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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벗겨낸 폐깡통 예수의 정체
글쓴이 : 반기련  (218.♡.11.98) 날짜 : 2007-10-30 (화) 09:06 조회 : 6519
제목 :   신화를 벗겨낸 폐깡통 예수의 정체
  글쓴이 : 하록    
  
아직도 개독교에서 조작한 예수의 이미지를 붙잡고 사시는군요.
아래 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신화를 벗겨낸 폐깡통 예수의 정체
 
초기 기독교와 사회 주변 타종교와 구전을 꿰맞춘 복음서
 
루돌프 불트만(Rudoph Bultmann)의 양식비평에 따르면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 추종자들에 의해 기록된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이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식비평(Form criticism)이란 복음서가 형성되기 이전에 여러 구전(oral traditions)들이 전해졌다고 보고, 그 구전들을 여러 양식(forms)으로 분류하여 원래의 상황(Sitz)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을 통해 불트만은 지금의 복음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초대 교회 당시 예수에 관한 많은 구전들과 이야기들이 존재했었고, 교회라는 공동체가 이러한 것들을 그들 의도대로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나오는 "다음날". "즉시", "길 가실 때에" 등의 말들은 여러 다른 구전 자료들을 서로 잇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복음서 안에 있는 문서, 시간, 장소 등의 표시는 비역사적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러한 것들은 다 떼어내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초대 교회의 인위적인 편집을 해체하여 이 기록에 들어있는 구전의 원 형태를 찾아 최초의 전승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아무리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라고 할지라도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이교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다소 진보적인 자유주의 신학계에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신화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독일의 '종교사학파'를 비롯하여, '탈신화화'를 주창한 불트만과 미국의 '예수 세미나' 학파에게 이르기까지 예수의 일대기에서 신화를 걷어내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시도 되었다.
충격적이겠지만,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기독교계를 강타한 <예수는 신화다>(티모스 프리크 & 피터 갠디 승영조 역 동아일보 2002 - 원제: Timothy Freke & Peter Gandy / The Jesus Mysteries /Harmony Books. New York :한국판이 출판된 적이 있으나 한기총의 협박으로 현재 출판정지!)에서는 동정녀 탄생과 부활은 물론, 예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이교도 신화와 헬라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티모스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예수에게서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을 걷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필자는 대체적으로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다음 장에서는 예수에게 씌워진 신화의 장막을 걷어낼 것이다. 그러나 예수에게서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을 걷어내면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그 점에 대해서는 필자는 약간의 의구심이 남는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을 걷어내고 남겨지는 것은 전혀 낯선 모습의 이상한 예수이다!
 
(1) 예수의 제자들은 유대혁명가?
 
가롯 유다는 예수를 은화 30냥에 팔아먹은 배신자로 모든 기독교인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더듬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적지 않다. 예컨대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이유가 실망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베다니에 있을 때 마리아라는 여성이 예수에게 향유를 부었다. 당시 향유는 일반인은 만지지도 못할 엄청나게 비싼 것이었다. 그러자 가롯 유다가 "어째서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라고 꾸중하자, 예수는 그 여자의 행위를 옹호한다.(요:12장 3~8절, 막 14장 3~9절, 마 26장 6~13절)
가롯 유다는 이러한 예수에게 실망을 느낀 것이 아닐까? - 반면에 누가복음 22장과 요한복음 13장에는 '악마' 가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다소 엇갈리는 설명이 나와 있다. 덧붙여 이야기 하자면 한국목사들은 예수에게 아낌없이 바치는 이 구절을 악용하여 신도들의 고혈을 빨아먹는데 심심하면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 유다 이름의 가롯(Iscariot: 이스가리옷)은 당시 열심당(Zealots)을 지칭하는 단어인 '자객'(sicarri)과 라틴어 '시카리우스'(sicarius)와 발음상 매우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자객'(sicarri)은 열심당 계열의 엘리트로 직업적인 암살자를 칭하는 말이었다. 슐테스(Schulthess)와 벨하우젠(Wellhausen)은 '가롯'(이스카리옷)은 아람어로 암살자를 뜻하는 이스카르야아('isqarya"a)에서 파생된 말로 보고 있다.(정인찬 / 성서대백과사전 / 서울: 기독지혜사, 1992 / P.67)
그가 예수를 배반한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예수가 로마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시켜줄 정치적 메시아 이길 바라는 열심당원이었기 때문에 실망해서 배반했다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가롯 유다뿐만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의 이름 역시 열심당원임을 시사해준다는 점이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서 예수는 시몬 베드로를 가르켜 '무법자'라는 뜻으로써 열심당원들에게 흔하게 따라붙는 이름이었던 'baryona'에서 파생된 '바르요나'(Bar-jona)로 부른다.
예수는 마가복음 3장 17절에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과 요한을 가르켜 '보아너게'(Boanerges) 즉 '천둥의 아들'(sons of thunder)이라 불렀다. 누가복음 9장 51~55절에서 야고보는 그런 별명을 얻기에 합당한 발언을 하는데, 예수를 환대하지 않는 사마리아 전역을 불로 태워버리자고 주장한다! 히브리어로 '천둥의 아들들'(benei ra'ash)역시 당시에 열심당을 부르는 또 다른 말이었다. 또 한 명의 제자인 시몬은 열심당(Zealots)이었다고 한다(시몬 베드로와는 또 다른 사람이다). 누가복음에서 등장한 '열심당원 시몬'이 마태복음 10장 4절에는 '가나안 사람 시몬'으로 등장하는데 원래 희랍어 원문의 '카나나이오스 시몬'의 오역이라고 한다. '카나나이오스'는 '열광적'을 의미하는 열심당에 대한 아람어 이다.
또한 예수와 함께 못박힌 두 강도는 열심당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유대인의 무장투쟁으로 인해 로마는 질서 유지를 위해서 종종 십자가형을 사용했다고 한다.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자면 "십자가형은 사망의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파멸적인 것" 이라고 했는데, 당시에 무장투쟁을 일으킨 수많은 유대인들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십자가 처형은 일반적인 범죄자보다는 반역죄인에게 주로 내리는 최고의 형벌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열심당원들은 당시에 강도(열심당원=무장투쟁가=강도)라고도 불렸다.
앞서 필자가 '시대상황과 무관한 복음서'라는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전해지는 복음서 속에서는 당시 피 바람이 몰아치던 당시 유대사회의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 제자들의 이름 속에서 열심당의 흔적이 무수히 발견되는 것은 무엇일까?
 
(2) 칼을 뽑아 든 전투사 예수!
 
예수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사랑과 평화의 예수'이다. 그러나 4복음서를 살펴보면 숨겨진 예수의 또 다른 단면을 살펴보고 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또 다른 예수의 단면은 우리가 보아온 예수 영화 속에 표현된 그런 성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또 다른 예수의 모습은 다분히 독단적이고 위협적이며 권력자를 연상케 하는 언행을 거침없이 사용하여 인자하거나 후덕해 보이지 않는다. 안티 기독교 운동가들은 납득하기 힘든 이러한 예수의 언행을 지적한바 있다. 마찬가지로 필자도 안티 기독교 활동을 하던 예전에는 예수의 납득하기 힘든 언행을 지적한 바 있으나, 곰곰이 따져본 결과 무엇인가 감이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납득하기 힘든 이러한 예수의 언행을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서 분석을 시도 해보고자 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리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10장 34~39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2장 51장~53절)
일반인들이 예수에 대해 갖고 있는 평화의 이미지와는 너무도 대비되는 구절이다. 위의 구절을 음미해보면, 예수는 화평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려고 왔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위와 같은 예수의 말은 오늘날의 사이비종교 교주가 지껄일 법한 말이지만, 당시의 시대상황과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상당히 다른 의미가 될 수가 있다!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누가복음 22장 36절) 예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자들에게 검을 소유하고 사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제자들은 재빨리 품에서 검 두 자루를 내어 보인다.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누가복음 22장 38절) 예수는 제자들이 품속에 지녔던 검을 꺼내 보이자 만족해 한다. 4복음서 모두 검을 숨기고 있는 제자가 있었다는 사실과 예수의 체포 당시 제자들이 저항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태복음 1장 29절)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마태복음 10장 21절)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핍박을 받게 될 것을 말하면서, 부모도 형제도 버리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 배를 상속받고 또 영생을 상속받기 위해서 모든 예수의 추종자들은 부모 형제도 재산도 모두 버려야 한다. 예수는 뻔뻔하게도 자기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한 예는 또 있다. "부친의 죽음에 대하여 장례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여 주소서"라고 제자가 간청하자,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누가복음 9장 59~60절)라고 예수는 대답한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예수의 모습이다. 저 예수의 인품과 오늘날의 사이비교주가 신도들에게 집도, 가족도 버리고, 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예수는 자기 스스로 분쟁을 일으키고 검을 주려고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당시 가정과 재산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며 유대민족을 선동한 사람이 있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테우다스(Theudas)라는 자는 사막에서 가정과 재산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며 추종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무리들을 모아 서쪽 예루살렘으로 진군을 시도했지만, 로마 총독 쿠스피우스 파두스(C. Cuspius Fadus)에 의해 무참히 살육되었다고 한다. 물론, 테우다스(Theudas)와 예수를 동일시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시 유대사회에서 무장독립투쟁을 선동했던 지도자들이 "가정과 재산을 포기하자"고 주장했던 것을 고려해 보면 예수의 납득하기 힘든 말도 이해가 될 수 있다.
당시의 유대사회의 집권층이었던 사두개파들이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던 반면에, 무장독립투쟁을 선동했던 사람들은 '제4의철학'과 같은 영혼불멸과 부활의 사상을 설파하면서 무장투쟁을 벌였던 것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방인=개>의 개념에 철두철미했던 유대인 예수
 
또한 예수는 오로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복음을 전파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열두 제자를 사방에 보내면서 말한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태복음 10장 5∼6절)
기독교인들은 이 구절에서 등장하는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을 가리켜, 타락한 사람 혹은 비기독교인들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 교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타락한 사람 또는 비 기독교인들은 전도의 대상이지 회피대상이 아니다. 또한 그것이 은유적인 표현이라면 이방인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충분한데 어째서 사마리아인까지 집어 넣었을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극도로 혐오 했다.
비슷한 또 다른 구절이 있다. 한 가나안-팔레스타인 여자가 - 그와 동일한 이야기가 마가복음에도 나와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수로보니게 여인' 즉 오늘말로 하면 '시리아-페니키아 여인'이라고 등장한다 - 자기 딸에 씨인 마귀를 쫓아달라고 하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태복음 15장 24절)고 예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의 발목을 붙잡고 애원을 한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한다.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마태복음 15:26)
예수는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은 팔레스타인 여자에게 "개"라는 용어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여인이 계속해서 애원하자,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태복음15장 28절)라고 대답하며 그 여자의 딸을 고쳐주기는 하지만, 이방인을 차별하며 개라는 용어도 서슴지 않는 예수의 행동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승천.부활이나 땅끝 이방전도설은 모두 후대에 첨가 돼 물론, 복음서의 맨 끝에 승천하는 예수가 "너희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장례를 치른 동굴(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 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은 후대에 첨가된 대목이다.
카톨릭 성경은 주석에서 이점을 밝히고 있는데, 마가복음에는 두 종류가 있는 데 짧은 것, 긴 것 두 개를 다 소개 하며 고본에는 없었다고 색인 난에서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에서는 주로 긴 것을 쓰고 있는데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주석 난에 "어떤 사본에는 9-20 절까지 없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카톨릭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 마지막 16:9-20 의 12 절은 그 진위에 문제가 있다. 마가는 그 끝 맺음에 3 가지가 있는데 8절에서 끝나는 짧은 version, 9-20 절을 포함한 긴 version, 그리고 중간 길이의 version..... 이 셋 중 중간 길이의 것은 쉽게 제거 되는 바 .... 아무도 이 중간 것을 진본으로 채택 하지 않는다. ......... 긴 것과 짧은 것 중 어느 것이 진본인가 보면 .....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긴 것은 모든 고본에 없었다고 되어 있는바........ 모든 마가 고본이 8 절에서 끝나고 있다고 이 역사가는 서술 하고 있으며.......
성 '제롬'도 서술 하기를 거의 모든 그리스 고본에 9-20절 구절은 포함 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으며.......... 3 세기, 4 세기의 교부들도 이 구절에 대해 침묵 하는 것으로 보아 동 구절을 모르고 있었던지, 또는 제외 시킨 것으로 해석 되어 진다...... "성경통신대학 제1권에서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마가가 기록한 부분은 16:8에서 끝난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 뒷부분은 오늘까지 보존되어 있는 두 개의 가장 오래된 사본에도 16:8로 끝나있다. 후에 어떤 사람이 다른 복음서의 내용을 참고하여 9~20절을 보충 첨가하였다고 본다."(성경통신대학 제1권 /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교육부)

다시 말해 "땅끝까지 전하라"는 구절이 포함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은 AD 4 세기 경이 지나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술 더 떠서 사도 행전에 의하면 예수가 승천한 후, 11 제자들은 땅 끝까지 선교 하러 나가는 대신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다고 한다. 남겨진 제자들은 "땅 끝까지 전 하라"는 예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전혀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이 행동 하는데, 예를 들어 사도행전 10 장을 보면 베드로는 처음으로 이방인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거부감을 표시한다. 완강히 거절 하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따리 환상을 통해서야 베드로는 자신의 결심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도행전 11 장에서는 사도들과 신도들이 베도로의 전도행각을 전해 듣고는 "왜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대접까지 받았느냐?" 며 베드로의 이방 선교를 비난 한다.
 
(3)자기 한말도 못지키는 한입 두소리의 헬라철학자 예수!
 
복음서들을 읽다 보면 예수가 남긴 말들은 상당부분 헬라철학에 기인한 듯하다. 문제는 복음서 안에서 예수와 예수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예수는 자신이 한말도 실천하지 못하고 떠벌리고 다닌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뺨 맞은 예수의 반항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을 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마태복음 5장 39~40절) - 이런 가르침은 당시 희랍 철학자들의 주장이다.- 예수는 이와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재미있는 점은 예수가 정말 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을 때, 예수가 대답하는 말이 좀 공손치 못했던지 그의 옆에 있던 경비병 한 사람이 "대사제님께 그게 무슨 대답이냐?" 라고 말하며 그의 뺨을 때렸다. 그러자 예수는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대 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요한복음 18장 22~23절)라고 대답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는 한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 뺨마저 돌려대라고 가르쳤지만, 자신은 뺨을 맞자 즉시 항의했던 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뛰어넘어서, 예수가 남긴 말이 서로 대치되는 경우도 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태복음 18장 15~17절) - 이런 가르침도 당대 유대사회의 통념이다.
위에서 남긴 예수의 가르침은 "일곱 번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 찌니라"(마태복음 18장 22절)라는 유명한 예수의 용서의 가르침과 바로 대치된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마가복음 9장 40절)라는 예수의 말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이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 (마태복음 12장 30절) 말과 서로 상치되고 있다.
정리하면, 이방인 개나 세리와 같이 여기라 70×7이라도 용서하라, 뜻이 다른자는 해치는 자, 그리고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마태복음 5장 9절)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오 검을 주러 왔다"(마태복음 10장 34절)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마태복음 26장 52절)와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살지니라"(누가복음 22장 36절), 또한 "네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미워하는 자를 선하게 대하라" (누가복음 6장 27절)와"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환전상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요한복음 2장 15절)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엄연히 말해서 이것은 기독경의 오류투성이이다! 구차하게 이궤변 저궤변 동원하여 주석놀이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돋보기를 들고 좀더 깊이 관찰해보면 복음서 속에는 2가지 모습의 예수가 서로 대립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바울은 예수의 탄생에 대하여 "예수는 육신은 다윗의 혈통에서 나왔고 영(靈)은 하나님에게서 왔다."(로마서 1장 3~4절)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복음서의 내용대로 라면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을 뿐, 아버지 요셉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지간이다!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아버지 요셉의 다윗 왕가 족보를 꼬박꼬박 대 수를 헤아려가며 열거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윗의 혈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예수는 사랑과 관용의 예수, 동정녀 잉태와 부활과 같은 신화적 예수의 모습이다. 이런 신화와 헬라철학을 걷어내 버리면 전혀 낯선 모습의 예수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4) 독선적인 예수!
 
예수의 언행 중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독단과 독선이 자리잡고 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마가복음 9장 42절)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나으니라."(마가복음 9장 43절)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마가복음 9장 45절)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마가복음 9장 47절) 예수의 말에는 독선이 자리잡고 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태복음 23장 33절) 세계 4대성인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예수의 언행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장 41~42절:마태복음 13장 5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태복음 25장 30절) 예수는 사랑과 자비로운 인물이 아니라, 오만과 독선으로 넘쳐나는 인물 같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사람도 기독교에 열광하여 위와 같은 종교성을 자기 인성에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면 전투적이고 독단적인 배타적 인간형으로 변해가는 심리학적 기제를 이해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 망가지고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마가복음 11장 12~14절) 무화과가 열릴 철도 아닌데 예수는 열매가 없다고 저주를 내려 나무를 죽여 버렸다. 도대체 예수는 언행과 행동들은 배타와 독선으로 철철 넘쳐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예수는 그 시대에 심판의 날이 임박한 것으로 확신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가복음 9장1절) 예수는 틀림없이 과대망상증에 걸린 요즘말로 휴거병에 걸린 사람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종말론이 유행했다손 쳐도 자기가 거기 모인 사람들 세대에 종말이 올거라고 말하는 걸 보면 12월 며칠에 휴거되거라는 확신형 종말론자와 다를 바 없다. 어느 주석가는 '여기 섰는 사람'을 엉뚱하게 해석하면서 다시 예수의 각성 종말론이 유효하다고 헛소리를 하는 자도 있다.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10장 23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누가복음 9장 27절)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종말을 볼 사람들도 있다고 말하는 예수를 보면 그는 과대망상증에 시달린 자이거나 예수신화를 만든 유대인 작가의 정신병적 종말론을 엿보게 한다.요즘 사이비 종교 단체의 종말 망상증과 다를 바 없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누가복음 21장 32~33절) 이런 말투도 고대 희랍 사이비 철학자들이나 사이비 종파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이다. 로마의 폭정에 완전히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의 자연스런 노래일 것이다.
"분명히 말해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36절) 종말 과대망상증자 예수는 계속 '이 세대'론을 들먹이고 있다. 이장림 사이비 휴거 목사와 전혀 같다. 예수는 공공연히 추종자들이 죽기 전, 그 세대에 심판의 날이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마치 1992년 종말론을 내세우다 부도난 사이비 교주의 언행을 보는 것 같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행위는 혁명적 메시아운동 집단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복음서만 보더라도 적어도 한 번은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성전에서, 멀리서 온 순례자들을 농간하는 악덕 환전상들을 습격했다.
더욱이,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방식이 바로 '왕권을 주장하는 유태인 왕의 입성 방식' 그대로이다. 의도적으로 구약 스가랴(Zechariah)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인데, 이는 스스로도 자신이 유대인들의 왕임을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스가랴 9장 9~15절)
구약 속에 나귀 타고 예루살렘 입성하는 사람은 분명 전쟁의 메시아이다. 병거와 말을 탄 대적들을 복종시키고 기를 꺾기 위해 일어선 다윗의 후손이었다. 그런 이유로 민중들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독립만세!"에 해당하는 "호산나!"(Hosanna)를 외치며 예수를 환영했던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사정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유발시킨 이런 선동적이고 전투적인 행동의 의미를 예수가 몰랐다면 그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5) 세례 요한과 예수는 어떤 관계인가?
 
 
복음서를 아주 유심히 살펴보면 기이하게도 세례 요한과 예수는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 복음서 속에서 등장하는 세례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행한다. 일반적으로 안수 세례는 영적 지도자가 밑에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요한의 세례는 회개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은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웠노라"(마태 3:3, 마태 3:11,누가3:1,마가1:4)라고 말하며 세례를 행했는데, 신의 아들이며 성 육신이라는 예수가 무슨 이유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까?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강력하고 유치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세례 요한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그는 빛이 아니다"[1:9], "그는 예수보다 앞서 있지도 않았다."[1:15,30], "예수는 흥해야 하고 그는 쇠해야 한다."[3:30]는 부정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공관복음서에서의 세례요한에 대한 구절은 짤막하게 나오는데, 요한복음 만큼은 세례 요한과 예수를 계속해서 비교한다. 또한 마태복음에 나와있는 세례 요한에 대해 언급한 예수의 말을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요한복음 1장21절)
세례 요한에 대해서 "당신이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하는 질문에 아니라고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요한복음의 이러한 기록은 예수가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말한 마태복음 17장 10~13절,마태복음 11장 11~15절 의 내용과 상치되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요한을 '엘리아'로, 요한복음은 '아무것도 아니다'로 상치시킨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요한복음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특이한 진술을 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세인들은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요한복음 4장 1절)
요한도 세례를 주고 있고 예수도 세례를 주고 있는데 예수에게 사람이 더 많이 몰리게 됐다고 바리세인들에게 소문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라도 요한의 추종자였다가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요한복음 1장 40절) 그리고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와 요한은 서로 각자 독립적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가까운 애논에세 세례를 주니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요한복음 3장 22~23절)
분명 세례 요한은 자신이 직접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노니 나는 그의 신들메도 감당치 못하리라"라고 했으면서, 예수를 만난 후 계속해서 세례 주는 일을 중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이분이 그리스도"라고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를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에 요한의 제자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레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요단강 저편에 있던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한복음 3장 25~26절)
좀더 뜻이 명확한 공동번역판의 동 구절을 올린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 예식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 제자들은 요한을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계시던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읍니다.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분인데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 가고 있읍니다 하고 말하였다."(요한복음 3장 25~26절 / 공동번역판) 그러자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답변한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한복음 3장 27~29절)
오늘날 기독교 측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니"라는 말을 근거로 세례 요한의 겸손함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례 요한의 말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있다. 세례 요한의 말을 살펴보면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라는 말로 보아 '신부=예수의 추종자', '신랑=예수', '결혼식을 보고 기뻐하는 자=세례 요한' 이라는 비유를 든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따져보자면 세례 요한은 분명히 구경꾼의 사명자가 아닌 직접 그 신부 격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자일 것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신부로서 짝이 되지 못하고(=예수의 추종자) 신랑의 친구(=또 다른 선지자)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뒤에 따라오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는 말은 세례 요한에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지어내거나 덧붙인 이야기가 아닐까? 요한복음 외에도 마태복음에도 세례 요한에 대해서 부정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치부를 트집잡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태복음 11장 2~5절)
이 구절은 참으로 세례 요한 답지 않은 말이다.
 
감옥에 갇혀서 크게 낙담한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에 "당신이 그리스도가 정말 맞는가?" 하고 회의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예수를 칭송했던 자기가 감옥에 갇히자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리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며 회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는 매우 불쾌한 듯이 자신이 행한 기적에 대해 말했고, 세례 요한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태복음 11장 6~12절)
예수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실족한자', '흔들리는 갈대', '천국에서 작은 자', '침노하는 자'등으로 비하. 냉소를 하고 있다. 요한은 요세푸스의 저술에도 나타나고 있고, 또한 그가 에세네파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는 설도 있다. 혹시, 세례요한의 종파가 예수의 추종자들의 라이벌이 아니었을까? 세례 요한 역시 범상치 않은 방법으로 태어났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제사장인 사가랴와 사가랴의 부인 엘리사벳은 지식을 낳지 못한 것을 항상 안타까워하였고 나이가 많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나  천사의 계시를 받고 아이를 잉태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 역시 타락한 헤롯일가를 비난하다가 살로메에 의해 은쟁반에 목이 잘리어지는 범상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
기독교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예수를 거짓선지자로 몰아붙이고, 세례 요한을 참 메시아라고 규정한 영지주의 종파가 있었다. 이러한 종파로는 요한파와 만다교가 있었다. 이들 종파는 초대교회시절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특히 만다교는 이라크 남부 및 이란 남서부(후지스탄 지방)에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 명칭은 아람어(語)의 방언 만다(mand?:靈知)에서 유래하였다. 교리는 지극히 절충적 ·혼합주의이나 세례 ·성찬예식 등에는 엄격한 제례(祭禮)가 따른다. 특히 세례는 반드시 흘러가는 물에서만 갖는다. 전통적 분리주의를 견지하며 현재까지 남아 있으나, 근대교육, 생활의 기계화, 교역 등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중세의 근동 여행기에 이미 '성 요한의 그리스도자'라는 이름으로 이 교파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데, 이들이 세례자 요한을 자기 종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노시스적(的) 유대교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교도의 수는 약 2,000명 정도로 추산되며, 경전은 1세기경에 성립된 '긴자(보물이라는 뜻)가 대표적인 것이다."(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만다교 Mandaism항목)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의 행적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성격을 나타냈다고 보여진다. 즉 헤롯과 자신의 형제와 이혼한 여자 헤로디아의 결혼을 비판했고 이에 괘씸죄에 걸려 죽임을 당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6) 정치 혁명가 예수
 
앞선 절에서 예수 시대에 예수를 둘러싸고 있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았다. 복음서는 당시 유대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너무도 무시하고 있다. 당시 유대민중들은 과중한 세금의 부담과 관리들의 부패, 공물징수와 노동징발 등으로 신음했다. 소작인들은 25%의 농산물세를 로마에 바쳐야 했고, 대제사장과 아들들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했으며, 토지세는 토지 평가액의 1%에 달하였다. 로마에 바치는 세금은 시저(Julius Caesar)가 BC 47년에 내린 법령에 의거한다. {<초기 기독교와 사회(Early Christianity and Society)> Robert Grant  김쾌상 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 P.54} 특히 경제적인 곤궁 때문에 세금, 특히 십일조를 정확하게 내지 못할 때 율법학자들은 경멸적인 의미에서 '암 하레츠'라고 불렀다. {<예수시대의 갈릴래아 (Galilaa als Lebensraum und Wirkungsleld Jesus)>Willabald Bosen 황현숙 역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8 P.308}
따라서 갈릴리 농민들은 로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귀족들에 대한 증오심도 그에 못지 않았다. 로마가 유대땅을 지배하던 시기에 이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회현상은 바로 광신적인 메시아 신앙이었다. 유대인들의 무장투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로마나 유대지배계급은 이 독립운동의 주체들을 강도(lestai)라고 불렀으나, 이 강도들은 단순히 강도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지주들과 로마 세리들에 항거하려는 목적이 주된 것이었다. 긴박했던 당시의 상황은 유대 민족을 로마의 식민통치에서 구출해 낼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싹트기 시작했다. 메시아에 대한 희랍어는 '크리스트' 또는 '크리스토스'이다. 히브리어와 희랍어에서 메시아라는 용어는 단순히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는 일반적으로 왕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따라서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메시아' 또는 '크리스트'가 되었으며, 다윗 가의 모든 왕들은 바로 그 명칭으로 알려졌다.
로마가 유대를 점령한 기간 동안에조차도 로마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은 '제사장적 메시아' 또는 '제사장적 그리스도'로서 알려졌다. 하지만 열심당원들 및 로마를 적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꼭두각시 제사장은 말할 것도 없이 '거짓 메시아'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참 메시아'는 로마 제국의 식민통치에서 구원해줄 다윗가의 알려지지 않은 후손을 의미하였다. 예수의 시대에는 그러한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극에 달하여 병적인 상태에까지 도달했다.그리고 예수가 죽었다는 소식 이후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기까지도 메시아 신앙은 더욱더 강해졌다. 실제로 AD 66년의 폭동은 주로 메시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열심당의 선동에 의하여 촉발되었다.
복음서는 이 시대의 상황을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로마제국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로마인에게 세금 바치는 물음에 관한 예수의 답변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였다. 이말을 바꿔보면 '왜왕의 것은 일본 황실에 유대신의 것은 유대신에게'와 같은 말로 친일파들이나 지껄이던 매국노적 발언으로 일본 총독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간신배적 발언과 부합된다.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었다면 그는 독립군 자격이 없다. 갈릴리 유다가 세금거부로 항쟁의 불길을 일으키던 당시의 상황에서 예수가 남긴 그 말은 매국노가 남길만한 말이기도 했다.
친 로마파인 요세푸스 조차 매우 비열하고 포악한 인물로 평가하는 빌라도를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처형 문제로 고뇌하는 소심한 인물처럼 묘사하고 있다. 누가복음의 경우는 빌라도는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예수를, 그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며 갈릴리의 허수아비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넘겼다. 예수를 넘겨받은 헤롯 안티파스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예수에게 고문을 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되돌려준다. 사도행전에서 스테판을 돌로 쳐죽였다고 하는 산헤드린 공의회는,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처형할수 있었던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준뒤 예수를 제발 죽여달라고 부르짖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빌라도는 예수를 어떻게든지 살려주려고 노력하고, 사형이 선고되자 예수의 피는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부르짖으며, 그 피의 대가는 자신들이 질 것이라고 외친다! 복음서의 이런 경향에 대해 S. Brandon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기도 했다. "마태, 누가, 요한복음의 저자들은 예수의 박해를 유대인의 탓으로 돌리는 데 관심했다. 그들은 대체로 마가의 이야기를 따랐으나, 일차적인 것은 예수를 친로마적인 인물로 그리는데 주안점을 두었기에, 예수의 평화주의의 주제를 발전시킨 것이다."(S. Brandon/ The Trial of Jesus of Nazareth / New York: Dorset Press, 1988, P.76) 4복음서가 쓰여진 것은 AD 1세기부터 4세기 무렵이라고 하는데, 여러 가지의 복음서 중에서 우리가 지금 접하는 것은 로마인들의 입맛에 맞게 제작된 복음서가 아닐까?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예수의 생애 상당부분은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을 차용한 것이라고 다음 장에 설명을 할 것이다. 필자는 그 점을 의심치 않는다!
예수라는 인물이 정말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만의 하나 예수가 실존인물이라면 그는 무장독립혁명가였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복음서는 당시 유대(특히 갈릴리)의 사회의 정치적 대 혼돈과 역사적 정황을 무시하고 있다.
불트만(Bultmann)의 지적대로 복음서는 예수시대에는 만들어 지지 않았으며, 초대교회의 신자들 사이에서 예수의 이야기가 다양한 구전의 형태로 전해 내려오다가 문서화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예수에 대한 수많은 전승들이 초대교회에서 복잡한 모습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할례문제를 비롯하여 각종 유대율법 문제로 초대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났던 상황을 고려하면, 초대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예수의 전승은 복잡한 양상을 띠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구약의 오경이 여러 가지 전승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거나, 율법이 서로 대치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전승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이 흘러 들어와서 또 다시 복잡하게 뒤섞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수에 대해 떠돌던 여러 전승들이 드디어 문서로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로마제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유대인을 악역으로 만들고 당시 혼돈스러웠던 유대사회를 침묵으로 일관하는 또 다른 왜곡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시간이 오래 흘러간 뒤에 문서화 되었기에 역사적 사실과 점차 거리가 멀어졌을 것이다.
필자가 한가지 덧붙여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다고 판단되는데, 그것은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다빈치 코드'와 그 원조라고 말할 수 있는'성혈과 성배'같은 책이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와 관련된 비밀결사 조직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면서 무엇인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그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세시대에 시온교단과 성당기사단을 비롯한 여러 비밀결사가 존재했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비밀결사 조직이 예수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저자는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영지주의자들의 비밀조직, 아니면 반기독교 조직, 그렇지 않다면 교황청에 반감을 품은 종교개혁가들의 비밀조직, 또는 신지학(神智學)과 관련된 조직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이런 음모론에 찬성할 수 없다!
 
                                                                              by적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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