시켜 놓고는, 당사자로서 그 바이블이 부끄럽지 않다고 떠들 이유가 무엇일까?

인류 역사상, 바울보다 더 많은 전쟁과 살인 만행질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있을까? 
바울이 살아 있다면, 지금도 부끄럽지 않을까? 아니, 후회하지 않을까?


(4)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무서운(위험한) 것이 무엇일까? 
살인일까? 도둑질일까? 폭력일까?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먼 훗날, 그 가르침에 세뇌되고, 마침내 습(習)으로 굳어진 사람들에 의하여 별별 만행질이 횡행하게 되어 있다. 
특히, 그것이 정신 세계를 훔쳐 내는 예수교의 가르침(믿음)에 이르러서는 수습되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현상을 쏟아 놓게 되었다.

(예수교가 정신 세계를 훔쳐 내고, 그 자리에다 엉뚱한 것으로 세뇌시켜 놓은 얼 빠진 예수쟁이들이 인류 사회 속에다 배설해 놓은 결과!
그 결과의 불행들을 어찌 다 일일이 열거할 수가 있을까? 이보다 무섭고도 끔찍한 현상이 어디에 또 있을까?) 헐!




[믿음의 조상]-이런 호칭이 가능할까?


예수교에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단다. 
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첫째도 믿음" "둘째도 믿음" "셋째도 믿음"하면서 믿음을 가장 큰 가치로 삼고 있다.
이런 예수교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린다는 것은 명예 중의 명예요, 최고의 가치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쨋든, 아브라함은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시키는 대로 믿고 따라서 마침내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얻은 셈이다.

** 여기에서 "시키는대로"란 무슨 의미일까? 요즈음의 예수쟁이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여호와란 녀석을 만날 수는 없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직접 만나서 그 지시(또는 명령)를 받으면서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여호와가 시키는대로 움직인 인간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를 가리켜 "믿음"이라고 명명해야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예수교(바이블)는 IQ 45이하 짜리들 끼리 모여서 노는 곳이 아닐까? 대박! ㅎㅎ...아멩 할렐루야!


1) [여호와가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서 하는 말이다), 

"....내가 그(아브라함의 처=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아브라함의 처)는 90세니 어찌 해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여호와에게 고하되, "......."]

(창세기 17:15~18)


위의 바이블 내용은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점지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이고, 사라(아브라함의 처)의 나이는 90세였다고 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약속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던,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일까?" 헐! 


2) [그(여호와=예수교의 신)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아브라함)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아브라함의 처)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월경)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남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창세기 18:10~12)


아브라함과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임신 출산에 대하여 대화(약속)하는 소리를 아브라함의 처 사라가 장막 뒤에 숨어서 엿들었던 모양이다.
아브라함의 처도 자기의 나이 많음을 생각하며, 여호와의 약속을 웃어 넘기고 말았던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는 여호와가 전지전능할 뿐만 아니라 천지와 인간을 창조해 놓고서 이것을 임의로 다스리는 신이란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용한 신이 늙은 부부에게 아들을 점지해 주겠다는데 그것을 믿지 못했다? 말이 된다고 여겨지는가?
"천지 창조"와 "늙은 부부에게 아들을 점지시키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 일일까? 
"늙은 부부에게 아들을 낳게 하는 일"은 "천지 창조"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안 그래?

그렇거늘, 아브라함 부부는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믿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었을까"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말장난을 더 보기로 하자.


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承認)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창세기 18;13~15)


아브라함과 여호와가 임신 출산에 대해서 대화(약속)를 나누고 있을 때, 아브라함의 처 사라가 장막 뒤에 숨어서 듣고 있었다는 얘기는 위에서 했다. 
늙은 부부에게 자식을 낳게 해 주겠다는 여호와의 말(약속)이 너무도 허무맹랑하므로 사라는 장막 뒤에 숨어서 웃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여호와 쪽에서 따지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사라야, 네가 왜 웃었느냐?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느냐?"

사라; "(겁이 나서) 아닙니다. 웃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아니야. 너는 분명히 웃었다. 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웃었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단다."


아브라함의 처 사람가 장막 뒤에 숨어서 웃었지만, 여호와는 그것을 보지 않고도 아는 재주가 있었다는 것이다. 헐!
여호와의 전지전능을 나타내려고 벌이는 어설픈 연극이 아닐 수 없다. (농담 따먹기?)
어쨌든, 아브라함 부부는 여호와를 믿지 못해서 우왕좌왕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인가?"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행하는 중에도 여호와를 믿지 못하여, 인위적으로 속임수를 쓰다가 제 계집을 빼앗기기까지 한 사람이다.



인류 역사상,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정말로 믿은 사람이 있을까? 속임수 없이 정말로 믿은 사람이 있을까? ㅎㅎ...아멩 할렐루야!
있다면, 그는 진짜로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다. 아니면 진짜 천치 바보이거나. 대박!


추신; 머잖아 예수교가 시들해지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텐데, 그 때에 예수쟁이들은 예수쟁이가 아니었었던 것처럼 소리 소문 없이 비 예수교인 노릇하지 않기로 하자.
"과거 한 때, 나는 예수쟁이였었습니다."라는 표시를 하도록 하자.
꽤나 세상을 괴롭히고 피곤하게 하던 마귀가 아무 벌도 받지 않고 은근슬쩍 예수쟁이가 아니었던 것처럼 행세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제삼자 2017-03-23 (목) 16:10
[인류 역사의 최대 범죄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354~430)는 초대 예수교의 가장 유명한(?) 교부신학자라 불린다.
예수교의 기초와 근본 교리는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수교의 기초와 근본 교리를 창조해 낸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역시 대단해! 헐!

"바이블(예수교의 신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권위에 입각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인간의 모든 정신력보다 바이블의 권위가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러나, 중세 예수교(예수교의 최고 전성 시대)는 고대의 경이로운 유적과 이교도 신앙의 문화 업적을 잿더미로 만들어 문명을 1,000년 이상 퇴보시켜 놓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렷다. 헐!
예수교에 의한 이교도 유산을 무지막지하게 파괴한 짓은 역사상 최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잃어버린 유산의 그 규모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예수란 녀석이 오기 전 고대인들은 이미 피라미드와 파르테논 신전을 짓고, 우주의 아름다운 모형을 만들 줄 알았으며, 거의 정확한 지구의 둘레도 계산해 낼 줄 알았었다.
그러나, 예수교의 기초와 근본 교리가 확리되고서 그것이 세상을 주무르던 아우구티누스 이후 수 백 년 동안 유럽에서는 벽돌집을 짓는 방법도 몰랐다고 한다. 웬 일이니!

예수교의 전성 시대인 중세에 "지구는 평평하다"를 믿지 않는 자는 이단으로 몰렸으며, 이교도의 신비주의와 과학적 탐구 정신은 독선적(독단적) 권위주의에 휘말리고 말았다.
* 여기에서 예수교에 의한 인류의 문화 유산 파괴 현장을 다 열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그 예수교는 우리 한국의 문화 유산(단군과 불교 등등)을 파괴하고 있다. 이보다 더한 민족 및 인류에 대한 반역 행위가 있을까?
예수교에 의한 반역 행위로 빚어지는 비극은 되 돌이킬 방법도 없다. 거기에다 예수교는 인간의 원형까지도 파괴해 놓는다. 아예 정신 세계를 파탄시켜 놓는다. 저런!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금이라도 예수교의 만행질은 막아져야 된다.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예수교의 만행질에 의한 손실과 불행을 영원히 막지 못할 것이다.




[예수교식 늙은이 로맨스]-헐!

60살 먹은 늙은이가 혼인을 하겠다면서 적령기의 딸을 달라고 하면, 딸을 가진 부모의 반응은 어떤 것이 될까?
조선 왕조 제 21대 왕 영조는 65세 때, 14살 짜리 정순왕후와 혼인을 한다.
이 때, 정순왕후의 친정 아비 김한구는 좋아서 죽을 지경이었을까? 아니면, 소태(또는 쓸개)를 씹은 맛이었을까?
아니지, 김한구는 임금의 사위가 되어 금위대장, 어영대장 등등의 높은 벼슬을 해먹는 재미로 부끄러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겠지?

또, 나이 어린 정순왕후는 늙은 서방일지언정 왕후의 지위를 누리며, 늙은 며느리(사도세장의 아내=정조의 어머니) 들복는 재미로 부끄럽기는커녕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즐거울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저런! 
(각설하고) 


(1) 예수교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손자에 <야곱>이란 녀석이 있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의 시작이라고 한다. 
<야곱>은 <에서>와 함께 쌍둥이 형제라고 한다. (에서가 형, 야곱이 동생임)
따라서, 에서와 야곱은 동갑내기일 수밖에 없다. 에서는 효자였으며, 야곱은 간악한 사기꾼이요 잡놈었다고 한다. 
형 에서는 40살 되던 해에 장가를 든다 (창세기 26;34). 그렇다면, 이때 동생 야곱의 나이도 40세였을 것이 분명하다. 


(2)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동생 <야곱>은 속임수를 써서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았다고 한다. 그게 가능한 짓인지는 모르겟으나...어쨌든, 예수교의 신 여호와도 여기에 합세를 한다. 
또, 시간이 한참 흐른 후, 형 <에서>의 보복이 두려워진  동생 <야곱>은 야반 도주를 하여 수 백 km 떨어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친다. 
이 때, 쌍둥이 형제<에서>와 <야곱>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 적어도 50살은 넘어으리라. 아마 60살 내외가 됐을 수도...<에서>와 <야곱> 형제는 늙은이가 됐을 거란 말이다. 


(3) 외삼촌 집에서 <야곱>은 부지런히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외삼촌 라반이 생질 야곱에게 말했다. 
"아곱아, 네가 나의 생질(누이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공짜로 나의 일만 하게 놔둘 수야 없지 않느냐? 무엇으로 너에게 보답하면 좋겠는냐? 말해 보거라." 

그러자, 야곱 왈,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를 내게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외삼촌의 머슴으로 7년 동안 봉사해 드리리다." (창세기 29;18) 
외삼촌 라반의 작은 딸 라헬은 <야곱>의 눈에 아리땁게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때 라헬이 5~6살 짜리 꼬마 계집 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라헬은 적어도 결혼 적령기의 처녀였을 것이다. 
이에, 외삼촌 <라반>의 대답을 들어 보자. "...그(딸 라헬)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창세기 29;19) 

적령기의 딸(15세 소녀?)을 50~60살 먹은 늙은 조카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흠쾌히 허락을 했다는 말이다. 헐!
그것도 지금 당장이 아니라, 조카 <야곱>이 약속대로 7년 동안 머슴살이를 끝낸 후에 혼인시켜주기로 약속이란 것을 했단다.


(4) 이리하여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7년 동안 머슴으로 봉사한 후 마침내 라헬을 차지하게 된다. 
덤으로, 라헬의 언니 레아까지도 마누라로 차지하게 되고, 그들의 여종 둘도 첩으로 가지게 된다. 
이 야곱 얘기(옛날 애기)는 예수쟁이 노릇 2년만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이다. 대박!

그리고, 이 이야기는 유년 주일학교라해서 초등학교 아동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적인 동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60살(?) 먹은 늙은이가 음흉하게 열대여섯 살 먹은 어린 계집 아이에게 장가드는 흉칙한 이야기가 어린이 교육용으로 떠들어진다는 말이다. 헐!
마치, 영화 제목의 <꼬마 신랑> 이야기처럼? 정말? 정말 헐이네!


(5) 결론: 50살이 지나 60살이 다 된 늙은 놈이 딸을 달라고 했을 때, "그(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좋다."고 맞장구를 치는 아비도 있을까? 헐!
또, 늙은이가 적령기의 딸을 달라고 해서 그것을 허락했으면 즉시 줄 생각을 하지 않고 7년 씩이나 뒤로 미루어 두었다가 혼인을 시켜 주는가? 대박!
적당한 혼처가 나타났는데도 적령기의 딸을 붙잡아 뒀다가 7년 뒤에 시집을 보내는 그런 부모도 있을까? 역시 대박!

작은 딸만 달라는 늙은이에게 큰 딸과 그 여종들까지 얹어서 선물하는 부모도 있는가? 대박! 중 대박!
이 곳(바이블)을 기록한 자나, 여기를 해설하는 자(목사)나, <야곱>과 <라헬>의 나이를 계산해 본 자가 있을까? 
아니, 여기만이 아니라, 바이블 전체를 통틀어 숫자 계산에 밝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바이블을 꾸며 낸 자들은 어쩌면 저리도 수리 계산에 빵점 짜리들만 모여 있었을까? 
그건 그렇다 치고, 라반(외삼촌)과 야곱(조카)의 대화가 인간 사회에서 있을 법한 현상일까? 이것이 예수교식 늙은이의 모맨스란 말이지? 대박!


(6) 예수교(바이블)에 대한 총체적 결론의 결론: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은 허구요 궤변이요 모순이며, 인류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될 악서이다. 
바이블은 고대 중동 지방의 사막 벌판에서 노략질로 생업을 삼아 살아가던 비적떼 집단의 전쟁 교과서일 뿐이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는 장난으로라도 흉내를 내어서는 절대로 안 될 흉악한 악서가 바이블이다. 이것이 예수교의 실체이다. ㅎㅎ
제삼자 2017-04-01 (토) 06:17
[예수교가 세상과 공존할 수 없는 이유]


예수교가 세상과 공존할 수 없는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이유들을 여기에서 모두 열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간단히 2가지만 거론해 보려고 한다.
예수교의 근본을 따져 보려면, 베드로와 바울, 이렇게 2사람을 빼 놓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 12명 중 수제자에 해당하는 녀석이고, 바울은 신약(바이블)의 거의 절반이나 기록해서 남겨 놓은 녀석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예수를 가리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여호와(예수교의 주신)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 고백을 한 진짜로 위대한 녀석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보다도 먼저 예수교를 창시한 녀석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말로 대단한 녀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예수교에서 예수와 여호와 다음으로 빼 놓을 수 없는 위대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두 말 필요 없이 무조건 베드로와 바울일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런데, 말이다.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사실상 베드로와 바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거론할 얘기는 아니지만, 실제로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여호와도 아니고, 예수도 아니며, 베드로와 바울도 아니다.
그러면,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당장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목사와 신부 그리고 신학자라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예수교가 세상과 공존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 보기 위해서는 부득이 베드로와 바울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 즉, 목사와 신부 그리고 신학자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자.) 


자, 그러면, 이제 본론(예수교가 세상과 공존할 수 없는 이유 2가지)으로 가보자.


(1) [이에 베드로가 성령(聖靈=여호와)이 충만(充滿)하여 가로되, "....다른 이로서는 구원(救援)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기록해 놓은 바이블의 말씀이라고 한다.

바이블은 성령(聖靈=여호와)의 감동(感動)으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하자(瑕疵=잘못 또는 불완전)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라고 한다. 헐!
위의 바이블 내용은 베드로가 성령(여호와)의 충만(充滿)함 가운데 선포한 말이므로 역시 조금도 잘못된 부분 없이 완벽한 진리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는 명실 공히 예수의 수제자(首弟子)이다. 
이런 자가 여호와(성령)의 감동으로 선포한 진리이므로 진짜 중의 진짜 진리일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다시 한 번 더 음미해 보자.

"예수 이외의 다른 어떤 이(존재)로서는 구원(救援)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天下) 인간(人間)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예수뿐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어떤 종교(가르침)라도 모두 다 없애 버리고 오직 예수교만 존재해야 된다는 말이다.
여호와는 "자기 외에 다른 신(神)을 두지 말라." 했고, 예수는 "자기 외에 다른 구원자(救援者)가 없다."고 단호히 선포해 둔 셈이다. 
그리하여, 예수교는 이에 준하는 일을 역사 속에다 쏟아 놓았다.

긴 설명 필요 없이, 예수교는 세상을 향하여 '믿음이냐' '죽음이냐' 또는 '지옥'이냐 '천국'이냐 이 둘 중에 하나를 택할 것을 요구하는 종교이다.
혹시라도 다른 주장 즉, 다른 종교와 공존 운운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철저한 속임수일 뿐이다. 
만약, 속임수가 아니라면, 그것은 이미 예수교가 아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 내려진 성령의 역사(役事)를 부정하면, 바이블 전체도 부정되는 것이므로, 이미 바이블도 없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교의 갈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예수교의 갈 길은 인류 사회로부터 격리 또는 도태되는 길 뿐이다. 
이미 서구(西歐) 사회에서는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바이블의 내용은 모두가 비윤리적이고, 살인마적이며, 독선과 배타적이어서, 인류를 제도하기에는 가당치도 않다.


(2)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린도전서 3;11)

이것은 바울이 떠들어 놓은 말이다. 베드로의 주장과 같은 내용의 말이다. 구원(救援)의 길은 예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신약(바이블)을 가장 먼저 쓰기 시작했고 또 그 신약의 거의 절반을 쓴 바울 그리고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 이 두 녀석이 선수쳐서 떠들어 놓은 말이므로, 이 세상에는 오직 예수뿐이며, 타종교 또는 비 예수교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교는 그 경전인 바이블을 수정해도 의미가 없고, 근본주의 정신 그대로를 고집해도, 이미 때는 늦어 오직 인류 사회로부터 도태되는 방법 밖에는 남은 길이 없다. 
바이블(예수교)은 폐기 처분되어야 한다. 악독하고 잔인할 정도로 독선(獨善)과 배타(排他) 정신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예수교는 그 교리가 생리적으로 타(他)와 공존할 수 없는 무서운 집단이다. 헐!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헐!


(1) 콩알 만하게 쫄아 붙은 제자 위에 군림하여 우쭐거리는 스승(?)
(2) 주눅이 들어 얼어 붙은 자식 위에 군림하여 큰 소리 탕탕 쳐대는 부모(?)
(3) 바보 병신이 되어 두 손 싹싹 빌어대는 인간 위에 군리하여 기세 등등한 예수교의 신이라는 여호와 또는 예수(?)

위에 나열된 3종류들! 참으로 볼만한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청출어람--쪽(마디풀과에 속하는 1년생풀)에서 뽑아 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도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훌륭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순자(荀子)의 권학(勸學) 편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
자식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
인간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고, 자기 앞에서 설설 기는 인간을 바라는 신,
이런 스승과 부모와 신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되는가? 헐!


[이 동리에서 너희(예수쟁이들)를 핍박하거든 저 동리로 피하라.
내(예수)가 진실로 너희(12 제자)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예수)가 오리라.
제자(弟子)가 그 선생(先生)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

(마태 10;23~25)


위의 바이블 내용은 제자들에게 전도 여행을 보내면서 예수가 들려주는 말이다. 
"진실(眞實)로"라는 접두사(?)를 들이밀며 떠드는 말이므로 틀림없는 말일 것이다?
아니, 사기꾼일수록 "진짜로" "정말로" "진실로" "......." 등등의 군더기 강조하는 말을 거듭 거듭 강조하게 마련이다. 대박!


1. "전도 여행을 다니다가 상대가 핍박을 하거든 도망가라." 헐!
전지전능한 신(여호와 또는 예수)을 선전하러 다니는 짓인데, 감히 핍박을 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또, "도망을 가라."니, 이게 될 말인가? 전지전능한 재주를 언제 써먹으려고 숨겨두고 있을까?
전지전능한 재주를 가진 녀석이라면, 자기를 세상에 알리는 뛰어난 방법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위급할 때 도망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무능한 인간에게 그 짓을 시키는 이유가 뭘까?

2. "전도 여행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돌기 전에 예수가 재림하리라." (마지막 심판 날이 온다는 뜻?)
전 세계 또는 지구 전체가 아니라, 겨우 강원도 만한 이스라엘을 다 돌기 전에 "예수가 재림한다."는 약속의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나라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고....시간적으로는 2,000년도 훨씬 지났다. 
예수 녀석은 무엇이 무서워서 아직도 못 오고 있는 걸까? 예수교의 가장 큰 종교 사기극이 아니고 뭘까? 헐!

3. "제자가 선생보다, 자식이 부모보다, 더 높아 질 수 없다." 예수가 떠든 말이다. 헐! 정말로 훌륭한 가르침이로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렇다면,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이라니까, "예수도 여호와보다는 못난 놈이 되어야 옳다." 그래 안 그래? 헐!
그러면, 예수교의 위대한 교리 <삼위 일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자식은 아비보다 못 나야 되는 것이면, 예수는 여호와의 발바닥이나 빠는 신세 아냐? 그런데도 <삼위일체야?> 대박!

제자가 선생보다 못해야만 되는 세상이라면,
끽해야 제자가 선생만큼만 되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의 결말은 무엇이 될까? 헐!

"곡식 밭의 김을 매지 말라.(마태 13;29)"는 가르침과
"제자가 선생보다 더 크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은 예수교(바이블)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 좋았어!

결국, 
예수(여호와)는 인간 위에 군림하여 영원히 인간의 코를 뚫어 끌고 다니며 부려먹고 착취하겠다는 의도인데, 실로 무서운 발상이다.
아니, 지극히 사리에 맞지 않는 무섭고도 답답한 말이다.

10년, 20년.....아니 평생을 드나들면서도 졸업을 못하고, 그 더럽고 악질적인 시궁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예수교의 무리들! 과연 약이 없는 병자들인가! 헐! and 대박! 그리고, ㅎㅎ...아멩 할렐루야!



[닐리리야 닐리리 여호와의 심술보]-쉬어 가기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심보 

사기꾼 예수님 닐리리 재림하는 그 날에

원수의 비바람 닐리리 비바람 불어온다네

그 녀석 있는 곳을 알아야 알아야지

믿든지 말든지 그래든지 말든지 닐리리 

닐리리야 닐리리 고약한 심보짝 

제삼자 2017-04-02 (일) 06:06
[신(神)의 허무 맹랑한 말장난]-헐!


(아래 글은 골치가 아파서 쓰다가 중도 포기한 글이다. 독자들이 적당히 이해하시기 바란다.)


예수교 신약(예수의 가르침)의 요한은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 담긴 뛰어난 책이라고 자랑한다.
그렇다면, 그 요한이란 책 내용 중 다만 몇 구절이라도 읽어 보지 않을 수가 없겠지?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여호와와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여호와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여호와와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 1;1~3)


결론적으로, 말씀=여호와=예수라는 등식을 강조하고, 이들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는 말이다. 대박!
그런데 말이다. 전지전능한 신(神)이 무지무능한 인간에게 들려주는 말치고는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까?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을 수도 없고, 도무지 무엇을 알려주려고 떠드는 말인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전지전능한 신(神)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주고 받는 대화라면 모를까,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무엇을 어쩌라고 떠드는 말일까?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비약적(飛躍的)인 내용을 떠들어 놓고서 인간으로 하여금 알아서 기라는 것인지? 
느닷없이, 여호와=예수가 굉장한 힘을 가진 신(神)이라는 말만 허공중에서 뚝 덜어졌을 뿐이다. 이것이 신이 인간을 제도하겠다고 가르치는 말이란 말인가? 헐!


2)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 1;4~5)


여호와(또는 예수)에 관한 것은 중간 과정 없이 허공중에서 복사(輻射=태양열이 중간의 전달 물질 없이 펄쩍 뛰어 건너오는 방법)되어 날라온 궤변이다. 
여전히, 예수교의 모든 것은 머리와 꼬리가 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그래 안 그래?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 깨닫지 못하는 책임이 누구의 것일까? 전지전능한 신이 그 빛이라면, 인간을 골탕먹이려는 고의(故意=일부러 함)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좋은 말 쉬운 말로 가르치거나 납득(교육)시키지 못한다면, 그 전지전능을 어디에다 써먹으려고 그럴까? 이런 짓이 전지전능하다는 신의 할 짓인가? 헐!

"빛이 어두움을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은 어두움을 밝혀 주는 게 그 기능이다. 그런데,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면, 그 빛이 빛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게 무슨 빛이란 말인가? 헐!
예수교(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는 뭔가를 알게하지 못하고, "믿으라"는 말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 속에는 모든 것이 어둡기만 하고 깨달을(터득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뜻이다. 밝혀주는 빛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 안 그래? 저런! 


3) [여호와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려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요한)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러라.]

(요한 1;6~7)


세례요한(사람)이 빛=예수를 증거하러 여호와로부터 파송되었다고 한다. 왜, 신이 직접하지 않고 사람을 파송하는가? 
유통 과정이 긴 물건은 값이 비싸지고, 중간 과정이 긴 설명은 결국은 종교 사기꾼들에게 혹세무민질을 할 기회를 제공하는 짓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바이블 내용이 사실이라면, 빛(예수)이 나타나면, 어두움은 저절로 물러 가게 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한(사람)의 증거가 무엇에 필요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교의 신(神)은 직접 나타나서 해야 될 일인데도, 반드시 중간에 어떤 사람을 통해서 무엇이든 배배 꼬아서 일을 처리한다. 예수교의 신이란 작자는 왜 이렇게 할까?

다시 말하지만, 공산품(工産品)도 소비자에게 이르는 동안 중간 과정이 많으면, 가격이 비싸지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손실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의 가르침(신이 할 일)도 중간 과정이 길어지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현상"보다도 더욱 이상하게 배배 꼬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여호와(예수)-모세-선지자-제사(장)-세례요한-사도(使徒)-교부(교황)-신부-목사-장로-권사-집사-권찰(?)-평신도-전도 대상자-마귀(예수교에 필요한 악역 담당자)-등등! 
어떤가? 전지전능한 재주를 언제 어디에다 써 먹으려고 스스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중간 과정을 저렇게 길게 늘여 놓는 이유가 뭘까?

이런 복잡한 과정과 현상이 바로 종교로 혹세무민질과 사기꾼질로 못된 짓을 하겠다는 수작이 분명하다. 
묻고 싶다. 
예수교의 신이라는 여호와(예수)가 인간의 힘을 빌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에 무엇이 있는가? 종이 한 장을 들어올릴 힘은 있는가? ㅎㅎ...아멩 할렐루야!


4) [그(요한)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요한 1;8)


빛(예수)이 오면 어두움은 저절로 물러 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빛 아닌 사람(요한)이 예수(神=빛)를 증거한다는 것이다. 되는 말인가? 사람(어두움)이 어떻게 빛=신(神)을 증거한다는 말인가?
빛=예수가 직접 하면 될 일을 중간에 어두움=요한으로 증거하게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헐!


5) [참빛(예수)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예수)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한 1;9~10)


빛(예수)이 세상에 함께 있으면서 비취었으나 세상이 이를 알지 못하더란다. 그렇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전지전능한 신이란 작자가 어떻게 했기에(가르쳤기에) 그것을 인간이 알지 못할까?
"빛이 세상을 비취는데도 세상이 이를 알지 못했다." 고라? 그러면, 그게 빛인가 어두움인가?
"어두움이 세상을 뒤덮고 있어서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고쳐서 씌어져야 하지 않을까? 바이블(예수교)은.



6)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 1;11~12)


예수가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더란다.
그런데, 이야기가 갑자기 비약한다. "예수를 믿는(영접하는) 자에게는 여호와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결국은 "믿으면 천당 간다."는 궤변만 있을 뿐,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덮어놓고 뭘 믿으라는 것일까?
빛(예수)이 왔으면, 세상이 온통 밝을 텐데 어째서 세상에는 어두운 곳이 남아 있고, 믿을 수 없는 엉성한 구석이 그렇게 많은 걸까?
바이블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빛이라는 공식이 맞기는 한 거야? 헐! 웬 일이니?


* 이상은 골치 아픈 요한(바이블)의 첫 구절 몇 개를 잠시 음미해 본 것이다. 
요한 1;1~12의 말을 모두 열거해 봐도, 도무지 제 정신으로는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글 좀 써 보려고 시작했다가 골치가 아파서 중도에 포기한다. 
아래에 모아 놓은 내용을 가지고 독자들이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태초"라는 말이 있고,
"말씀이 여호와와 함께 있었다."
"말씀이 만물을 만들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호와로부터 보낸 자 요한이 왔으나, 요한은 빛이 아니다."
"요한은 빛(예수)을 증거하러 왔다."
"요한으로 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하려 한다."

"참빛(예수)이 세상에 왔으나, 세상이 그를 믿지 않았다."
"세상이 빛(예수)를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빛(예수)를 영접하면, 여호와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

* 전지전능하다는 작자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배배 꽈서 횡설수설할까? 이게 신(神)의 가르침이란 말인가? 헐!





[예수교의 아주 커다란 착각(궤변)]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
(1) 착한 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울까? 아니면,
(2) 신을 찾아내어 그 신의 존재와 가르침을 믿고 배우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울까?
이렇게 2가지 숙제가 주어진다면,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어느 일을 실천하기가 더 어려운 것일까? 
착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는 일과 신을 믿으려 살아가는 일 중에 어느 쪽 일이 더 어렵고 힘든 일일까?

예수교(쟁이) 사회에서는 실천(行)은 어려운 것이고, 믿음 생활은 간단하고 쉬운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다. 아주 쉽고 간단한 믿음만 가지면 누구나 천당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예수교의 기본 교리이다.
이제, 실천(行)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며, 예수(여호와)를 믿고 받드는 일은 얼마나 쉽고 간단한 것인가를 따져 보기로 하자.

바이블을 보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으며...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저희(사람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10~18)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한다. 예수의 가장 위대한 사도(使徒) 바울의 말이다. 그렇다. 실천(行)을 기준으로 따져 볼 때, 의인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실천(行)으로 따져서 의인(義人)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에 이의를 달고 싶지는 않다. 거의 아니, 100% 수긍이 가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역시, 실천(行)의 결과물로 의(義)로운 인격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행실의 열매를 계산해서 천당으로 보낼 사람을 뽑는다면, 틀림 없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참고;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훌륭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름하여 <예수쟁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쟁이들은 사랑과 희생봉사 정신으로 세상을 맑게 정화시키는 여호와(예수)의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이 예수쟁이들과 아주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을 실천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그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높은 사회적 신분 또는 쌓은 지식이 많은 지성인(?)들의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그 실천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한단다.
쉽게 말해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어리석고 불쌍한 백성들에게 뭔가 좀 베풀면서 살아야 된다는 아주 멋스러운 말이다. 글쎄, 그게 그렇게 말처럼 되어진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수쟁이들이 세상이 떠나가도록 떠들어 대는 사랑, 희생, 봉사 그리고, 기득권자(지성인?)들의 유식하고 멋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과연 실질적으로 실천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서라! 베풀 생각은 그만 두고 악착 같이 더 뜯어 먹는 짓이나 없어지길 바랄 뿐이다.
불교(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사람이 아무리 숭고한 정신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웃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모든 것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움직이는 짓이다."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가? 아직도 착한 일을 실천(行)한 열매로 계산하더라도 천당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거 큰 일 났네! 꼼짝 없이 뜨거운 지옥불로 들어가서 영원토록 이를 갈며 신음해야 되는 길 밖에 없단 말인가?
결론이 나왔다. 실천(行)의 열매로 천당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비로소, 예수교의 사랑이 많은 신 여호와(예수)의 은혜가 쏟아지게 되는 것이다.

바이블을 보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義)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神=여호와)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여호와=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신(神)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1~2) 

앞에서도 언급됐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실천(行)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인간의 불가능한 실천(行)에 대해서는 슬쩍 눈을 감아 주고, 오직 간단하고 쉬운 믿음만으로 의(義)롭게 여겨 구원하겠다고 은혜를 내려 주었다는 말이다. 
실천(行)은 어려운 것이어서 불가능한 것이지만, 믿음은 쉽고 간단한 것이어서 누구나 손쉽게 구원을 받아 천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아멩 할렐루야!


참고; <이신칭의(以信稱義)>=실천(行)이 아닌 믿음으로 의로워져서 구원을 받아 천당에 갈 수 있게 해 준다는 여호와(예수)의 은혜를 지칭하는 예수교의 으뜸되는 교리이다.


그러나, 과연 실천(行)은 어려운 것이고, 믿음은 쉬운 것일까? 그래서, 실천(行)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신의 은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러나, 또 그러나, 이것은 지능지수 45이하의 예수쟁이들에게나 통하는 어림없는 궤변이다. 
물론, 실천(行)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실천(行)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조금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범주(範疇)이다. 100% 실천으로 100% 열매를 맺기는 어렵지만, 다만 1% 만이라도 실천하여 1% 열매를 맺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신(神)을 찾아 내어 그것을 믿는 짓은 100% 불가능한 다른 세계이다. 인간의 어떤 재주로도 신(神)을 감지할 수도 터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신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 낸다는 것도 전혀 불가능 또 불가능 또 불가능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 특히, 예수쟁이들이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예수쟁이들은 자기 입으로 "믿습니다" 했을 때, 그것을 자기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연약하고 불안한 마음을 절대적인 어느 힘(神)에 의지하고 싶어서 믿음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신에 대한 믿음은 그렇게 값싸고 쉬운 것이 아니다. 아니, 인간의 신에 대한 믿음(또는 지식?)은 아예 불가능한 경지일 뿐이다.

따라서, 불가능하더라도 실천(行)으로 구원한다면 모를까,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도 하고 구원된다는 이론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 궤변이며 허구이다. 
사람의 재주로는 신(여호와=예수)을 알아 내는 일도 불가능한 일이며, 그 신의 명(가르침)을 알아내는 일도 불가능일 뿐이다. 따라서, 그 신을 믿는다는 짓도 100% 불가한 경지로서 바보 멍텅구리들 끼리나 통하는 웃기는 말이다. 

실천(行)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예수교의 교리는 예수쟁이들로 하여금 온갖 못된 악행을 저지르게 하는 구실만을 만들어 주고 있다.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쟁이들은 주구장창 이 말을 뇌면서 스스로 용서도 잘 받고, 천당도 맡아 놓은 셈이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용서 받기요 천당행인가! 예수쟁이들은 좋겠다. 
예수쟁이들만 살판 만난 셈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웃기는 짓(사실은 악)이 또 있을까! 

지루하더라도 한 번 더 강조해 둔다. 
실천(行)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인간을 평가할 때는 실천 여부만으로 계산해야 옳다. 믿음으로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예수쟁이(지능지수 45이하 짜리)들 끼리나 통하는 궤변일 뿐이다.
인간의 재주로는 신을 감지해 내는 일이나 그 신의 가르침을 찾아내어 믿는 일이나 모두가 200% 이상으로 불가능 또 불가능일 뿐이다. 
여기에다 뭔가를 변명해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신팔불출(新八不出=진짜 예수쟁이)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정말로 아멩 할렐루야다! 
제삼자 2017-04-04 (화) 09:51
[똥 싼 놈이 화내다] 

[또 (예수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밀)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헐! (마태 13;33) 

<천국>=<누룩>  ???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천국은 어떤 곳이냐?"하고 물어봤던 모양이다.
위의 바이블 이야기는 예수가 직접 설파하는 천당의 모양새이다.
장차 예수쟁이들이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천당은 밀가루 반죽을 커다랗게 부풀리는 작용을 하는 <누룩>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대박!
 
"질량과 내용에는 전혀 변화가 없고, 풍선처럼 겉 모양만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게 하는 현상이 천국이다."-헐!

밀가루와 누룩의 질량에는 아무런 변화 없이 반죽만 커다랗게 부풀려진 모양이 천국이라!
실속은 없이 거죽 모양만 푸짐하게 보이는 그런 곳 즉, 허섭쓰레기 같은 곳이 천당이라는 말이다. 역시, 대박!

이런 껍데기 천당에 가려고 예수쟁이들은 코 뚫린 소처럼 끌려다니며, 평생 동안 이모 저모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예수쟁이보다 더 억울하고도 못난 인생살이는 없을 것 같다. 
얼 빠진 멀대 인생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천당은 그렇다치고, 그러면 여호와가 창조해 놨다는 이 세상의 현실은 어떤 것일까? 이 세상도 한 번 보기로 하자. 


[전도자(여호와의 증인?)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태양)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도서 1;2~3) 


누가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똥 싼 놈이 화내는 경우와 무엇이 다른가? 
모든 것이 헛수고인 세상을 만들어 놓은 녀석이 누구인데, 누가 누구 들으라고 떠드는 말일까? 헐!

사람이 언제 사람으로 태어나겠다고 의견을 제시하기라도 했는가? 
제 풀에 제 녀석(여호와) 맘대로 생명체들을 동원시켜 놓고서, 이게 뭣하는 짓일까? 
전지전능은 저런 짓을 하라고 주어진 것일까? 헐!

결국, 천당이나 현실 세상이나 신기루 같은 헛것으로 가득 찬 세상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아서라. 이런 엉터리 속에서 불쌍한 인간의 등을 쳐 먹는 종자들아! ㅎㅎ...아멩 할렐루야!




[여호와(예수교의 신)) 녀석의 밥통 크기]


히브리(예수쟁이 옛조상) 왕국의 제3대 왕 솔로몬은 여호와의 집을 짓는데 7, 궁궐을 짓는데 13년 도합 20년의 토목 공사를 끝내고, 여호와에게 14일 동안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사에 소모된 희생 제물은 다음과 같다.

[솔로몬이 화목제(제사 종류)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22,000 이요, 양이 120,000 이라...]-헐! (열왕기상 8; 63)

여호와(예수교의 신)께서 먹어치운 소가 22,000마리요, 양이 120,000마리라고 한다. 헐!

이만하면, 여호와의 밥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어쨌든, 여호와는 142,000마리나 되는 소와 양을 쳐잡수시고 배가 불러지자 기분이 좋았던 게다. 대박!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여호와께서...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永永)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대박!  (열왕기상 9; 2~3)


여호와(예수교의 신) 역시 재물을 많이 바치는 사람을 침을 질질 흘리며 좋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와 앞에서도 무전 유죄(無錢有罪), 유전 무죄(有錢無罪)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요즈음, 우리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뇌물>과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 쪽에서 뇌물을 바치면, 여호와(또는 예수) 쪽에서 거기에 상응하는 은혜(사랑 또는 천당 등등을 포함해서) 따위를 보답으로 하사하신다니 말이다. 그래 안 그래? 대박!

어쨌든, 14일 동안에 14 2천 마리의 소와 양을 먹어 치우신 여호와의 식성은 놀랍기만 하다. 헐!
그러나 저러나, 수 십 년에 걸친 토목 공사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폭군(솔로몬)을 감싸고 도는 여호와라는 녀석은 제대로 된 신()일까?


조선 말기, 임오군란으로 일본 공사관이 불타자, 조선은 일본에다 배상금을 물어야 했는데, 그 액수가 당시 소 600마리 분이었다고 한다.

소 600마리는 대단히 큰 액수의 돈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콧딱지 만한 이스라엘에서 여호와가 14일 동안에 잡수신 가축이 142,000마리나 됐다고 하니, 이런 미친 놈의 짓이 있나?


소 600마리 분의 돈이 없어서 조선 조정은 마침내 일본에서 차관을 얻어다가 그 빚을 갚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었다. 
하물며, 사막 벌판의 손바닥만한 히브리 왕국(사실은 마을)에서 14 2천 마리의 가축이라니!



** 참고; 천지 자연이 모두 제 집을 텐데, 여호와(예수교의 신)라는 녀석은 무엇 때문에 집(신전?)에 연연하고 있을까?

             세계 도처에 흉물스럽게 산재되어 있는 그 폐허(이름하여 그게 신전이래!)들은 그 목적이 뭐지?

             예수교의 신은 영구 불변인데 그 녀석의 집은 폐허라! 그 폐허를 구경하러 다니는 짓이 성지 순례고? 헐! amd 대박!





[양가죽을 뒤집어 쓴 늑대]


 [(예수 왈) 
"거짓 선지자(결국은 예수쟁이 전체)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늑대)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지옥)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 7;15~20) 


(1) 선지자란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알아 내어 이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불교인, 도교인, 힌두교인, 유교인 및 일반인 속에는 선지자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이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알아 낼 수도 없고, 예수교를 전파하려고 활동할 턱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새 말로 선지자란 목사(신부)와 예수쟁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선지자 중에는 양가죽을 뒤집어 쓴 늑대가 있으므로 이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2) 양가죽을 쓴 늑대(즉, 선지자 및 예수쟁이)는 노략질을 일삼는다고 한다. 양가죽을 뒤집어 쓴 늑대를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국 예수교(예수쟁이)는 무슨 열매를 맺어 놓았다고 보이는가? 현재, 우리 한국의 예수교의 썩어 문드러진 모습은 무슨 열매에 속할까?
18 세기(300 년 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로 온 세상을 들쑤시며 식민 쟁탈 전쟁을 벌이며 살인 날강도 짓을 하던 서양의 예수쟁이들은 무슨 열매를 맺어 놓았다고 할 수 있을까? 

(3) 유럽 중세 시대의 예수쟁이들이 벌인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 등등은 무슨 열매일까? 고대 중동 지방의 여호와쟁이들이 벌여 놓은 짓은 무슨 열매일까? 
남북미 대륙에서 예수쟁이들은 무슨 짓을 했는가? 양가죽을 쓰고서 눈웃음을 살살 뿌리며 벌인 늑대 짓(노략질과 살인질)은 무슨 열매에 해당할까? 
결국, 예수쟁이들은 모두 다 도끼로 찍어 내어 불태워야 할 거짓 선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그렇다고 분명히 단정지어 말했다. 예수쟁이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그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뜨거운 유황불 지옥으로 보내져야 마땅하다. 

(4) 바이블 내용이 허구이더라도 예수쟁이들의 열매가 아름다우면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바이블의 내용은 아름다운데 예수쟁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앞으로의 기회를 생각해서 참고 기다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교는 바이블(여호와 및 예수의 가르침) 내용도 그리고 예수쟁이의 모습도 양가죽을 늑대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예수교는 실로 천인공로할 무시무시한 열매를 맺는 마귀 집단일 뿐이다.

(5) 몇 년 전, 로마 교황청은 수 천 년 동안 저지른 죄악을 입으로(건성으로)라도 사과라는 것을 했었다. 
보상 없이 맨 입으로 떠드는 사과는 전지전능한 신을 모신 종교로서는 웃기는 짓이지만, 개신교는 그 짓도 못하는 악마의 집단이다. 
필자의 말이 아니다. 예수가 한 말이다. 이제 예수교는 그 열매로 보아 불태워 없애야 마땅하다. 
더 이상 예수교가 양가죽을 쓰고서 노략질을 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틀린 말인가? 여기서도 "바이블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6) 예수교가 모두 썩은 것이 아니라 '일부 사이비'들이 어쩌고 저쩌고 변명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게 다 못돼 먹은 잡소리이다. 
'사이비(似而非)'란, 겉으로는 제법 비슷하나 본질적으로는 다른 가짜를 일컷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예수교는 그 종파가 자그마치 30,000여 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기존 예수교는 모두가 가짜여서 계속 새로운 진짜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교는 진짜는 없고 모두가 가짜라는 증거이다.
결국, 예수교 속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에 쳐 박아야 될 양가죽을 쓴 늑대들만 가득하다는 결론이다. 예수의 말이다.


(참고) 예수교를 저대로 둔다면 한국은 머지 않아 상상을 초월하는 굴레와 불행을 맛보게 될 것이다. 
"종교는 자유다."라면서, 나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것이 바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락으로 빠져드는 무책임이란 것을 모르고 있다. 
지금 당장의 정치, 경제, 사회의 무질서를 아무리 떠들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저변의 이유를 모르고 있다.
예수교는 인성(人性)과 인간의 원형(原形)을 파괴하는 무서운 매혼노 집단이다. 이 현상을 감지하지 못하는 한 우리 한국은 커다란 난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요즈음 예수교의 부서지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기도 하고, 가속도가 붙었다는 징후가 사방에서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년 또는 적어도 남북이 통일되기 전에는 예수교가 완전히 박멸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그 비참한 종교전쟁을 한반도에서 막을 수가 있을 것이다.
제삼자 2017-04-07 (금) 05:51
[모르고서 하는 잘못에 대한 벌 주기]


사람이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고서 행하는 언행(言行)에는 무슨 의미(가치)가 있을까? 
특히, 신의 세계에 대해서 전혀 감지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 신(神)에 대하여 모르는 현상을 정죄할 수 있는 것일까?
(알고서 하더라도 그것이 연약하고 무능한 인간의 언행이거늘, 전지전능하다는 신이라면 어떻게 인간을 상대로 정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다음 이야기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될 때의 상황을 그려 낸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호와)여, 저희(예수를 죽이는 사람들)를 사(赦)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 23;34)

위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 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예수교의 신)에게 그들의 죄를 용서하라고 빌고 있는 장면이다. 이 경우, 여호와 쪽에서도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여호와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므로.

그런데, 예수가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사(赦)하라 말라 하고 있을까? 또,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성립되기에 무엇을 용서하라는 것일까?
옳든 그르든 간에,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조상) 사람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종교가 가르쳐 놓은 전통에 따라 이단(異端)을 처단해 왔다. 
이에 준하여 히브리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있는 중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를 죽이고 있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명(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예수와 히브리 사람들 중 어느 쪽이 정당한 쪽일까?
다시 말하면, 예수는 여호와의 이름을 참칭(僭稱)한 죄인이며, 예수를 처단하고 있는 히브리 사람들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럴 경우, 여호와에게 누가 누구의 죄를 사(赦)해 주라고 탄원해야 되는 것일까?


"여호와시여, 젊은 혈기에 예수는 크게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죄값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를 용해 주옵소서." 
예수를 죽이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야 제대로 된 상황 아닐까?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십시오. 저들은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 말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적반하장(賊反荷杖)에 해당하는 난센스(nonsense)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안 그래?


여기 쯤에서 잠시 예수의 부활 장면을 먼저 보아야 될 것 같다.
좀 복잡하지만,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이렇게 4곳의 상황을 모두 보기로 하자.


1) [..안식일 첫날이 되려는 미명(未明)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主=여호와)의 천사가...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태 28;1~6)


주변 상황은 미명(未明=날이 샐 무렵), 두 명의 마리리아, 큰 지진, 천사가 있으며, 수직하던 사람들은 무서워 떨고 있었다. 
예수의 무덤을 지키던 사람들은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큰 지진 속에서도 두 명의 마리아는 아무 감각(반응)이 없다.
무덤을 막은 돌은 천사가 굴려 내고, 예수의 시체는 이미 없었다. 물론 예수의 부활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이상은 마태(바이블)에 그려져 있는 예수의 무덤 장면이다.


2)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해가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마가 16;1~6)


여기서는 미명(未明)이 아닌 해 돋을 때이며, 여자는 두 명이 아닌 3명이며, 천사가 아닌 청년이고, 돌문도 천사가 열지 않고 이미 열려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큰 지진 이야기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으며, 무서워서 떨고 있는 사람도 없다. 마태의 이야기와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도 예수의 부활 장면은 없다.

이상은 마가(바이블)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무덤 장면이다.


3) [..여자들이...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누가 24;1~5)


여기 누가(바이블)에서는 <마태>, <마가>의 이야기와도 상황이 다르고, 여기에서는 천사라는 표현 없이 2사람이 등장한다. 
물론 큰 지진 이야기도 없다. 여기에도 예수의 부활 장면이나 시체는 없다.


4)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나이다."하니,]

(요한 20;1~2)


여기 요한(바이블)에서는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여자) 뿐이며, 천사 비슷한 것도 없다. 
마리아는 무덤 근처까지만 왔다가 돌아간 것 같다.


1. 일점 일획(一點一劃)도 하자가 없다는 신(神)의 말씀이 담겼있다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4가지 책의 내용이 모두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2. "큰 지진"이 발생했다면 기록에서 누락될 사건이 아니다. 
무덤을 경비하던 사람들까지 무서워서 벌벌 떨어야 됐던 사건이다. 
이런 무섭고도 커다란 사건이 마태에만 있고, 다른 곳에는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3. 예수의 무덤 곁에는 천사 또는 사람이 1명이 있었고도 하고 2명이 있었다고도 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천사라는 것은 사람이 보고서 알 수 있는 존재인가? 천사는 어떻게 생겼는가?

4. 예수의 무덤에 찾아간 사람(여자)은 1~3명으로 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는 숫자인가?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는 생각할 릴요조차 없는 엉성한 말도 섞여 있어야 되는 것일까??

5. 예수의 시체와 부활 장면을 본 사람이 없다. 
천사 또는 어떤 사람, 그것도 1명인지 2명인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을 통하여 듣기도 하고, 아예 예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6. 바이블의 모든 내용은 여호와(예수)의 존재와 그 능력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한 절체절명의 가르침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기록마다 다르게 씌어 있으며, 결정적 장면은 왜 오리무중(五里霧中)일까?

7.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3번 씩이나 말해 주었었다. 이보다 중대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죽은 후, 제자들은 집에 돌아가서 머물고 있다. 겨우, 막다라 마리아의 연락을 받고 무덤에 나타난다. 될 법한 상황인가? 

더 길게 말하지 않겠다.


결론; 예수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른다며 사(赦)해 주라고 했다.
예수의 부활 장면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사람들로 믿을 수 없게(모르게) 한다. 따라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도 몰라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사(赦)의 대상이 못되고 지옥으로 가야 될까? 
인간이 신(神)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 안 그래?


중요한 것이 있다. 
예수의 말을 빌면, 모르고서 하는 일(예수를 믿지 않는 일)은 사(赦)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모르고서 믿는 짓(아는 체)은 무엇일까?
예수쟁이 중에 신(神)을 아는 자가 있을까? 

그 모르는 자들이 "밑져야 본전 식"으로 믿는 짓, "혹시"나 해서 믿는 짓, "바이블 내용"은 모르면서 적당히 믿는 짓, "환경"에 의하여 믿는 짓 등등, 사실상 아는 것도 없으면서 여호와(예수)를 믿는 짓은 무슨 처벌을 받아야 되는가? 
예수의 말을 듣고 싶다.

믿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자신의 의지와 양심에 의지하여 내린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믿는 사람은 신(神)에 대하여 아는 체를 하고 있으며, 자신의 책임을 적당히 전가(轉嫁)시키려는 심보를 숨기고 있다.
예수에 의하면, 전자는 사(赦)의 대상이다. 그러면, 후자는 무엇의 대상인가? 
이것도 예수의 말을 직접 듣고 싶다.

예수쟁이들은 신(神)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고, 자신도 속인 죄값으로 무엇을 받게 될까?
사람이란 속이는 짓과 책임을 전가(轉嫁)하려는 짓이 없다면, 신(神)을 믿는 짓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옳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속이는 짓보다 더 큰 죄가 있을까? 
예수쟁이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제삼자 2017-04-09 (일) 07:20

[여자가 가장 바라는 것]-쉬어 가기



옛날에 젊은 아더왕이 복병을 만나 이웃 나라 왕에게 포로신세가 되었다.

이웃 나라 왕은 아더왕을 죽이려 하였으나 아더왕의 혈기와 능력에 감복하여 아더왕을 살려 줄 하나의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이란, 매우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더왕이 한다면 아더왕을 살려주기로 한것이다. 

이웃 나라 왕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기한으로 1년을 주었고, 아더왕이 1년 안에 답을 찾아오지 못한 경우 처형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온 질문이 바로 "여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What do women really want?) 였다.

아더왕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이러한 질문은 현명하다는 사람들도 당황시킬 정도의 어려운 질문인데 하물며 젊은 아더왕은 어쩌랴. 아더왕에게는 풀 수 없는 질문으로 보였다. 

그러나, 죽음보다는 나았기에 아더왕은 이웃 나라 왕의 제안을 받아들여 1년동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에 나선다. 

아더왕은 자신의 왕국에 돌아와서 모든 백성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공주들, 창녀들, 승려들, 현자들, 그리고 심지어 광대들에게까지 모두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만족할 만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더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말하기를 북쪽에 늙은 마녀가 한 명 사는데 아마 그 마녀는 답을 알 것이라고 그 마녀를 데려오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마녀는 말도 안되는 엄청난 댓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년이 지나 마지막 날이 돌아왔고, 아더왕에게는 늙은 마녀에게 물어보는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늙은 마녀는 답을 안다고 선뜻 대답하였지만 엄청난 댓가를 요구하였다. 


그 댓가란 아더왕이 거느린 원탁의 기사들 중 가장 용맹하고 용모가 수려한 <거웨인>과 결혼하는 것이 마녀의 요구였다.
아더왕은 충격에 휩싸였고 주저하기 시작했다.

늙은 마녀는 곱추였고 섬뜩한 기운이 감돌기까지 하였다.
이빨은 하나 밖에 없었고 하수구 찌꺼기 같은 냄새를 풍겼으며 항상 이상한 소리를 내고 다녔다.

아더왕은 이제까지 이렇게 더럽고 추잡한 생물은 본적이 없었고, 이런 추한 마녀를 자기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인 <거웨인>에게 결혼하라고 명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거웨인>은 자기가 충성을 바치는 아더왕의 목숨이 달려있는 만큼 주저없이 그 마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자원했다. 

결혼은 진행되었고 결국 마녀는 아더왕이 가진 질문에 대한 정답을 이야기하였다.

여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도하는 것, 곧 자신의 일에 대한 결정을 남의 간섭 없이 자신이 내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What women really want is to be in charge of her own life')


정답을 듣자 모든 사람은 손바닥을 치며 저 말이야말로 진실이고 질문에 대한 정답이라고 하며 아더왕이 이제 죽을 필요가 없음에 기뻐하였다.

아더왕은 이웃 나라 왕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하였고, 이웃 나라 왕은 그것이야말로 진실이며 정답이라며 기뻐하면서 아더왕의 목숨을 보장해주었다. 

하지만 목숨을 되찾은 아더왕에게는 근심이 남아있었다.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거웨인>과 마녀의 결혼에 대한 것이었다. 아더왕은 목숨을 되찾은 기쁨에 넘쳐있었지만 동시에 <거웨인>에 대한 일로 근심에 쌓여있었다. 그러나, <거웨인>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늙은 마녀는 결혼하자마자부터 최악의 매너와 태도로 <거웨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대했다. 그러나, <거웨인>은 한 치의 성냄이나 멸시 없이 오직 착하게 자신의 아내로서 마녀를 대했다.

첫날 밤이 다가왔다.
<거웨인>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경험이 될지도 모르는 첫날 밤을 앞에 두고 숙연히 침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침실안의 광경은 <거웨인>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거웨인>의 인생에서 본적 없는 최고의 미녀가 침대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란 <거웨인>이 미녀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미녀는 말했다.
자신이 추한 마녀임에도 <거웨인>은 항상 진실로 그녀를 대했고 아내로 인정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감사로서 이제부터 삶의 반은 추한 마녀로, 나머지 반은 이 아름다운 미녀로서 있겠노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마녀는 <거웨인>에게 물었다.


"낮에 추한 마녀로 있고, 밤에 아름다운 미녀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낮에 아름다운 미녀로 있고, 밤에 추한 마녀로 있을 것인가?" <거웨인>에게 선택을 하라고 하였다. 


<거웨인>은 이 진퇴양난의 딜레마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만일, 낮에 아름다운 미녀로 있기를 바란다면 주위 사람에게는 부러움을 사겠지만, 밤에 둘만의 시간에 추한 마녀로 변한다면 어찌 살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낮에 추한 마녀로 있어 주위 사람의 비웃음을 사겠지만, 밤에 둘만의 시간에 아름다운 미녀로 변해 살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거웨인>이 선택한 것은 아래에 씌여있다.
하지만 먼저 당신이 선택을 하고 선택한 후에 <거웨인>의 선택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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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웨인>은 마녀에게 자신이 "직접 선택하라."고 말했다. 



(퍼온 글)

제삼자 2017-04-16 (일) 06:18
[예수쟁이들의 시범이 되는 기도문] 


* 아래 기도문에서 <그>는 고대 중동지방의 원주민이다. 
즉, <그>는 예수쟁이들의 예 조상인 히브리 족속이 상부상조하며 살아가야 되는 이웃들이다.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그의 연수(수명)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시편 109 ; 6  ~15)


여기의 기도문(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무엇인가 부연 설명을 하면 쓸 데 없는 군더더기가 되겠지? 
그러나, 한 마디는 해야 되겠다. 

자기 땅이 없던 히브리 족속은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남의 땅을 빼앗아서 살아가는 족속이다. 
따라서, 억울하게 쫓겨난 원주민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독립 운동이라고 할까, 자기 것을 되 찾으려는 몸부림이 있을 것은 당연하다. 
중동지방의 이런 현상은 오늘 날도 진행형이다.
 
위에서 다윗이 떠들어 대는 기도는 바로, 원주민들의 저항을 막아 달라고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향해서 발악을 하는 모습이다. 
"똥 싼 놈이 화 낸다."던가? 저런!
내 땅, 내 나라, 내 생활 터전을 빼앗긴 쪽에서 뱉어 내더라도 안 될 흉악한 저주의 말을 오히려 다윗(예수쟁이들의 조상) 쪽에서 떠들어 대고 있으니, <적반하장>이란 말로도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아예, 예수쟁이들과는 말 상대를 말아야 한다. 예수쟁이들을 사람으로 오인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그래 안 그래? 헐!





[예수교는 정말로 훌륭한 종교가 맞다. 그지?]-대박!


(1)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교의 경전이라고 알려져 있는 바이블 속에 있는 말이라고 한다.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예수교가 정말로 좋은 종교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해 뵌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2)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여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말)을 하셨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라는 것이 뒤집어씌어져 있다고 말해져 오고 있다. (되게 억울한 현상이라고 말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아! 재수 없어. 에 퉤퉤...)
어쨌든, 이 원죄라는 올가미를 여호와(예수) 쪽에서 벗겨주겠다고 약속(말)을 하셨다는 것이다. 역시, 예수교는 좋은 종교라는 말이 맞는 말 같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3) 예수교(바이블) 속에는 "은혜"라는 말 종류가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은혜란 사랑으로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 또는 매우 고마움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교(바이블) 속에 그 은혜라는 낱말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예수교가 좋은 종교라고 말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역시, ㅎㅎ...아멩 할렐루야!


(4) 예수교는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예수)를 모시고 있는 종교라고 말해진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신을 모시고 있다고 말해지는 것보다 더 든든한 빽은 없을 것이다. 역시, 예수교를 좋은 종교라고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말 같다. 아멩 할렐루야!


(5) 예수교는 세상 곳곳에서 봉사 활동을 많이 하는 종교라고 말해진다고 한다.

*봉사 활동은 자기 희생 정신이 없고서는 전혀 불가능한 활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쟁이들 중에 자기를 희생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진다고 한다.
역시, 예수교는 정말로 참 좋은 종교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6) 예수쟁이(여호와 또는 예수를 믿고 받드는 사람?)는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진다.

*햐! 예수교는 정말로 좋은 종교라고 말해지는 게 맞구나! ㅎㅎ...아멩 할렐루야!


(7) 여호와 또는 예수만 믿으면, 누구나 천당에 갈 수 있다고 강조되는 말이 바이블(예수교) 속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천당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으면, 나와 보라구 말해봐! 예수교는 참 말로 좋은 종교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 ㅎㅎ...아멩 할렐루야!


(8) (9) (10) 일일이 다 열거할 수가 없어서 여기에서 생략하겠지만, 바이블과 예수교 속에는 <말>이란 것이 참으로 많다고 한다. 

*예수교(바이블)의 그 많은 말들을 다 줏어 모으면, 세상 만큼 커다란 창고라도 다 들여쌓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해진다.
예수교는 정말 말로 좋은 종교가 맞다. 그지? 그래서 또, 아멩 할렐루야! ㅎㅎ...

*결론; 예수교는 정말로 말로만 존재하고 가능해지는 종교이다. 
          말로는 하룻밤 사이에 기와집을 10 채라도 지었다 헐었다 할 수도 있고, 천지도 창조할 수 있다. 
          말로는 전지전능한 신도 존재가 가능하다. 말로는 좋은 종교도 있을 수 있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7-04-27 (목) 17:40
[예수교의 결정적 사기극 하나]-대박! 


예수교의 본질(바이블 내용)을 터득하려면 바이블 내용을 부분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전체적 흐름을 파악해야 된다고 한다. 예수쟁이라면 누구나 밑도 끝도 없이 떠들어대는 궤변이다. 
그러면, 바이블의 전체적 흐름은 무엇일까? 예수쟁이들 중에 과연 그 바이블의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자가 있을까? 

카스피해(Caspian Sea=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 남한의 4배 크기)에서 송사리 새끼 한 마리를 건져내어, 그것을 가지고 카스피해의 생태계를 모두 알아 낸 것처럼 떠벌인다면 그것처럼 우스꽝스런 짓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이블 속에서 어느 한 가지 낱말이나 문장을 골라내어 그것을 예수교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블 속의 더럽고도 잔인한 그 많은 부분들은 숨겨 두고, 여기 저기에 산재되어 있는 그럴싸한 구절 몇 개만을 찾아내어 그것이 마치 예수교의 진수인 것처럼 우쭐거리는 짓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수쟁이 중에 다음 이상으로 예수교(바이블)를 설명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1)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했다. 
(2) 여호와는 사랑도 많아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구세주를 보내기로 했다. 
(3) 그래서, 마침내 구세주(예수=여호와의 아들)가 왔다. 
(4) 따라서,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 받을 수 있다. 

예수쟁이 중에 예수교(바이블)를 위의 4가지 이상으로 해설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그리고, 저 4가지가 바이블의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고서 떠들어대는 결론일까?
그건 그렇다치고, 예수와 여호와가 허구(虛構=거짓)로 판명된다면, 바이블 내용의 전체적 흐름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분부이니 전체니 하며 왈가왈부할 여지는 예수와 여호와가 참일 때만 가능한 경우이다. 

그러나, 예수와 여호와가 허구로 판명이 난다면 그것으로 예수교(바이블)의 모든 것은 그 즉시 이유 불문 끝장이 나는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가자. 

"여호와는 세상(인류)을 구원하기 위하여 구세주를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구세주가 오려면, 그에 앞서서 유명한 선지자 "엘리야가 먼저 오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기로 예언된 구세주는 <예수>이며, 그에 앞서서 오기로 된 선지자 엘리야는 <세례요한>이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예수를 가리켜 "이 사람(예수)이 여호와의 아들이요 구세주니라."하고 증거하여 선포한다. 
그러나 얼마 후, 세례요한은 예수에게 묻는다. "당신이 정말 구세주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마태 11;3) 

이만하면, 세례요한과 예수는 둘 다 대단한 사기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여호와)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목사(신부) 또는 신학자들도 세례요한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사기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서는 여호와(예수)를 직접 만나 보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청산 유수로 신(神)과 천당(天堂)과 지옥(地獄)을 증거도 하고 풀어 나간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일진대, 집에 가서 이불을 쓰고 누워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아는 것(믿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바이블 속으로 여행을 해보자. 


1) [여호와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예수)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 1;6~7) 


세례요한은 예수를 세상에 증거하기 위하여 여호와가 보낸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의 가르침과 명을 받고 이 세상에 파송된 자이기 때문이다. 


2)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여호와)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구세주)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여호와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 하니라.] 

(요한 1;29~34) 


위의 바이블 내용으로 비추어 보면, 세례요한은 여호와를 직접 만나서 하명을 받기도 하고, 성령(삼위 중 하나=여호와)을 목격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만한 자격이면, 예수교의 모든 것을 증거하기에 충분한 진짜 선지자이다. 일단 믿어 주기로 하자. 

그러나,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벌어지는 바이블의 다음 장면을 보기로 하자. 


3) [(세례)요한이 옥(獄)에서 그리스도(예수)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구세주)가 당신이오니이까?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세례요한의 제자들)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6) 


세례요한은 여러 사람 앞에서,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구세주)임을 증거하고 선포도 한 후, 헤롯왕의 불륜을 비난한 죄목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세례요한은 옥에서 곰곰이 생각할수록 예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 앞에서 선지자 흉내로 큰 소리를 쳤지만, 세례요한도 사람인 이상 예수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세례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시켜 예수를 향하여 실토하고 있다. "당신은 진짜 구세주입니까? 아니면, 다른 진짜를 더 기다려야 합니까?" 
이 때, 예수는 간접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각종 병을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을 살려 내는 것을 보고도 모르겠느냐?" 결국, 예수는 진짜 여호와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간접적 대답이다. 
마치, 교회와 기도원이란 곳에서 벌이는 사기꾼들과 전혀 똑 같은 모습이다. 예수교의 구석구석에서는 각종 기적을 시행하면서 예수와 여호와를 전도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상으로, 예수와 여호와 그리고 엘리야와 세례요한의 이름으로 기록된 바이블 내용은 한 편의 사기극임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신약 시대의 신(神)이며, 여호와는 구약 시대의 신(神)이다. 
그리고, 엘리야와 세례요한은 각각 구약과 신약 시대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교의 모든 것에 해당하는 신(神)과 그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사기극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의 모든 것이 허구, 궤변, 모순이라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할 말이 아직 남아 있는가? 예수교(쟁이)들이여! 
아직도 바이블의 전체적 흐름을 파악해야 될 이유가 남아 있는가? ㅎㅎ...아멩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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