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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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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405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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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50[예수교(바이블)에서 가장 큰 사기극]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5-04-09 (목) 19:28 조회 : 22957

*50[예수교(바이블)에서 가장 큰 사기극]

** 예수교(바이블)의 활동 중에 사기 행각 아닌 것이 없지만, 필자는 다음 사건이 예수교(바이블)에서 가장 큰 사기극이라고 판단(단정)하고 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變形)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주(主)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에 초막(草幕)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마태 17;1~8)

예수가 수백 또는 수천 년 전에 죽은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다 배석시킨 자리에서 자기 자신(예수)이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는 장면이다. 이미 수백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을 불러다가 배석시켰다는 내용이 참으로(?) 재미있다.

모세와 엘리야는 여호와라는 신을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하고(발명해 내고), 그 여호와의 기적질을 세상에 널리 소개하기도 한 여호와의 앞잡이들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히브리 족속(예수쟁이들의 조상)의 양대 산맥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 양대 산맥을 끌어다 놓은 자리에서 예수를 추켜세워야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종교(예수교) 사기꾼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기꾼들의 사기 행각은 기가 막힐 정도로 뛰어나다.

그러나, 이미 필자는 모세와 엘리야가 허구(虛構)임을 수 없이 구명(究明=糾明)해 오고 있다. 허구(虛構)는 어떤 것으로 포장해도 결국 허구이며, 허구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도 허구일 뿐이다. 따라서, 바이블 속에 등장하는 여호와는 허구이며, 여호와의 아들을 자처하는 예수도 허구이고, 그 이름으로 세워진 예수교도 허구임은 물론이다.

예수교는 통째로 허구(거짓)이며, 결과적으로는 어리석고 마음 약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예수교는 이제 거론의 여지 없이 인류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될 복마전(호시탐탐 악행을 저지르려고 벼르는 악마들이 숨어 있는 곳)일 뿐이다.

* 필자가 반기련에다 올려 놓은 모세와 엘리야에 관한 글만 읽어도 그것들이 모두 허구(거짓)라는 사실은 충분하리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허구 속에서 말해지는 여호와 및 예수(교)도 허구일 뿐이다.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신]


*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신, 이런 존재가 신일 수 있을까? 헐!

예수가 자기 고향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누가 4;24)
예수 자신이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한 상황에 대한 변명이었다.

여기서 선지자란 신(여호와)의 심부름꾼 즉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향 사람들에게 속속들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 고향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듣는다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고만 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존경심>이 나올 턱이 없을 것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거든 그 저자를 만나 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책 내용이야 인간의 이상적인 희망 사항이 작가의 취향대로 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책 내용과 동일한 인격자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인기 있는 정치가, 연예인들도 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거의 모두가 실망스러울 때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그 사람의 내면을 알면 알수록 존경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인가, 미국의 백악관에서 역대 대통령 4사람의 식사를 담당했던 조리사가 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너무도 오래 전 일이라서...대충 기억에 남는 내용은, 어느 대통령을 막론하고 그 나름의 약점과 부끄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인간의 진면모일 것이다.

자기 교회에서는 갖가지로 미움과 배척을 당하는 목사가 다른 교회로 다니면서 <부흥회 설교>로 인기가 대단한 사람도 많다. 
그 목사의 내면과 인격을 모르는 타교인들로서는 그 입에서 나오는 미사 여구에 반할 수밖에 없다.
어느 목사 부인이 자기 남편(목사)에게 말했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우리 살림을 교회 강단에다 차리자" 고.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에는 그토록 그럴싸한 말만 늘어 놓는 남편이 현실 생활로 돌아왔을 때는 그런 비인격자도 없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지금까지의 예화는 모두가 인간(사람)의 경우라는 점이다. 그러나, 신(神)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 예수의 고향 이야기는 어물성설이다.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사람)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을 수 없을 지는 몰라도, 신(예수=神)의 경우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실망을 주고, 아픔을 주고, 권태를 주고, 환영되지 않는 존재라면 그것은 이미 신(神)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예수(여호와)는 전지전능과 절대와 완전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이제 바이블로 옮겨 가서 생각을 해 보자.


[예수께서...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예수)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런즉, 이 사람의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排斥)한지라...]

(마태 13; 52~57 상단)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와 그 부모 형제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하나 있다. 
고향 사람들이 놀라워할 정도로 예수에게는 지혜와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가 가진 지혜와 능력은사람의 것이 아니라 신(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예수가 성장하던 시절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굴복됐어야 말이 된다.

<벤허>라는 영화에서, 벤허가 노예로 끌려 갈 때, 예수가 그에게 물을 떠다 먹여 주는 장면이 있다. 
그 때, 감독관이 채찍으로 치려다가 예수의 눈을 보더니,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계속 예수를 돌아다 보고 있었다.
그렇다. 예수가 신(神)이라면, 그의 지혜와 권능에 압도되어 어떤 누구라도 배척 아닌 환영에 앞장 섰을 것이다. 상대가 신이라면, 배척은 고사하고 아부 떠느라 정신이 없을 인간이다.

만약, 여호와(예수)가 전지전능한 신(神)이라면, 그를 대변하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짜 신에다 가짜 선지자들이 서로 권커니 자커니 하며 벌이는 사기극이기 때문에 그 내면을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에 의하여 배척되는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도 아니었고, 선지자도 아닌 순전한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고향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배척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헐!

능력도 없고, 돈도 없으나 거짓이 없고 이웃과 잘 어울리는 것만으로 고향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엔가 출세(성공)했다는 사람일수록 고향에서 배척되는 경우가 많다. 출세(성공)란 것을 쟁취하려면 대개는 비인간적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기 일쑤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혹, 무엇인가 혜택을 얻으려는 사람의 아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승이 죽었을 때보다 그 집 개가 죽었을 때, 조상꾼이 더 많다" 는 속담이 이런 때 제격일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 즉, 신(神)이 아니라, 일하기 싫은 건달이었다. 
거기에다 신의 아들을 참칭하고 있었으니, 배척 정도가 아니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예수의 설교)을 듣고, 다 분(憤)히 가득하여, 일어나 동리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리가 건설된 산(山)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누가 4;28~30)

예수에게 <지혜>와 <능력>이 있었다면, 예수의 설교를 들으면서 분개하고, 죽이려고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겠는가? 
도대체, 예수 즉, 신의 지혜와 능력이란 것이 어떤 것이기에 고향 사람들에게 극단적 분(憤)을 일으키게 했을까?

예수는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너희는 구원은커녕 모두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교를 했던 것이다. 
지금의 예수쟁이들이 어느 누구를 닮았을까는 짐작이 되리라.
(어느 정도 바이블 실력이 있어야 감이 잡히는 내용이지만,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누가 4; 25~27을 읽어 보기 바란다.) 

* 결론; 
사람이란 모두가 그만 그만한 것이어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특별히 누구에게 칭송될 만한 사람이란 없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자기 고향에서 칭송 받을 만한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실제로는 종교적 사기꾼)들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선지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의 경우는 다르다. 전지전능한 신은 지루하거나 권태롭거나 인기가 떨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신은 고향 아니라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한 예수, 심지어 낭떠러지에서 밀쳐죽이려고까지 했다는 것은 신은 고사하고 못된 잡놈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수가 실존 인물이라면, 예수는 일하기 싫어서 젊은 것들 십 여명을 몰고 다니며 무전 취식하던 잡놈이요 건달이었던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5-05-27 (수) 10:28
[사랑 장사의 최고 밑천 신망애(信望愛)-예수교가 가장 자랑하는 사랑 장사 품목 중 하나

[그런즉, 믿은 소망 사랑(信望愛), 이 3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한 때, 말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너 빨갱이냐?" 또는 "너 예수쟁이로구나?"라고 핀잔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말이 많은 자는 빨갱이 아니면 예수쟁이일 가능성이 많다.
말이 많다는 것은 뭔가 결함이 많은 것을 은폐하려는 수작이다.그리고, 실제로 말이 많으면 쓸 데 있는 말이 별로 없는 법이다.
그래서 또, 말이 많은 사람을 향하여, "너 빨갱이냐?" 또는 "너 예수쟁이로구나?" 라고 했을 때, 이 말은 빨갱이와 예수쟁이는 이 세상에 써먹을 데가 없다는 말도 포함된 것이다.

바이블을 보자.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 21;25)

예수의 언행(업적)을 모두 기록하여 남긴다면, 세상(지구?) 만큼 커다란 창고를 짓더라도 그 기록물을 쌓을 수 없을만큼 많을 것이라 한다.
이 얼마나 쪼잔한 신(神)의 쪼잔한 지랄 발광인가? 신(神)이란 작자가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는 방법이 그렇게도 없어서 그토록 많고 많은 수다를 쏟아내는가?

<요한>이라는 바이블에서 예수가 떠드는 말의 특징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인간에)게 이르노니..."라고 되어 있다.
얼마나 자신 없는 사기꾼 소리였으면, <진실로 진실로>를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을까?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못한다)"는 말이 있다.
"진짜다" "사실이다" "정확하다" "고급이다" "진실이다" 등등을 계속적으로 뇌는 사람의 말은 한 가지도 빠짐 없이 "가짜"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먹을거리에 아무 수식어가 따라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 먹을거리의 값도 저렴하고, 맛도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급> <최고급> <순수 자연산> <100 % 자연산> <유기농법> <진짜> 등등의 수식어가 붙으면서 값비싼 가짜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2015년 5월)는 가짜 백수오 문제로 한반도 전체가 떠들썩하기도 하다. 가짜가 진짜노릇을 감행한 사건이다. 그러나, 예수교의 행악에 비교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할껄? ㅎㅎ...아멩 할렐루~야! 

참고; [너희(예수쟁이들)는 너희 신(神) 여호와의 성민(聖民)이라. 무릇 스스로(병들어)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城中)에 우거(寓居)하는 객(客=손님)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이웃)에게 팔아도 가(可)하니라.] (신명기 14;21)

"진실로 진실로" "성스러운" "사랑" "거룩한" "전지전능" "공의" "진리" "신망애(믿은, 소망, 사랑)" "천당" "지옥"등등의 수식어와 공갈 협박을 포장하고서 세상이 좁다고 좌충우돌하는 예수교보다 더 가짜요, 더럽고 위험한 사기꾼 행각이 있을까?


[모든 바이블은 여호와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여호와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17)


세상 일이란 것이 여호와의 감동으로 되는 것이라면, 바이블(예수와 여호와의 수다 떨기)이 무엇에 필요할까?
여호와의 감동이 미치는 곳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을 텐데, 구태여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을 둘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많은 수다를 쏟아 놓을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본보기(예수와 여호와의 가르침?) 즉, 바이블이 있어서 예수교의 역사와 현실이 저토록 시궁창인가?
바이블에다 글로 남기는 행위에는 감동을 주면서, 실질적인 예수쟁이들의 언행에는 그 흔한 감동을 주지 않는 모양이지? 

어떤가? 그래도 바이블이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언행이 담긴 내용으로 믿어지는가? 그러나, 바이블이 저렇게 두껍다는 것은 예수와 여호와가 가짜라는 증거일 뿐이다.
누군가 이 필자의 진단을 변명하려고 할 텐데, 그 변명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자체가 바로 예수교의 모든 것이 허구(虛構)임을 증명해 주는 좋은 현상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어떤 방향에서 조명하여도 허구, 모순, 궤변 아닌 것이 없으며, 여기에다 세상의 모든 악(惡)까지 포함하고 있는 사기꾼적 마귀 소굴일 뿐이다.

"사랑 장사의 타짜 예수교가 있는 곳에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이것 만이 예수교의 진실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저능아들이 모여서 적당히 노는 곳] 


다음 이야기는 조금 신경을 써야 들리는 말이다. 


(1) 예수는 잡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숨어다니면서,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그러자, 그 동생들이 권한다. 

"형님, 집(또는 근처)에서만 그 멋진 기적질(권능)들을 보여 줄 것이 아니라, 서울(예루살렘)에 가서 여러 사람에게도 그것들을 보여 주시오." 라고.
 
* 참고; 전지전능한 신이 숨어 다닌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고, 때가 되지 않으면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서 구태어 인위적으로 도망다닐 이유가 무엇일까?


바이블을 보자. 

[...그(예수)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다른 사람)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요한 7;1~4) 


바이블 내용으로 보아, 예수의 형제들은 자기 형 예수가 행하는 일(기적과 권능 등)을 여러 번 보아 잘 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형 예수가 그 기적질과 권능을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2) 그런데 바이블은 이상한 말을 한다. 

["이는 그(예수)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한 7;5) 

예수에게 여러 사람 앞에서 적극적으로 기적질과 권능을 보여주라고 권한 것은 분명 예수를 믿고 있기 때문에 권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가리켜, "예수의 형제들도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바로 바이블 기자의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순과 궤변이 뭔지 분간 못하는 저능아들이 모여서 적당히 노는 곳이 예수교라는 말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바이블은 신(神)의 말이 아니라, 지적 수준이 낮은 어떤 사람이 서투르게 꾸며 낸  글이란 것을 증명한다. 
바이블에는 이런 장면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필자의 글 재주가 없어 제대로 전하지를 못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장면들이 바로 바이블(예수)이 허구(虛構=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허구(거짓) 속에 등장하는 여호와도 허구요, 허구의 아들 예수도 허구요, 그리고 허구가 주관한다는 예수교도 허구임은 거론의 여지가 없다.
허구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일 뿐이다. 


(3) 바이블의 엉터리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고 가정하고서 한 마디 해 보자.

한 지붕 밑에서 생활하는 부모 형제도 믿지 못하는 예수를 남에게 믿으라는 경우는 무엇이며, 또, 믿는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제삼자 2015-06-03 (수) 07:57

[입으로 떠들기만 하면 되는 훈련-예수교의 모든 것]

10살 미만의 자녀에게 저축 습관을 길러준답시고 그 목표액을 10억 원으로 정해 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건전하고 아름단운 마음씨를 길러준답시고 “원수를 사랑하라.” 또는 “부모 처자식과 재산을 다 버리고 예수를 따르라.” 따위를 부지런히 주입시키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이렇게 어디에도 써먹을 것이 없는 말장난도 못되는 교육(환경)으로 성장한 사람은, 좋은 말(윤리, 도덕, 질서 등등)을 마음으로만 즐기면 되는, 그래서 실천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위선자들을 양산해 낼 것이 분명하다.
예수교가 바로 이렇게 좋게 느껴지는 말들을 모조리 훔쳐다가 교회 안에 켜켜이 쌓아 놓고서 말장난으로 개닥질을 치는 집단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는 가르침이 불교에는 없고, 예수교에만 있다면서 그것을 자랑하는 군목(대령)도 있었다. 실천과는 상관 없이 입으로 떠들어댈 수 있는 좋은 말이 있어서 예수교는 훌륭한 종교라는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보이지 않는 신 여호와(예수), 감지할 수 없는 신 여호와(예수), 논리적 과학적으로 황당한 신 여호와(예수), 이런 신 여호와(예수)를 믿도록 세뇌되고, 이런 신에게 책임(부끄러움이나 고통 포함)이 따르지 않는 회개질을 반복하고….. 이런 식으로 반들 반들 길이 든 인간은 결국 어떤 모습이 될까?

실제로는 믿을 수 없어서, 당장에 천당에 가는 일보다는 이 힘든 세상에 하루라도 더 머무르려고 발버둥친다. 이런 종류의 예수쟁이가 아닌 자가 있거든 손을 들어보라.
그래서, 말과 행동이 180도로 다른 예수쟁이들 1,000만이 구석 구석에서 개닥질을 치는 나라, 이런 나라가 현재의 한국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 나라를 지옥 다음 동네라고 표현하면 지나친 말일까?  필자의 진단이 지나친가?

비율로 따져서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지식인(?)이 많은 나라이면서도 가장 어지러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나라가 한국이다. 인터넷 인구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실천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냥 말만 떠들어대면 되는 나라, 그래서 무엇이나 변칙적으로 살아가도록 틀이 잡힌 나라가 한국이다. 아닌가? 
질서를 지키고 양심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는 사람이 거의 전부라는 통계 자료도 본 것 같다. 왜 이런 나라가 됐을까?

왜 이런 나라가 됐을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뇌면서 제 집 기둥뿌리까지 뽑아다 바치지 못하여 안달하는 사람이 10,000,000을 넘는 나라에서 무엇이 부족하여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갈까?

보수를 받는 당원을 10,000,000명 확보한 당이 있다면, 그 당은 대권 창출 정도는 식은 죽 먹기요, 아마도 그런 당을 이끄는 사람은 전제 왕정으로 전환시키고 자신이 왕위에 등극하는 일도 간단할 것이다.
하물며, 보수를 받는 당원이 아니라, 제 집 기둥뿌리까지 뽑아다 바치지 못하여 안달하는 당원 10,000,000을 확보한 당이 있다면 무엇을 더 첨부하여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당원을 10,000,000이나 확보하고,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죄를 지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에 간다.” 등등을 가르치고 뇌고 믿는 자들의 나라에 이 무슨 꼴인가?

대한민국 사람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히 생각해 보자. 이런 나라를 내 후손에게 물려주려는가? 이런 나라를 내 아들 딸에게 물려주려는가?



[반드시 쳐죽여라]--ㅎㅎ 아멩 할렐루야!


** 예수교(바이블)에서 "사람(모든 생명체를 포함해서)을 죽이라."는 가르침을 빼내면, 남는 것에 무엇이 있을까?



["남자나 여자가 신접(神接)하거나 박수(무당)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치라. 그 피(죄?)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27)


1) 예수교는 유일신 종교이다. 그런데, 어느 신(神)이 또 있어서 신접(神接)을 하는가?
신(神)은 인간이 조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신접(神接) 역시 인간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책임이 아닌 신접(神接)한 사람을 죽이는가?  예수교에서는 사람 죽이는 일 말고 다른 것은 없는가?

2) 바이블에 의하면 신, 악신, 영 따위들은 여호와가 부리는 똘마니들로 되어 있다.
또, 여호와는 그 똘마니들을 사람 속에다 집어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한다. 따라서, 신접(神接)이란 여호와가 벌이는 장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난질(못된 짓)은 여호와가 하고, 그 벌(죽임)은 인간이 받는 격이다. 이런 억지와 생떼가 여호와의 섭리인가?

3) 예수는 사람에게 들어가 있는(신접되어 있는) 귀신을 빼내어 돼지 200 마리에게 신접(神接)시키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신접된 돼지들은 바다(커다란 호수?)로 달려들어가 빠져 죽는다.
사람이거나 돼지이거나 신(神)을 조종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신접된 책임(죽음)을 사람과 짐승에게 묻는 이유가 타당한 것인가?

4) 예수교의 교리(바이블)에 의하면 "성령(聖靈)을 받아야 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예수 녀석도 그 성령을 받았으며, 예수쟁이 중에도 그 것을 받았다는 사람 있다.
성령을 받는 일도 결국은 신접(神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자들도 돌로 쳐죽여야 합당한 처사가 아닐까? 이럴 때는 예외인가?
또, 박수(무당)가 된 사람도 무조건 돌로 쳐 죽여야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목사나 신부(모든 예수쟁이)들도 모두 돌로 쳐 죽여야 될 존재들이 아닐까?
목사, 신부, 제사장 등등, 예수쟁이 전체가 모두 송두리 째 신접(성령과 연결)된 무당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5) 신접(神接)한 사람을 죽이면, 그 죄값(피=살인죄)은 죽인 자에게 있지 않고 죽은 자에게 돌아간다는 논리도 재미있다.  형범 제 몇 조에 있는 법조문일까? ㅎㅎ...아멩 할렐루야!
이러나 저러나, 이유야 어떠하든, 여호와의 사람 죽이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것일까?  이것이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인가?
동양 사상에 "신검(神劍)은 불살생(不殺生)이다"라는 말이 있다. 예수교는 이 사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6) 교리(敎理=바이블)가 옳든지, 예수교의 모습(과거와 현재)이 옳든지, 적어도 둘 중에 하나쯤은 옳아야 억지로라도 보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교의 교리와 모습은 어느 것도 그럴싸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까?
예수쟁이들의 변명은 무엇일까? 듣고(알고) 싶다.

제삼자 2015-10-31 (토) 10:52
[완전과 절대에도 고칠 것이 남아 있나?]


 1)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여호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첫째 날이니라. 
 (제 2일에는 '좋았더라'가 누락됨. 제 3일에는 2번 반복되고.) 
 ...여호와의 보시게에 좋았더라...여호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셋째 날이니라. 
 여호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넷째 날이니라. 
 여호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다섯째 날이니라. 
 여호와가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심히 좋았더라...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1~31) 

여호와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면서 자기가 창조해 놓은 것들을 감상하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또는 "심히 좋았더라"를 연발한다. 
그런데, 
그 "좋았더라"가 제 2일에는 빠져 있고, 제 3일에는 2번 씩이나 반복되어 있다.
바이블 기자의 실수였으리라. 다시 말해서, 바이블 내용은 신의 말이 아니라, 종교 사기꾼이 꾸면낸 말이란 말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전지전능자요 절대자라고 한다. 
이럴 경우, 그 절대자의 감각으로 6번 씩이나 "좋았더라." 또는 "심히 좋았더라."를 거듭 강조했다면, 그 창조된 피조물(천지)에 미흡한 곳은 없이 모두가 완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는 천지 창조를 끝낸 뒤에 또 다시 더 좋은(?) 에덴동산이란 것을 창설했다고 한다. 


 2) [여호와 신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고, 여호와 신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8~9) 

이미 완벽한 세상(천지)을 창조해 놓고서 또 다시 더 좋은(?) 에덴동산을 만드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에덴동산만 만들었어야 옳다. 
구태여, 6일 동안 애써서 에덴동산의 바깥 세상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아담과 하와)이 살도록 허락된 곳은 에덴동산 뿐이었다. 
** 여호와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서 7일 되는 날 하루를 안식했다고 한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휴식을 취했겠는가?
     다시 말해서, 에덴동산 외에 바깥 세상(천지)을 창조하느라, 쓸 데 없는 짓(힘든 일?)에 6일을 허비한 셈이다...ㅎㅎ...아멩 할렐루야!
    
다시 묻겠다. 에덴동산과 바깥 세상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곳일까? 바이블의 문맥이나 의미로 미루어 볼 때, 바깥 세상보다는 에덴동산이 더 좋은 곳임이 분명하다. 
사람(아담과 하와)이 죄(?)를 짓고 바깥 세상으로 쫓겨난 것으로 보아도 에덴동산에 비하여 바깥 세상은 지옥 같은 곳이 분명하다. 
그런데, 에덴동산을 창설하기 전, 지옥 같은 바깥 세상을 창조하면서 "좋았더라"를 연발했다는 말인가? 지옥 같은 작품(바깥 세상)을 감상하면서"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를 소리쳤다는 말인가? ㅎㅎ...아멩 할렐루야!

에덴동산에는 각종 나무도 있고, 뱀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아담과 하와)은 여호와가 특별히 선택한 존재여서 에덴동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면, 각종 나무들과 뱀은 어떻게 해서 에덴동산에서 살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바깥 세상의 동식물과 에덴동산 안의 동식물은 종류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또, 각종 생명체들은 좁은 에덴동산 안에 갇혀서 살아가는 게 좋은 것인가 아니면, 드넓은 바깥 세상이 자유스러운 것인가? 
(여기에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생략한다.)

결과적으로, 여호와는 장차 인간이 쫓겨날 바깥 세상을 미리 준비해 놓은 셈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는 지옥(바깥 세상)을 먼저 만들어 놓고, 다음에 에덴동산(천당?)을 만들었던 것이다. 
6일 동안 입으로는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를 연발하면서 지옥 같은 바깥 세상을 만들어 놓고서, 나중에 뒷구멍으로는 별도로 에덴동산(천당)을 만들었던 것이다.
장차, 인간이 죄(?)를 짓고서 쫓겨날 바깥 세상(함정)을 먼저 만들어 놓고서 나중에 허울 좋은 에덴동산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생략한다. 사실 상,  잡 녀석(여호와 또는예수)들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가 있겠는가?

에덴동산은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영생 복락을 누리기로 되어 있던 곳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예수쟁이들이 장차 구원 받고서 들어갈 천국과 별로 다르지 않은 곳이 에덴동산이라는 말이다.
아니, 에덴동산이 천당보다 월등하게 좋은 곳이다. 에덴동산에 살던 사람(아담과 하와)은 적어도 동심 그대로의 깨끗한 사람이었다. 
또, 거기에는 사람도 둘 뿐이고, 먹을 것이 많고,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지극히 단순하고 정화된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아주 짧은 시간(태초부터 쫓겨날 때까지) 안에 사람은 죄(?)를 짓고 쫓겨났다. 

장차 예수쟁이들이 들어갈 천국의 형편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더러운 사람들이 들어가게 된다. 
다만, 용서 받았을 뿐 실제로는 설명될 수 없는 더러운 사람들이다. 
또,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144,000명만 들어간다고 해도 에덴동산에 비교할 바가 못된다. 
에덴동산에서는 깨끗한 사람 2명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낸 죄(?)이거늘, 용서 받은 더러운 사람 즉, 예수쟁이들이 모두 들어간 천당에서는 더러운 사람 수십 수백 억이 어떻게 영원토록 죄를 만들지 않고 영생 복락을 할 수 있을까?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해서 가능하다고 변명할 예수쟁이가 없으란 법은 없다. 
그렇다면, 여호와(예수)의 그 전지전능으로 천국에서는 되는 일을 에덴동산에서 베풀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장차 천국에 들어갈 예수쟁이들에게서는 지능을 박탈하시려나? 
정신 박약아들의 모임인 천당에서는 범죄의 발생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가? 장차, 예수쟁이들이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천당은 정신 박약아들의 집합소인가? ㅎㅎ...아멩 할렐루야!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하게 되고,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동시에 생명과와 선악과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이 답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자. 


[여호와 신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복수?)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22) 

위의 말(바이블 내용)은,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더라도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한다는 말이다. 동시에, "사람이 영생하게 될까봐 우려된다"고 걱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호와(예수교의 신)들의 속 마음도 모르면서 <영생 복락>을 꿈꾸는 예수쟁이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왜냐 하면, 사람(아담과 하와)은 이미 생명과를 먹어도 한참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는 선악과를 제외하고는 모든 실과가 사람(아담과 하와)에게 허락된 먹을거리였었다. 그리고, 생명과는 선악과와 함께 에덴동산의 중앙에 보기 좋게 서 있던 나무였다. 
따라서, 사람(아담과 하와)은 뱀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생명과를 먹어도 많이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죽는 것으로 결판이 났다. 
여호와의 기분 내키는대로 다스려지는 세상이라 그런가? 아서라!

여담; 에덴동산의 사람(아담과 하와)은 몇 살 짜리였을까? 여호와가 흙으로 빚어서 만들어 놓은 사람은 처음에 아기였을까? 아니면, 청소년? 장년? 노년? 어느 연령 대였을까? 
        그러면, 장차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예수쟁이들은 몇 살 짜리로 영원히 살게 될까? 
        자기 마음대로 젊게 살다가 싫어지면 늙은 모습으로 둔갑했다가, 다시 어린 아이로 됐다가, 또 청년도 돼 봤다가...재미 있겠다. 


** 필자가 1980 연대 초에 저술했던 책 [神의 蠻行은 누가 벌주나?]에 "나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을 사양한다"는 목차가 있다. 
     필자 스스로 전지전능자가 되어 마음 내키는대로 세상과 나 자신을 요리해 보는 장면이다. 
     먹고 살기 바빠서 제대로 된 깊은 사색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전지전능으로 세상을 다스려 봐도 역시 재미없는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데에 도달하고 말았다. 
     따라서, 전지전능한 신(神)이 존재한다면, 그 신보다 더 고통스런 존재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현재의 이 세상의 현상보다 더 멋지고 재미있고 행복한 조건이 없음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2번 이상을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이다. 1번이기 때문에 최고의 행복과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영생(천당?)은 고사하고, 단 2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인생이라면, 그것은 지옥이다. 이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지능 결함+사고력 결핍+예수쟁이의 허욕=영생 복락에 대한 꿈
제삼자 2015-12-12 (토) 11:32
["어떤 것도 믿지 말라"-예수]ㅎㅎ 아멩 할렐루야! 


다음은 예수가 말세 때의 모습을 가르친 말이라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예수의 가르침)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예수)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예수)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마태 24;3~28) 


(1) 많은 사람이 와서 서로 자기가 예수(예수의 가르침)라고 미혹(迷惑=정신이 헷갈려서 갈팡질팡 헤맴))할 것이란다. 
여기에 절대로 속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는 짓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렇게 고약한 짓이 있을 수 있는가? 

참고; 여기에서 예수가 거론하는 <많은 사람>이란 바로 목사(신부)를 비롯한 예수쟁이들일 것이 분명하다. 
      예수쟁이(목사, 신부, 일반 예수쟁이 등등)들 말고는 예수를 전도하는 짓에 열을 올릴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어쨌든, 지하철, 길거리, 광장 등등의 장소는 물론, 교회 안에서 떠들어지는 전도 및 설교 등등, 어느 것이라도 믿거나 따라가서는 안 될 마귀 소리가 분명하다. 분명한 예수의 말이다. 


(2) 지금, 세상에 수 만 가지로 난립되어 있는 예수교가 모두 예수가 어떤 것인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모습 아닌가? 
그런 짓들이 그렇게 관람할 만한가? 꼭꼭 숨어 있으면서 그게 뭣하는 짓인가? 사람의 천당행 지옥행을 이런 식으로 판가름해야 되는가? 아서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그 유황불 지옥에는 예수(여호와)가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예수쟁이들이 뒤따라 들어갈 것이다. 

(3) 필자는 4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어느 목사에게 다음을 질문했었다. 
"예수가 여기 있다고 하여도 속지 말고, 저기 있다고 하여도 현혹되지 말라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처신해야 되겠는가?" 

그러자, 그 목사(박사) 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참 후에 필자가 계속해서 첨부하여 말했다. 

1. "교회고 어디고 가지 말고, 골방에 홀로 앉아서 신앙 생활을 하라는 말인가?" 
2. "썩었건 말았건, 어느 교회를 한 번 정했으면, 평생 동안 그 교회의 귀신이 되라는 말인가?" 
3. "아니면, 어디에 진짜 예수가 있는지 그것을 찾아서 이 교회 저 교회로 전전해야 하는가?" 라고 물었다. 

그래도, 그 목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2015년 말)이라도 여기를 대답할 수 있는 예수쟁이가 있거든 한 번 나서 보기 바란다. 어때? 한 번 해봐! 


(4) 인간은 신(神)을 알아 낼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이렇게 무능한 인간을 상대로 장난치는 악마가 어떻게 신이란 말인가? 
책임(責任)은 권한(權限)이 있을 때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권한(즉, 신을 알아 볼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책임(즉, 신을 믿고 받드는 짓)을 묻고 있는 예수(여호와)는 제대로 생겨 먹은 신일까? 


(5) 예수쟁이들은 100% 지옥으로 갈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신(神)의 섭리가 아니라, 사람 스스로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쟁이들은 위 아래 누구를 막론하고,
1.자신도 속이고, 
2.사람(이웃)도 속이고, 
3. 마침내, 신(神)도 속이며, 평생을 살아 가는 사기꾼들이다. 
이보다 더 무섭고도 큰 죄가 있을까? 예수쟁이들은 송두리 째 반드시 100% 다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참고; 예수쟁이들의 삶을 "신앙 생활"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믿음 생활"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진짜 예수쟁이는 "불신앙 생활"을 해야 옳다. 왜냐 하면,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내 말이 틀려? 
      그렇다. 예수교(바이블)의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 예수의 지엄한 가르침이다. 알간? ㅎㅎ...아멩 할렐루야!

* "믿는다."고 떠들어대는 예수쟁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게 모두 가짜들이다. 예수가 지적하는 결과물이다. ㅎㅎㅎ......



[정신(인간의 원형)이 파괴된 자]


[내(예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培)를 받고 또, 영생을 보상하리라.] ㅎㅎ...아멩 할렐루야! 

(마태 19;29)


(1) 지구 위에 예수교쟁이가 12억이라던데, 그 중에 누가 예수의 가르침대로 움직이고 있을까? (한국에는 1,000만?)

(2) 예수의 "버린다."는 말은 쓰레기통에다 버리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웃을 위하여 그렇게 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12억이 버린 재물, 희생 봉사 등등의 혜택으로 세상은 즉시 천국처럼 정화된 세상으로 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보이는가? 오히려 예수쟁이들의 그 반대 현상 때문에 세상(역사)은 피비린내로 진동하고 있지 않은가?

(3) 필자는 오래 전부터 말해 왔다.
"종교인 특히, 예수쟁이는 잘하면 본전, 잘못하면 징벌 대상이요, 비종교인은 잘하면 칭찬, 잘못하면 용서의 대상이다."라고. ㅎㅎ...아멩 할렐루야!
예수쟁이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장담하면서 그의 가르침대로 준행하겠다고 약속한 자들이다.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좋은 일?)대로 살고 있다면 본전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예수(여호와)를 속이고 능멸한 불한당이다. 지옥을 맡아 놓은 죄인(악마)들이다.

비 종교인들은 어느 신과 어떤 종류의 약속도 한 일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 사람다운 일을 했을 경우 칭찬 받아 마땅하다. 혹, 잘못된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용서의 대상이다.
아무나 제 멋대로 종교인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아무나 떠들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제삼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4) 위에 나열된 예수의 가르침은 믿음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최상의 희생 정신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가르침을 베풀기 전에 먼저 인간에게 믿을 수 있는 방법부터 베풀었어야 옳다는 말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하다는 녀석은 무능한 인간을 상대로 장난질(만행질)부터 하고 있다.

(5) 인간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경지이다.
예수쟁이들이 말하는 그 <믿음>이라는 것은 자신과 사람과 신을 속이는 짓에 불과하다.
그 따위 믿음은 비 종교인들도 가지고 있다. 그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들이 세상에다 쏟아내는 모든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

믿음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 중에서도 최상의 것이다. 종교인이든 비 종교인이든 값싸게 떠들 그런 경지가 아니다.
바이블(예수교)에는 그 어디에도 <믿음>이란 것이  없다. 궤변에 의한 혹세무민이 있을 뿐이다.

(6) 예수(교)의 이름으로 내 것이 하나도 없이 된 우리 나라의 불행이 안타까울 뿐이다.
도둑에게는 재물 정도의 빼앗김이고, 살인범에게는 목숨 정도의 빼앗김이지만, 예수(교)는 인간의 정신(마음)을 훔쳐내는 아주 고약한 것이다.
정신(인간의 원형)이 파괴된 자의 언행과 그 결과보다 더 무서운 것는 없기 때문이다.
제삼자 2015-12-25 (금) 12:20
[즐거운 성탄절? ㅎㅎ...아멩 할렐루야!]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아들 예수가 구세주(救世主)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나던 날, 2살 이하의 사내 아기들이 도륙을 당했다고 한다. 
이 비극은 오래 전에 여호와가 계획을 세워 놓고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을 해 두었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장차 인간에게 있을 불행을 미연에 예방해 주는 게 아니고, 그 불행을 계획하고 예언까지 해 주고서, 그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출썩대며, 자기의 점괘가 맞아 떨어졌다고 자랑하는 여호와! 세상에 이렇게 못돼 먹은 잡놈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헤롯(왕)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2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더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 2;16~18) 


예수가 태어나던 날, 베들레헴과 그 원근 일대의 2살 이하 사내 아이들이 국왕 헤롯에 의하여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것이 즐거운 성탄절이요, 인간이 멋모르고 당하는 날벼락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사건은 태초에 여호와가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해 놨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역시, 즐거운 성탄절이다. 아니, 매우 매우 즐거운 성탄절이다. 그지?

지금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이 됐지만, 옛날의 인간 세상은 어디나 집집마다 어린 아기가 없는 집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당시 베들레헴 일대에서 자식이 죽임을 당하지 않은 집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죽은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소리가 천지을 진동했다는 것이다. 
죽은 아기들도 불쌍하지만, 그 유가족들의 슬픔은 무엇일까? 여호와(예수)는 인간이 감당할만큼만 시련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비극들이 인간이 감당할만한 시련들일까? 

"하나님(여호와=예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쟁이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예수교의 으뜸 자랑이다. 이렇게 사랑이 많으신 예수교의 신이란 녀석은 세상을 이런 식으로 다스려야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여호와(예수)는 욕을 한 번 더 얻어 먹어야 될 것 같다. "여호와(예수)를 가리켜 악마(惡魔)요 잡놈이라고 하면 너무 약한 표현이겠지?" 여호와(또는 예수)에게 주어질 남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을 아주 적당한 명칭이 생각 난 사람은 없을까? 


여기 쯤에서 바이블을 더 보기로 하자. 

[(천사가 이르되)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가 나셨으니, 그리스도 주(主)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天軍)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신(神=여호와)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천국?)에서는 신(神=여호와)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 2;11~14) 


예수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지극히 높은 곳(천당?)에서는 여호와에게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베들레헴 원근 일대에서 도륙된 2살 이하 사내 아이들과 불행 속으로 빠져 든 그 유가족들이 바로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미운 털 박힌 종자"들이었던 셈이다. 
2살 이하의 아기라면, 자기 의지가 없을 때이다. 따라서, 그 아기들에게 <죄의식>이란 것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도륙된 아기들이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여호와는 부득이 또 한 번 욕을 더 얻어 먹어야 되지 않을까? "신(神) 아니라 신의 할애비라 하더라도 여호와(예수)는 미친 잡놈이다." 
"기준과 원칙이 없는 불한당 같은 잡놈이요 악마라고 불러도 그 호칭이 부족하다 하겠다." 안 그래? 내 말이 틀려?
그러나, 천만 다행스럽게도 위의 모든 것(바이블 내용)은 허구(虛構)일 뿐이다. 그 사실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기로 하자.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태 2;1~3) 


(1) 옛날 왕권 시대에 어떤 아기가 하나 태어났다고 하자. 이 때, 어느 점쟁이나 도인이 나타나서 "이 아기는 장차 임금이 될 상이다"라고 선포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아기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 이유 불문 그 아기는 죽여지게 되어 있다.
고려 시대, "十八子"라는 근거 없는 풍문이 떠돈 적이 있었다. 즉, "李씨 성을 가진 사람이 새로운 왕이 될 것이다."라는 뜬 소문이었다. 
이 풍문은 이자겸이나 이의민 등의 李씨 세도가가 멸문을 당하게 됐고, 한 때 이성계 일파가 혼쭐이 나게 된다.

(2) 동방으로부터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왔다는 박사들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천치 바보들이었던가? 
(우리 반기련에서도 안티 활동을 한다면서 가끔씩 심심치 않게 나타나서 못난 소리를 하는 사람 때문에 소동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동방박사들은 유대의 국왕이 머무는 도성인 예루살렘성에 들어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렇게 공표해 버리면, 그 결과는 예수를 경배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죽이려고 온 것인가? 

이렇게 상황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동방박사>라는 칭호도 어울리지 않고, 별을 보고 먼 동방으로부터 왔다는 말도 웃기는 상황이 되고 만다. 

(3) 북쪽 지방 멀리(약 150 km)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 부부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게 된 것은, 로마 황제의 명을 따라 호적을 정리하기 위하여 여행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베들레헴은 잠간 동안 머문 곳으로 여기에서 예수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이 곳 베들레헴으로 경배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그 <동방>이란 것이 베들레헴 <건너 동네>라는 뜻인가? <건너 동네>에서 온 사람을 가리켜서 <동방>에서 왔다고 하는가? 

(4) 미국에 살고 있는 A라는 사람이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 乙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래서, A는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乙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乙은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기 위하여 동사무소에 가고 집에 부재 중이었다. 
이럴 경우, 미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는 A는 乙을 만나기 위하여 乙의 집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동사무소로 찾아가야 되는가? 
같은 의미에서, 예수의 출생을 축하 하러 오는 동방박사들은 예수 부모의 본거지인 나사렛으로 가야 되는가, 아니면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하여 잠시 여행 중인 베들레헴으로 찾아가야 되는가? 

동방박사라고 할 때, <동방>은 적어도 바로 이웃인 건너 동네는 아닐 것이다. 상당히 먼 곳일 것이며, 걸어서 왔거나 낙타나 나귀 따위를 타고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찾아 왔다고 했어야 되는 말이다. 
특히, 유의할 것이 있다. 헤롯왕이 2살 이하 사내 아이들을 도륙시켰다는 말은 이 사건이 적어도 2년에 걸친 사건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더 더욱 동박박사들은 여행지 베들레헴이 아닌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으로 경배를 왔어야 된다. 호적을 하기 위한 여행이 2년 씩 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5) 또,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왔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서울에서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은 대전이나 부산에서도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이 될 것이다. 따라서, 별이 머문 곳에서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태어난 집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별이 낮게 떠다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변명하는 예수쟁이가 없으란 법은 없다. 그러나, 낮게 떠 다니는 불을 별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을 사람들은 <불똥>이라고 하는 것이며, <별>과 <불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반딧불이 따위를
별이라고 할 사람도 없다. 

(6) 헤롯왕은 "유대인의 새로운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태어난 정적(政敵)을 찾아 내어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좀 더 고도의 추리력이 필요하다. 

(a) 만약, 헤롯왕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 예언은 전지전능한 신(神=여호와)의 예언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연약한 인간인 헤롯왕이 감히 여호와의 아들인 예수를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신을 믿거나 아는 사람으로서 신을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그런 간덩이 부은 인간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b) 반면에, 헤롯왕이 "금방 태어난 아기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지 않았다고 하자. 이럴 경우, 금방 태어난 아기가 죽여야 될 정적(政敵)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기 예수 하나만을 쉽게 찾아 낼 수 있다면, 국왕의 권세로서 어린 생명 하나 쯤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들레헴과 그 원근 일대의 2살 이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야 되는 일을 감행한다는 말인가?
실성한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신(神=여호와)의 예언을 믿어도 또는 믿지 않아도, 헤롯왕은 예수를 죽여 없애 버릴 생각을 하지 않게(못하게) 되는 것이다. 
신을 거역할 인간이란 없는 것이며, 믿어지지 않는 허무맹랑한 유언 비어 때문에 하나 둘도 아닌, 수 천 수 만의 생명을 무차별로 죽일 그런 망나니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라도 그렇게 무수한 사람을 죽이기를 즐기는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여호와(예수)>라는 악신(惡神)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즐거운 성탄절"이래! 지금(2015년 12월 25일)도 각종 TV 채널에서는 "즐거운 성탄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억지 프로를 진행하고 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제삼자 2016-01-07 (목) 09:23
[예수의 처음과 마지막]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 마지막으로 무엇인가 소리쳐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우리도 한 번 들어보기로 하자.

1) [제 9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신 나의 신,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마태 27;46~47)

구약(바이블)의 시편 21;1의 말을 인용하여 떠들어 댄 말이라고 한다. <마가>에도 똑 같은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은 다르다. <누가>를 보자.

2)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누가 23;46)

<마태> <마가>와는 달리 <누가>는 시편 31;5를 인용하여 떠들어 댄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한>에서는 또 다란 말로 떠들어 대고 있다. 그것도 보기로 하자.

3) [..... (예수)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 19;28~30)


그렇다면,
(1) <마태>와 <마가>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와
(2) <누가>의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와
(3) <요한>의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 등, 이 3가지 중에서,

예수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떠든 말은 어느 것일까?

예수는 태어날 때의 내력(족보와 태어나던 날의 상황 등등)도 엉터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마지막 죽을 때의 장면도 순 엉터리이다.
예수에 관해서는 처음 태어날 때도, 마지막으로 죽을 때도 정확한 것 없이 뒤죽박죽으로 엉터리 뿐이다.
그렇거늘, 예수교(바이블)에서는 무엇을 그렇게 믿으라는 것인지? 그냥 생겨 먹은대로 아무 것이나 "믿습니다."하고 떠들어대면 되는 것인가? ㅎㅎ...아멩 할렐루야!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예수가 죽음 앞에서 소리쳐 떠들었다는 말은 神이 떠들었을 법한 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예수가 신 또는 신의 아들이라면, 죽음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거나 의연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죽기 직전에 떠들어댔다는 3가지 말의 내용은 삶의 가치를 전혀 터득하지 못한 졸장부(못난이)의 넉두리 뿐이다.
그 어느 말의 내용도 神이 떠들었음직한 것이 없다. 하기사, 바이블(예수교) 속에는 단 한 톨의 개똥철학도 없음에랴!


(ㄱ)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이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거듭 짐작을 해봐도 두 번 반복된 <엘리>라는 말에 해당하는 뜻이 없어 보인다.
"엘리 엘리"는 "아버지여"이고, "라마"는 왜 나를"이고, "사박다니"는 "버리셨나이까?"인가?
설령, 신(神)들끼리나 통하는 고급스럽고 비밀스런 어휘라고 한다면, 구태여 그것을 무능한(?) 인간들을 상대로 떠들어 댄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못돼먹은 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예수가 죽을 때 떠든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가 엘리야를 찾는다."고 생각할 뿐, 아무도 그 의미를 알아 듣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神이란 작자가 인간들 앞에서 무엇을 위하여 떠든 말일까? 인간으로 하여금 천당이냐  또는 지옥이냐를 가르치는 말을 이렇게 알아 들을 수 없는 용어로 횡설수설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거듭 강조하지만, 예수(여호와) 일당은 용서될 수 없는 만행자들일 뿐이다. 전지전능한 신이라기에, 사랑이 많은 신이라기에 더욱 더 용서가 안 되는 더럽고 악독한 녀석들이다.


(ㄴ)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와는 정 반대 의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예수가 자기 아비 여호와를 원망하는 의미의 말이고, 후자는 자기 아비에게 안기는 자세를 풍기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더욱 예수의 마지막 말은 어떤 것이었을까 의심스럽다. 예수쟁이들이 죽을 때, 여호와를 원망하라는 가르침인가 아니면 마음을 푹 놓고 안기라는 의미인가?


(ㄷ) 전지전능하다는 神의 입에서 "..... 다 이루었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 다 이루어진 세상의 모습이 이런 것인가?
어떤가? 독자들이여!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전지전능한 神의 입으로 "다 이루었다."고 떠들어 놓은 세상으로 보이는가?

창조할 때마다 여호와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를 연발했으며, 여호와의 아들 예수의 입으로는 "..... 다 이루었다."고 했단다.
그렇다면, 형이상(形而上)이건, 형이하이건 이 세상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워야 될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거듭 생각해봐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좋은 모습> 또는 <다 이루어진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개똥 철학>도 없는 바이블(예수교) 내용을 가지고 뭔가를 따져 보겠다고 나선 자체가 벌써부터 잘 못됐지? ㅎㅎ...아멩 할렐루야!


** 이 세상은 예수교적 안목으로 볼 때, 지옥만도 못한 더럽고도 고통스런 세상이며, 예수교 밖의 안목으로 볼 때,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이 문제는 다른 때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제삼자 2016-03-18 (금) 19:55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


며칠 전부터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곧 상영될 것이라는 뉴스가 요란한 것 같다? (이미 상영됐던 것을 3.1절 기념일을 맞아 방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와 맞서서 싸우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 <신사 참배>라는 것은 무엇일까?

신사(神社)란 일본에서 황실 조상이나 나라에 공이 큰 사람을 신으로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다.
따라서, <신사 참배>란 신사에 모셔 놓은 신들을 추모하고 경배하기 위하여 신사에 참석하여 절도 하고 존경과 숭배를 나타내는 일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우리의 종교와 사상 그리고 자유를 억압하기 위하여 곳곳에 신사를 세우고 그 곳에 참배할 것을 강요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예수교의 목사 주기철이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끝까지 거절하다가 마침내 장렬한 죽음 즉, 순교를 당했다는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런데, <일본의 신사 참배>와 <예수교의 예배>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무엇이 다르기에 예수쟁이들은 예수교 예배는 중요하게 여기면서 일본의 신사 참배를 그토록 반대하는 것일까?
<신사 참배>도, <예수교 예배>도, 모두가 어떤 귀신을 공경, 경의, 존경 그리고 숭배의 뜻을 표하려고 모여서 뭔가를 작당하는 짓이 아니던가? 틀린 진단인가?
이왕, 여기까지 거론됐으니까 국어 사전을 한 번 찾아 보기로 하자. 

* 참배하다; (사람의 영구, 무덤, 기념비 따위) 앞에서 추모나 공경의 뜻을 나타내다.
                 (사람이) 신이나 부처에게 절하다.
*예배하다; [종교] (사람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대상에 대하여 경의를 가지고 절하다.
                [예수교] (신자가) 바이블을 읽고 기도와 노래로 여호와(또는 예수)에 대한 존경과 숭배를 나타내다. ㅎㅎ...아멩!

결국, "참배하다."와 "예배하다."는 정확하게 같은 의미를 가진 말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의 신사에는 그런대로 역사적 실제의 인물(훌륭한 인물인지 악독한 인물인지는 차치하고)에 해당하는 귀신이 모셔져 있지만, 예수교의 예배당에는 그 존재 유무를 전혀 알 수 없는 허구(가짜=거짓)가 모셔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허구(가짜=거짓)에다 예배하는 목사 주기철이, 그런대로 일정 부분 실제의 인물을 모셔 놓은 신사를 경배하는 일제에 대항하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결론이다. (일본의 신사를 미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가짜(엉터리?)가 진짜(?)를 거역하다가 순교를 했다? 크게 양보를 해서 말을 해봐도, <예수교 예배>와 <신사 참배>에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의 신사 참배 거절, 그것이 위대해서 그것을 기리기 위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헐! "소가 들어도 웃겠다"라는 말이 있다. 주기철 목사의 업적(?)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아니다. 목사 주기철이 <신사 참배>를 배척하다가 순교를 했다는 사실은 "똥 묻은 돼지, 겨 묻은 돼지 흉 본다."는 속담과 조금도 기울지 않는 난센스(nonsense=터무니없는 것, 어리석은 짓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또, "적의 적은 나의 동지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 예수교는 일본 신사의 적이기 때문에 여기에 덩달아서 우리 한국은 예수교를 내 편으로 여겨야 되고, 동시에 주기철 목사의 순교도 위대하다고 인정해야 될 것이다. 대박! ㅎㅎ...아멩 할렐루야!
이런 식의 말이 성립되는 말이라면, 간신 중의 간신 유자광도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는 중종 반정에 가담했었으니까 간신이 아니라 충신 중의 충신으로 추켜세워야 되지 않을까? 안 그래? 헐! 


* 참고; 일반적으로 우리 한국이 일본의 신사 참배를 좋지 않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일제 36년 동안 우리 민족을 탄압하던 무리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들의 위패가 그 신사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교가 신사 참배를 배척하는 이유는 "여호와(또는 예수) 외에는 다른 우상(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주기철 목사의 순교는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교에 국한된 사건일 뿐이다. 예수쟁이가 아닌 일반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주기철 목사의 순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얼 빠진 자의 발광이 아닐까?  

* 또 참고; 신사 참배를 거부한 진짜 예수쟁이 주기철 목사가 신사 참배를 찬성하던 예수쟁이(그러니까 가짜 예수쟁이)들에 의하여 파직됐었다.
그런데, 가짜 예수쟁이들에 의하여 파직됐던 목사 주기철이 해방 이후, 파직당한 지 76년 만에 다른 가짜 예수쟁이(가짜 예수쟁이들의 후손이니까)들에 의하여 복권이 됐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진짜(?) 예수교는 가짜들에 의하여 파문됐다가 다시 가짜들에 의하여 복권 절차를 밟은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종교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헐!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6-04-01 (금) 13:47

["원수를 사랑하라."--헐!]

**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예수교(여호와=예수)라고 한다. 그런 예수교에서 <전쟁 교육 실습용>으로 원수(또는 적)를 지정해 놓고 있다. 대박!


히브리 족속(예수쟁이들의 조상)이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지방을 정복할 때의 일이라고 한다.
여호와 신이 진두 지휘하는 정복 전쟁과 노략질 전쟁을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이라고 하는데, 다음 글은 바로 그 성전을 나타낸 내용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우선, 그 성전의 이유와 순서를 나열해 보기로 하자.


(1) 전지전능한 예수교의 신 여호와의 힘으로도 강력한 원수(敵國)를 멸 망 시 킬 수는 없었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유다(히브리 족속의 한 지파)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19)


** 전지전능하다는 여호와의 힘으로도 철병거로 무장한 강력한 적을 멸망시킬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예수교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 낱말인지 모르나 보지? ㅎㅎ...아멩 할렐루야!



(2) 여호와는 히브리 족속(다시 말해서 예수쟁이들)을 시험하려고 적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나(여호와)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列國)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조상)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 열국(적=敵)을 머물러 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 (사사기 2;21~23)


** 금방 위에서 <철병거로 무장한 강력한 적>은 여호와의 힘으로도 멸망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히브리 족속(즉, 예수쟁이들)이 여호와를 잘 받들고 있나 또는 잘 받들고 있지 못하나를 시험하기 위해서 열국(列國=원수, 적국)을 남겨 뒀다고 한다. ㅎㅎ...역시 아멩 할렐루야!


(3) 전쟁 실습 교육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적(원수)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예수쟁이들의 후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하사 남겨두신 열국(여러 나라=적=원수)…] (사사기 3;1~2)


** 먼 훗날, 평화 시대가 계속되면, 히브리(예수쟁이) 자손 중에 <전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텐데, 그들에게 전쟁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열국 즉 원수 나라들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훗날을 생각하는 여호와의 계획이 얼마나 기특한가! ㅎㅎ...아멩 하렐루야!


4) 반복되는 말이지만,  원수= 적= 열국을 남겨두신 이유가, 히브리 족속(또는 예수쟁이들)이 여호와를 잘 받들고 있나 또는 그렇지 못한가를 시험하려는 것이라 한다.


[(여호와가) 남겨두신 이 열국(원수)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조상)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사사기 3;4)

** 세상에다 원수들은 남겨 놓은 이유가, 여호와를 잘 받들고 있나 없나를 시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별 희한한 이유도 다 있다. 아니, 별 희한한 귀신 종자도 다 있다. 여호와(예수)라는 귀신이 있다는 게 얼마나 희한한 현상인가? ㅎㅎ...아멩 하렐루야!


(5) 이리하여 마침내 여호와가 진두 지휘하는 성전이란 것이 생겨나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신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잡신)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외적=원수가 쳐들어오게 만드신다.)] (사사기 3;7~8)


** 전쟁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전쟁을 가르치려면 전쟁이 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여호와를 거역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여호와는 진노하여 적(남겨 놓은 원수)이 쳐들어오게 만든다. 마침내, 전쟁을 모르던 사람들이 전쟁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계획과 섭리가 대단하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6) 히브리 족속(예수쟁이들의 옛조상)은 여호와 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면서도 못된 짓(여호와를 버리고 잡신을 섬기는 짓)을 하는 족속이고, 이 히브리 족속에게 쳐들어온 적(원수)은 여호와를 전혀 모르는 민족들이다.
때와 형편에 따라서 여호와를 받들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히브리 족속(예수쟁이들의 옛조상)과 아예 처음부터 여호와를 미워하여 배척하는 이방 민족 중, 여호와는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실까? 질문이 어려워서 대답을 못하시지는 않겠지? 어때?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시는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니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옷니엘이라.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그가 나가서 싸울 때에…이기니라. 그 땅이 태평한지 40년…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사사기 3;8~21;25)

** 히브리 족속(예수쟁이들의 옛조상)이 여호와를 받들다가 배반하기를 반복 반복 15번 계속한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 족속은 15번 반복해서 여호와를 배반하고, 여호와는 15번 반복해서 진노와 보복을 하고, 그러면 히브리 족속은 또 부르짖음(눈물의 기도?)을 반복하고…그러면 여호와는 또 성전을 일으키고….이럴 때마다 신나는 것은 이방 민족(적=원수)들이다.

아예, 처음부터 여호와(예수)를 받들지도 믿지도 않는 이방 민족들은 히브리 족속(예수쟁이들의 옛조상)을 때때로 침략하여 식민 통치를 할 수 있는 신나는 기회가 주어진다. 조금이라도 여호와(예수)를 믿고 받드는 족속은 수시로 식민 지배를 받는 고통을 당해야 되고, 아예 여호와(예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이방 민족들은 때때로 히브리 족속을 침략하며 신나게 살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여호와(예수)를 받드는 히브리 족속(또는 예수쟁이)과 아예 여호와(예수)를 모르는 이방 민족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지는가? 이 질문은 여호와(또는 예수)가 대답을 해야 될 것 같은데...어떤가?  그런데, 이 놈의 귀신(예수교에서 받드는 신)은 입도 손발도 없는지 전혀 아무 움직이나 반응이 없으니...나 원 참! 헐! ㅎㅎ...


위에서 (1), (2), (3), (4), (5), (6),…은 모두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 불변의 말씀이라고 한다.
바이블을 자세히 쉽게 해설하려고 하면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해 진다. 그래서, 바이블은 이래 저래 읽지 않는 책이며, 읽어도 무엇을 읽었는지 남는 게 없는 그런 내용의 책다.

위의 바이블 내용도 자세히 해설하려다 그만 두었다. 읽는 사람 각자가 능력대로 소화하면 될 것이다.
다만, 번호 순서 즉 (1) (2) (3)…순으로 여호와가 인간을 상대로 가르친 말인데, 그 순서, 내용, 그리고 앞뒤가 맞는 말인지, 조금 쯤 마음을 가다듬고서 읽어 보기 바랄 뿐이다.


전지전능하다고 알려진(?) 예수교의 신 여호와의 말을 다시 한 번 더 음미해 보기로 하자.

여호와 가라사대; 

(1) "<강적>이라 멸망시킬 수 없었다."
(2) "사람을 시험해 보려고 <적>을 남겨두었다."
(3) "전쟁 교육용으로 <적>을 남겨두었다."
(4) "나(여호와)를 잘 받드나 시험하려고 <열국(적국들)>을 남겨두었다."
(5) "히브리 족속이 잡신을 섬기므로 화가 난 여호와가 <적>을 불러들여 전쟁을 일으켰다."

이런 내용이 15번 반복된다. 1번 2번도 아니고 15번 씩이나 저 짓이다. 전지전능한 신(神)이라는 작자라면 있을 수 없는 짓이다. ㅎㅎ...아멩 하렐루야!
아니,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은 인류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될 최악일 뿐이다. 대박!

제삼자 2016-05-23 (월) 12:21

[죄인을 부르러 온 예수]


 [(예수가)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예수)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 5;27~32)

위의 바이블 내용은 여호와의 아들 예수의 말이다. 다시 요약해 보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 일당에게 비방하여 말했다고 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예수 일당이 죄인들과 어울려서 히히덕거림을 비방하는 말이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을 들어 보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얼른 듣기에는 비유법을 인용하여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의 말이라고 할 수 없는 모순된 내용인 동시에 바이블(여호와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대역무도에 해당하는 말이다.

의원(의사)은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자에게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의인이 아닌 죄인을 구하러 왔다는 예수의 말은 어폐가 있다.
왜냐 하면, <병자>와 <죄인>은 비교될 수 없는 아주 다른 성격의 내용이며 또, 바이블(여호와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신에 <원죄>라는 것을 뒤집어 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원(의사)은 건강한 사람을 빼고 병자만 골라서 치료하겠지만, 인간 중에 예수가 구원하지 않아도 될 의인은 하나도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떠들어 댄 자가 바로 예수(교)이기 때문이다.

예수(神)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중에 의인은 없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의인을 들먹이며,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말은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한다. (어차피 엉터리 얘기이지만)

질문; "너(예수)는 왜 죄인들과 어울려시 히히덕거리느냐?"
대답; "나(예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그런다." 

근본적으로 더 큰 문제가 있다.
예수 입장에서 보면, 질문(비방)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야 말로 죄인(?) 중의 죄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구원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세리와 다른 죄인(누굴까?)들만을 가리키며 구원시켜야 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죄인 중의 죄인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구원의 대상이기는커녕 오히려 예수의 저주 대상이다. 
"화(禍)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여!...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며 예수는 악담을 퍼붓고 있다. (마태 23;13~33)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기는커녕,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악담과 저주를 퍼부은 자가 예수였다. 
그런데,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떠든다. 헐!

어쨌든, 인류를 구원하러 왔다는 신으로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따위는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자기(예수)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 주는 사람(바보)만을 추켜 세워 뭔가를 착취하려는 얄팍한 술수(속임수)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바보들의 왕초였던 것이다. 
허구와 궤변으로 뭉쳐진 속에서도 영생 복락을 나누어 주겠다는 꾐수에 넘어가는 무뇌아들의 총수가 예수였던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던 간악한 자들이어서 좋게 보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수의 허황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말에 넘어가는 사람이야 말로 바보에다 욕심을 겹쳐 놓은 구제 불능의 쓰레기들이다.
바보에게는 약이 없고, 욕심에 눈이 멀면 이것도 약이 없다.

제삼자 2017-02-27 (월) 13:39

[톨스토이와 간디의 권위와 오류]-헐!


우리 인간이 범하는 오류(그릇되어 이치에 어긋남)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권위에 호소하거나 의지하는 오류"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예수교는 미국(세계 최강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따라서, 예수교는 참이고 좋은 종교이다." 
또는, "링컨(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통령)은 예수를 믿었다. 따라서, 예수교는 믿을 만한 좋은 종교이다." 등등은 "권위에 호소하거나 의지하는 오류"들이다.

(각설하고) 


인도의 간디가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예수를 존경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와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어떤가? 간디의 예수교에 대한 진단은 오른 것일까? 간디는 예수교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을까?

인도에서 간디보다 더 유명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다! 세계 전체를 놓고 계산하더라도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이다.
따라서, 간디 정도되는 유명한 사람이 그 이름(지위 또는 권위)으로 예수교를 평해 놓은 말 "나는 예수를 존경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 권위에 눌리어 "맞아! 맞아"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간디는 예수교(바이블)를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몇 번인가 바이블을 읽었더라도 간디는 바이블 내용을 전혀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 분명하다. 간디의 예수교 진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궤변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교의 역사(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예수쟁이들의 그 썩어 문드러진 모습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예수를 쏙 빼닮은 본연의 모습일 뿐이다. 예수쟁이와 예수는 100% 닮은 꼴일 뿐이다.
간디의 예수교 진단은 달리 말해져야 옳다. "나는 예수도 좋아하지 않고, 동시에 예수를 쏙 빼닮은 예수쟁이들도 좋아할 수가 없다."고. ㅎㅎ...아멩 할렐루야! 대박!


<부활>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의 3대 작품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톨스토이는 누구인가?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대 문호로 지칭되는 동시에 세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세계 3대 문호"로도 불리는 유명 또 유명한 사람이다.
이렇게 유명한 톨스토이가 예수교적으로 유명한 말을 남겼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톨스토이는 <부활>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주인공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감동에 의해서 정신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부활하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활>을 읽는 독자들은 톨스토이의 권위에 압도되어 "예수교(바이블)는 좋은 종교이다."라며 예수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바로 "권위에 호소하거나 의지하는 오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부활> 속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친척(고모) 집에 놀러갔다가 예쁜 하녀 카튜샤를 유혹하여 임신을 시키게 되는데, 돈 몇 푼을 쥐어 주고 헌 신짝처럼 버린다. 결국, 카튜샤는 창녀로 전락하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네흘류도프가 어느 지방 법원의 배심원이 되어 법정에 나가게 된다. 재판은 어느 매춘부가 손님을 독살하고 돈과 반지를 훔친 사건이었다.
알고 보니, 그 매춘부는 네흘류도프가 유혹하여 임신시킨 후 버린 바로 그 카튜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받는 재판이었다.

결국, 카튜샤는 4년 형을 받고서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된다.
네흘류도프는 자기 때문에 한 여자가 파멸했다는 사실에 깊은 죄의식을 느껴 어떻게 해서든 그 녀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모두 허사가 된다.
네흘류도프는 카튜샤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시베리아까지 따라간다. 마침내, 시베리아에서 카튜샤 사건에 대한 판결 취소 명령이 내려지고 그 녀는 자유의 몸이 된다. 

네흘류도프와 카튜샤의 복잡한 사랑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고.....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중간 중간에 바이블을 읽으면서 그 속에 나타나 있는 무한한 사랑으로 진실을 찾아간다는 줄거리가 바로 <부활>이다.
매춘부로 타락한 뒤에도 영혼의 저 밑바닥에 있는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카튜사, 여기에 감동을 받아 네흘류도프도 새로운 인생으로 부활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유명한<부활>이라는 소설이다.

그런데, 말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어떻게 읽었기에 어디에 무슨 감동이 있어서 그토록 더럽게 타락한 두 남녀로 하여금 갱생할 수 있는 모법 답안이 있다는 건지?
대문호 소리를 듣는 톨스토이도 여늬 예수쟁이들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엉터리꾼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유명하디 유명한 인도의 간디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그 명성과 권위를 가지고 뭔가를 떠들어 놓으면 그게 바로 진리가 된다는 게야 뭐야? 터무니 없는 궤변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인도의 그 유명한 지도자 간디 그리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같은 유명인이 그 이름(또는 권위)으로 아무리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추켜 세우더라도 그 바이블 내용이 훌륭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암!
어쨌든, 인류의 역사 속에는 허명(虛名)과 허세(虛勢)가 참으로 많기도 많도다. 물론, 그 허명과 허세에서 여호와(또는 예수)를 따를 자는 없지만 말이다.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기련이 인류 역사상 가장 허명과 허세 없이, 거품도 없이 액면 그대로의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닐까 싶다. 아! 기분 째져!

역시, 반기련 최고!




[권위에 의한 오류(잘못) 중 가장 큰 것]-대박!

권위에 의한 오류(잘못) 중 가장 큰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두 말 필요 없이 "신(神)의 이름(권위)을 빌어 떠들어 놓은 모든 것(또는 가르침)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오류이다."
특히, 예수교는 자기 네 신(여호와 또는 예수)이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 예수교에서 신의 이름으로 떠들어지는 것들보다 더 커다란 오류는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여호와, 예수, 바이블, 교회, 예수쟁이 등등)은 120%의 오류로 뭉쳐진 허구(거짓)이다. 대박!

** 참고; 신(神)보다 더 큰 인간은 없을 테니까,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신을 능가하는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인간이 가진 권위로 아무리 떠들어 봤자, 신 만큼 커다란 오류를 만들어 낼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교가 생산해 내는 오류(잘못)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또 참고; 예수교의 신(여호와 또는 예수)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사실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대박!
제삼자 2017-03-08 (수) 15:29

한낱 관리였던 왕온서, 왜 5족을 멸족 당했을까?     


 지록위마, 조고는 황제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했지만 조고의 위세에 순치된 관리들은 그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2014년 말에 발표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습니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는 진시황이 남긴 유언(편지)과는 달리 큰아들 부소를 자살하게 하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우고 승상이 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합니다.

그런 후, 신하들과 함께 있는 호해에게 사슴을 끌고 가 말이라고 합니다. 사슴과 말을 구분하지 못할 리 없는 호해가 주변에 있던 신하들에게 사슴인지 말인지를 묻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이 사슴이라는 사실을 답하지 못합니다.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사실, 눈앞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그게 거짓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할 만큼 조고의 권세는 대단했고, 황제 주변의 신하들은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이미 조고의 위세에 순치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고는 오래지 않아 호해마저 자살하게 하고 시황제의 동생 자영을 새로운 황제로 앉힙니다. 중국 천하를 통일하였던 진나라 황제를 두 번씩이나 마음대로 바꿔치기 하던 조고였지만 시황이 된 자영(子?)이 시킨 환관 한담에 의해 사살되고 삼족이 멸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자영이 진나라 삼세 황제로 즉위했지만 신하들과 백관 모두가 자신을 따르지 않아 기강이 무너집니다. 결국 자영이 즉위한 지 석 달 만에 항우에게 항복하지만, 항우는 이를 받아주지 않고 자영의 목을 벱니다. 자영의 죽음으로 진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다보면 조고처럼 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삼족을 멸하는 끔찍한 형벌이 가해지는 상황이 가끔 나옵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그 이상, 4족이나 5족까지 멸족을 당했다는 내용은 읽어보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5족을 멸족당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기> '혹리열전'에 나오는 왕온서는 5족을 멸족 당하였습니다. 왕온서는 역모를 꿈꾼 모사꾼도 아니고 체제를 부정한 반역자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관리였을 뿐입니다. 그러함에도 왕온서는 삼족을 멸족당한 조고보다 훨씬 더한 심한 오족이 멸족(滅族) 당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원문 대역 <사기열전>
 <사기 열전> 1, 2, 3 / 지은이 사마천 / 옮긴이 장세후 / 펴낸곳 연암서가 / 2017년 2월 25일 값 각 35,000원
ⓒ 연암서가
<사기열전>1, 2, 3(지은이 사마천, 옮긴이 장세후, 펴낸곳 연암서가)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 중 70편으로 돼있는 <열전>을 원문(한자)과 번역문을 동시에 읽을 수 있도록 펴냈습니다.   
<사기>는 한나라 때 사람 사마천(B.C 145∼B.C 86년경으로 추정)이 약 3000년에 걸친 고대 중국의 '역사와 인간사'을 기록한 명저입니다.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등 총 130권, 52만6500자나 되는 방대한 기록입니다.

<사기>는 사마천이 아버지 사마담의 유지를 받들어 궁형(남근을 거세당하는 형벌)이라는 형벌까지 극복해가며 완성한 효의 마무리이자 대를 이어 완성한 역사적 걸작입니다.

우리나라 조선 이전 역사는 '김부식(삼국사기)이나 일연(삼국유사)이 없었다면'을 가정하면 깜깜해지고, 고대 중국 역사는 '사마천(사기)이 없었다면'을 가정하면 암담해 질만큼 <사기>는 고대 중국역사를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위대하고도 방대한 역사서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처럼 일기를 쓰듯 연대순(날짜순)으로 기록하는 편년체(編年體) 방식입니다. 또 다른 방식은 역사를 군주의 정치 관련 기사인 본기(本紀)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열전(列傳), 통치제도·문물·경제·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지(志)와 연표(年表) 등으로 기록하는 기전체 방식입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가 기전체 방식으로는 처음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하니 <사기>는 불후의 역사서이기도 하지만 역사를 정리하는 기전체 방식을 개척해 낸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사기>는 인문학적 복합 역사서

<사기>는 단순히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가 아닙니다. 문학작품이고, 인문학이고, 정치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직시하게 하는 반면교사이고,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처세술입니다.

<사기열전>은 3권 세트로 돼 있습니다. 1권에는 '1-백이 열전'부터 '25-여불위 열전까지', 2권에는 '26-자객 열전'부터 '50-흉노 열전'까지, 3권에는 '51-위 장군 ·표기 열전'부터 '70-태사공 자서'까지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5족을 멸족당한 왕온서 이야기는 62-혹리 열전(酷吏列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光祿徐自爲曰 悲夫 夫古有三族 而王溫舒罪至同時而五族乎
광록 서자위가 말하였다. "슬프도다, 대체로 예로부터 3족을 멸한 일은 있었지만 왕온서의 죄는 동시에 5족을 멸함에 이르렀도다!" - <사기열전> 3499쪽

왕온서는 도대체 무슨 엄청난 죄를 지었기에 5족을 멸족 당했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은 앞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왕온서는 아첨을 잘하여 권세가 있는 자는 잘 섬겼고, 권세가 없는 자는 종처럼 여겼다. 권세가 있는 집은 간악함이 산과 같아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권세가 없는 자는 귀척이라도 반드시 능욕하였다. 법을 멋대로 적용하여 교묘하게 빈민의 교활함을 들추어내었고 이로써 호족들을 위협하였다.

그 중위로 다스림이 이와 같았다. 간사하고 교활한 자는 끝까지 다스렸는데 거의 모두 옥중에서 몸이 너덜너덜해졌으며 형이 확정되면 나오는 자가 없었다. 그의 심복 관리들은 호랑이에다 모자를 씌운 격이었다. 이에 중위의 관할에서 교활한 자들은 모두 몸을 숨겼고 권세 있는 자들은 명성을 높여주어 잘 다스린다고 칭찬하였다. 몇 년을 다스리는 동안 그 관리들은 거의가 권세를 내세워 치부하였다. -<사기열전> 3497쪽

백성의 삶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관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자기보다 권력이 센 사람들에게는 아부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자신보다 권력이 약한 자들에겐 착취와 군림의 도구로 악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관직 상승 이사가 3족을 멸족 당한 까닭은

진시황 때 이사는 승상(천자를 보필하는 최고관직)이었습니다. 이사는 초나라 때 상채 사람으로 젊어서는 하위직 관리였습니다. 화장실에 있는 쥐와 창고에 있는 쥐가 달리 행동하는 것을 보고 다시 공부해 드디어 진시황제에게 선택받습니다.

이사는 추방 위기에 몰리기도 하지만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내고 논리적인 설명으로 설득해 위기를 모면합니다. 이사는 글만 잘 쓴 게 아니라 말도 잘했습니다. 설득력도 갖고 있었습니다. 이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할 수 있는 상승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상승의 말로는 삼족을 멸족당하는 불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영민하던 이사가 삼족을 멸족당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자식 문제로 약점이 잡혔을 때 정정당당히 법대로 처리하지 않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고와 어렴풋이 야합을 한 게 운신의 폭을 얽어매는 족쇄가 됐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권모술수에 능한 조고가 바로 환관, 문고리권력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조고는 2세(호해)가 한가할 때는 별별 핑계를 대서라도 이사가 보고를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2세(호해)가 연회를 하면 이사에게 연락을 해 보고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모처럼 기분 좋게 연회를 하고 있는데, 평소에는 보고를 하지 않던 승상(이사)이 3번씩이나 보고를 한다고 나타나 연회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니 황제는 이사가 일부러 연회를 방해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조고는 환관이라는 직분을 십분 이용해 승상과 황제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불신을 조장해 자신의 처신에 방해가 되는 승상(이사)을 제거하고 자신이 승상으로 등극합니다. 하지만 조고 또한 결국에는 삼족을 멸족당하니 예나 지금이나 가려진 진실은 드러나고 잘못된 처신을 화를 부른다는 걸 알려줍니다.

원문과 함께 읽으면 새겨가는 의미 곱 돼
  
원문이 한자로 된 고전을 번역서로 읽어 그 내용을 아는 것도 충분히 유익하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가는 속도가 좀 더디더라도 저자가 사용한 한자까지 곁들여 읽게 되면 책을 읽는 재미는 더해지고 새겨가는 의미는 곱이 됩니다.
 <사기 열전>1, 2, 3 / 지은이 사마천 / 옮긴이 장세후 / 펴낸곳 연암서가 / 2017년 2월 25일 값 각 35,000원
ⓒ 연암서가
일례로 '삼족을 멸한다'는 '삼족(부계, 모계, 처계)을 죽이는 것' 정도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한자 멸(滅)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면 멸이라고 하는 벌의 무게가 더더욱 실감납니다. 한자 멸(滅)자를 파자하면 한일(一), 물수(?), 불화(火), 창모(戊)로 돼 있습니다.

여기서 한일(一)은 가문을 이어가는 양(陽씨, 앗)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멸(滅)은 가문의 씨앗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물로 수장하고, 불에 태워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는 싹트지 못하도록 처벌한다는 무시무시한 뜻이라고 합니다.

'열전'이란 여러 사람의 전기를 차례로 기록한 책을 말합니다. 열전 하나하나 마다 여러 명의 전기를 싣고 있으니 70편으로 된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은 수 백 명이 됩니다.

<사기> 중 열전, 수 백 명의 전기를 원문과 함께 수록하고 있는 <사기열전> 일독은 수 천년 전에 살던 수 백 명의 삶, 선현, 순리 또는 혹리로 살아간 수 백 명의 처신을 역사로 입증되고 있는 정의와 삶의 지혜로 새기게 되니 인문학적 소양을 반듯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양식 보약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사기 열전>1, 2, 3 / 지은이 사마천 / 옮긴이 장세후 / 펴낸곳 연암서가 / 2017년 2월 25일 값 각 35,000원

제삼자 2017-03-09 (목) 05:45

[밀착취재] "부장님보다 더 해요".. 똥군기 '젊은 꼰대' 주의보

짙어지는 위계중심 조직문화의 그늘 / 자신 경험·생각 아랫사람에 강요.. 흔히 장년층 권위 빗대 '꼰대' 표현 / 최근 대학생·2030 직장인도 고통.. 전문가 "젊은세대들 서열문화 답습"
부산에 사는 임모(27)씨는 한 회사 선배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스트레스를 받아 소화불량에 걸렸다. 30대의 젊은 나이에도 유독 ‘군기’를 강조하는 그 선배는 임씨에게 무턱대고 화를 내거나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곤 했다. 임씨는 “연차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대리 선배가 부장님보다 더 권위적으로 구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새 학기 개강을 맞이한 대학가에도 비슷한 사례가 빈번하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교에 다니는 박모(20)씨는 지난달 말 교외로 다녀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초반부터 기분을 망쳤다. 박씨는 “남 앞에 나서길 어려워하는 성격인데, 선배들이 과 전통이라면서 버스에서 장기자랑을 시켰다”며 “재수를 해 나이가 같은 선배들도 많은데 무척 굴욕적이었다”고 말했다.

대학가와 20, 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 꼰대’로부터 고통을 받는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꼰대’는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이 무조건 옳다며 아랫사람들에게 강요하고, 권위와 서열을 내세우는 어른들을 비꼬는 말이다.

흔히 꼰대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 있는 장년층을 떠올리지만 젊은 꼰대로 인한 각종 피해 사례들은 나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신입생이 입학하는 매년 이맘때에는 대학 선배들의 ‘꼰대짓’을 고발하는 제보가 쏟아진다. 원하지 않는 장기자랑을 시키는 것 외에도 신입생의 복장 규정이나 말투 등을 제한하는 행위, 졸업생 반지를 사야 한다며 수금하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심할 경우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 성 관련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젊은 꼰대는 학교나 직장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존재한다. 지난달 친한 동기의 대학 졸업식을 찾은 직장인 음모(28·여)씨는 술자리에서 “여자가 서른 전에는 시집을 가야지, 나이가 생명이다”라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대학 다닐 때에는 그렇지 않았던 한 남자 동기가 졸업 후 1년 정도 사회생활을 하더니 꼰대로 돌변한 것이다. 정작 그 동기는 본인의 말이 ‘뭐가 문제냐’며 항변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꼰대의 등장 원인으로 위계중심의 우리나라 조직문화를 꼽았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7일 “한국 사회는 굉장히 권위적이어서 어떤 의견 제시도 허용치 않는다”며 “젊은 꼰대는 이러한 조직문화에다 오늘날의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이 결합돼 나타난 사회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기성세대가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 만든 서열중심 문화를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답습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며 “일종의 ‘청년문화’가 부재한 것도 젊은 꼰대 등장의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같은 세대끼리 꼰대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서로를 쉽게 낙인찍고 경계를 나눠 적대시한다는 의미”라며 “이른바 꼰대짓을 하거나 꼰대라고 규정하기에 앞서 공감대 형성이나 차이의 인정 측면에서 부족한 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영·송민섭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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